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 #도시기록 #안양1동 #재건축 #진흥/ 안양1동 비산 진흥아파트 단지가 모두 헐리고 새건물을 짓기 위한 타워크레인들이 단지내에 우뚝 서있다. 이곳은 과거 굴뚝공장 섬유회사로 1955년 삼흥방직이 자리하고 있었다. 삼흥방직은 1953년 1월 서선하 사장이 설립했다가 1956년 금성방직 김성곤 사장이 인수해 태평방직으로 바뀐 곳으로 안양3동의 금성방직과 함께 안양에서 가장 큰 공장 중 하나였다.
태평방직 이야기
사진에 나오는 거대한 면적은 과거 태평방직이 있던곳이다. 이 공장은 1953년에 자본금 1억환으로 안양읍 안양리 97번지 일대에 설립된 삼흥방직이 전신으로 당시 방기 1만추, 직기 50대를 구비하고 1954년 10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금사정을 겪자 안양3동에 있는 금성방직이 1956년 5월 15일 인수하면서 공장은 다시 기운차게 돌아갔다.
당시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은 시흥군 지역 경제를 살리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두 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를 일컬어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은 1960-70년대 안양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논한다. 당시 두 공장에만 3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일해 월급날에는 안양시내 식당과 술집이 호황을 누릴 정도로 봉급 특수가 안양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의 3천 궁녀가 안양을 먹여살린다는 소리가 오랫동안 회자될 정도로 안양사람들의 기억에는 거대기업이었다.
특히 태평방직과 금성방직은 안양의 인구를 증가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1960년대 당시 안양시 인구는 불과 5만여명 정도에 불과해 공장에서 일할 인력이 태부족했다. 이에 두 공장에서는 수시로 지방으로 내려가 일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보릿고개로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중학교를 갓 졸업하면 취업이 가능했다. 이에 충청,전라,경상도에서 안양으로 상경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까운 충청도에서 올라온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안양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오빠, 삼촌 등 형제 친척들까지 안양으로 불러오는 계기도 만들어 현재 안양에 팔도민이 골고루 분포돼 있고 타 위성도시와 달리 팔도향우회가 매우 활성화 된 것도 하나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이같은 배경은 안양시 인구수에서도 나타난다.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던 당시의 인구는 10,000명, 1949년 8월 15일 안양읍 승격 당시 인구는 20,021명에 불과했는데 많은 굴뚝공장들이 들어선 이후인 1973년 7월 1일 안양시 승격 당시의 인구는 111,075명으로 무려 9만여명이나 증가했다.
태평방직은 1967년 10월 금성방직과 함께 대한농산(대농)에 매각되고 한국토지금고에 의해 택지개발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는데 1983년 신축한 진흥아파트(5층/12층. 33개동
1940세대)로 지어진지 30년이 지난 지금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재건축이 추진중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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