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0/ #아카이브 #박창수열사 #안양 #기록/ 그때를 아십니까? 이 사진은 1991년 6월29일 오후6시 안양4동 벽산쇼핑앞 사거리에서 열린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추모집회에 5천여명에 달하는 많은 시민, 학생, 노동자 등이 운집했던 현장 모습이다.
아울러 매년 5월이 되면 안양역부터 안양5동 샘병원까지 대규모 집회와 거리행진이 실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양 샘병원은 박창수 노조위원장이 의문사를 당한 곳이다. 1981년 8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전 한진중공업)에 배관공으로 입사했던 박 위원장은 1990년 민주노조를 창설하고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박 위원장은 한 해 뒤인 1991년 2월 경기도 의정부 다락원 캠프에서 열린 노조 연대회의 수련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대공분실을 거쳐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당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군 사건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1991년 5월4일 머리를 서른여덟 바늘이나 꿰매는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이틀 뒤인 5월6일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였다. 박창수 위원장이 갑자기 죽자 시중에는 고문 치사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5월 7일 시신이 안치된 안양병원에 백골단과 전경 22개 중대를 투입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퍼부으며 영안실 벽을 부수고 들어와 그의 주검을 빼앗아갔다. 경찰은 강제로 부검을 실시한 뒤, 박 열사가 18미터 높이 병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안기부에서 고문치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살로 위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는 1991년 6월 29일 안양에서 추모집회를 가진후 30일 양산군 솥발산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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