2023.07.28/ #아카이브 #한국전쟁 #안양 #리지웨이장군/ 구글 라이프지 사진 검색에서 찾은 사진으로 사진은 라이프지 1951년 2월 19일자에 수록된 사진이다. 장소는 안양 (Anyang)으로 되어있고. 라이프지의 전설적인 사진기자로 불리운 종군기자 <존 도미니스(John Dominis)에 의헤 촬영됐다.
구글 라이프 한국전쟁 사진중 안양 관련 사진들이 12장 정도 검색되는데 이 사진들은 다음 카페 한류아데미와 네이버 블로그 송풍수월 (松風水月)을 통해 소개되고, 2023년 7월 안양문화원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하지만 사진속 배경이 안양이라는 것만 소개했을뿐 사진에 담긴 상세한 설명은 없었기에 사진을 분석해 보았다..
이 사진은 중공군이 1950년 10월 한국전에 개입한 후 겨울을 거쳐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여 제 정비를 거친 8군의 반격사진으로 수리산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이 안양에서 1번국도를 따라 서을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으로 멀리 사진 뒷쪽 산밑에서는 폭탄이 터져 연기가 치솟는 장면도 담겨있다.
사진속 인물은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연합군이 반격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미8군 제 25사단.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으로 별 셋을 단 3성 장군이다.
당시 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는 사진 설명으로 미8군은 서서히 공산군을 쫓아 북상.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면서 한강으로 진격해갔다. 이 반격의 지휘관인 '리지웨이'장군이 포탄의 연기가 자욱한 전선 근처에서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1951. 2) '워싱턴'이 전세 여하에 따라 한국 포기까지도 생각했던만큼 '리지웨이'장군의 중공군 침략저지 작전의 성공은 한국과 세계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것이다고 기록했다.(한국전쟁 종군기자 주)
사진을 안양 사람의 시각에서 좀더 들여다 보면 저 다리(단기 4279년/ 1946년12월 표기)는 만안초교와 화단극장 중간의 1번국도 아래를 지나던 수암천 다리이거나 그보다 북쪽으로 1번 국도가 안양천을 건너던 안양교로 추정된다. 따라서 병사들이 뚝방에서 북쪽을 항해 경계를 서고 있는 지역은 안양 북부동(현재의 안양2동.만안초교 주변)이 아날까 싶다. 요즈음 한국전쟁 기록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최승원 교수님 분석처럼 당시 수암천 물길은 지금과 달리 화단극장앞쪽에서 유턴한후 n자로 흘러 만안초교 남쪽을 지나 박달리에서 안양천과 합류했으며 수암천 물길이 1번국도롤 통과하기에 현재의 안양역 앞과 만안초교 옆 등 2개의 다리가 있었을것이다.
최교수님께서는 안양대교와 증앙로를 언급해 지목하셨는데 당시엔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는 1번국도(만안로) 밖에 없었으며 안양천 통과 다리도 안양교와 안양철교만 있었다. 따라서 사진은 화단극장앞 1번 국도의 수암천 두번째 다리 또는 안양교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뒤쪽에 보이는 산은 석수동 꽃메산이 확실하며 중간 들판에 보이는 원통형 형태의 시설물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오끼목장의 농사용 싸일로(곡식 저장고)이다.. 그 뒤로 보이는 집들은 오끼목장 가옥들로 싸일로와 집들은 전쟁 이후인 1960년초까지도 있었다(만안초교 다닐때 직접 목격. 저곳에서 뻥튀기과자도 만들어 팔았으며 학생들이 사먹었음). 사진 아래 미군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왼쪽 뚝방 위쪽은 멀리 싸일로 와 일적선으로 농로 길이 놓여진점을감안하여 방위각을 추정해 볼때 수암천 두번재 다리라면 한국전젱 이후인 1962년 개교한 만안초교가 들어선곳이며 안양교라면 안양공설운동장(현재 럭키아파트)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다.
구글 라이프 한국전쟁 사진중 안양 관련 사진들이 12장 정도 검색되는데 이 사진들은 다음 카페 한류아데미와 네이버 블로그 송풍수월 (松風水月)을 통해 소개되고, 2023년 7월 안양문화원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시회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하지만 사진속 배경이 안양이라는 것만 소개했을뿐 사진에 담긴 상세한 설명은 없었기에 사진을 분석해 보았다..
이 사진은 중공군이 1950년 10월 한국전에 개입한 후 겨울을 거쳐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여 제 정비를 거친 8군의 반격사진으로 수리산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이 안양에서 1번국도를 따라 서을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으로 멀리 사진 뒷쪽 산밑에서는 폭탄이 터져 연기가 치솟는 장면도 담겨있다.
사진속 인물은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연합군이 반격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미8군 제 25사단.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으로 별 셋을 단 3성 장군이다.
당시 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는 사진 설명으로 미8군은 서서히 공산군을 쫓아 북상.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면서 한강으로 진격해갔다. 이 반격의 지휘관인 '리지웨이'장군이 포탄의 연기가 자욱한 전선 근처에서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1951. 2) '워싱턴'이 전세 여하에 따라 한국 포기까지도 생각했던만큼 '리지웨이'장군의 중공군 침략저지 작전의 성공은 한국과 세계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것이다고 기록했다.(한국전쟁 종군기자 주)
사진을 안양 사람의 시각에서 좀더 들여다 보면 저 다리(단기 4279년/ 1946년12월 표기)는 만안초교와 화단극장 중간의 1번국도 아래를 지나던 수암천 다리이거나 그보다 북쪽으로 1번 국도가 안양천을 건너던 안양교로 추정된다. 따라서 병사들이 뚝방에서 북쪽을 항해 경계를 서고 있는 지역은 안양 북부동(현재의 안양2동.만안초교 주변)이 아날까 싶다. 요즈음 한국전쟁 기록을 들여다보고 계시는 최승원 교수님 분석처럼 당시 수암천 물길은 지금과 달리 화단극장앞쪽에서 유턴한후 n자로 흘러 만안초교 남쪽을 지나 박달리에서 안양천과 합류했으며 수암천 물길이 1번국도롤 통과하기에 현재의 안양역 앞과 만안초교 옆 등 2개의 다리가 있었을것이다.
최교수님께서는 안양대교와 증앙로를 언급해 지목하셨는데 당시엔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는 1번국도(만안로) 밖에 없었으며 안양천 통과 다리도 안양교와 안양철교만 있었다. 따라서 사진은 화단극장앞 1번 국도의 수암천 두번째 다리 또는 안양교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뒤쪽에 보이는 산은 석수동 꽃메산이 확실하며 중간 들판에 보이는 원통형 형태의 시설물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오끼목장의 농사용 싸일로(곡식 저장고)이다.. 그 뒤로 보이는 집들은 오끼목장 가옥들로 싸일로와 집들은 전쟁 이후인 1960년초까지도 있었다(만안초교 다닐때 직접 목격. 저곳에서 뻥튀기과자도 만들어 팔았으며 학생들이 사먹었음). 사진 아래 미군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왼쪽 뚝방 위쪽은 멀리 싸일로 와 일적선으로 농로 길이 놓여진점을감안하여 방위각을 추정해 볼때 수암천 두번재 다리라면 한국전젱 이후인 1962년 개교한 만안초교가 들어선곳이며 안양교라면 안양공설운동장(현재 럭키아파트)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다.
사진 소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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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송풍수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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