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1977년 안양장내동성당앞 풍경과 수해 청소

안양똑딱이 2016. 6. 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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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측은 보이지 않지만 안양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이 있으며 좌측의 건물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에서 운영하던 근로자회관으로 독일인 서말가리다 선교사와 한성인씨에 의해 1969년 건립하여(개관 1969년. 9월 10일)여자 청소년기숙사로 부터 시작해 1976년 남자기숙사를 개관하여 근로청소년들에게 숙식제공을 하면서 노동법 강좌 등 노동교육과 당시로서는 상영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노동관련 영화상영, 교육프로그램, 지역사회 공간제공, 근로자임대주택사업, 무료급식소, 이주노동자상담소와 쉼터 등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간 근로자 수만도 20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운영자의 결정에 따라 기숙사 시대를 마감하고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를 비롯 가정폭력상담소 및 여성쉼터 등의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진상복지관으로 변화를 꽤해 운영하다가 2007년 12월 31일을 기해 39년의 지역사회 및 노동사업을 마감하고 문을 닫고 수원교구의 요구에 의해 천주교 수원교구로 넘어간다. 
교구는 이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한후 2009년 12월 16일 교구사회복지의 중심기관인 가톨릭복지회관으로 재개관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사진 중앙에 탁구장 간판이 보이는 2층 건물은 현재도 있는 건물이다. 1960년대 이 건물 2층 오른쪽에는 피아노 2대뿐인 아주 작은 피아노학원이 있었는데 그곳 선생님의 지도력이 아주 뛰어나 피아노를 배우려면 줄을 서야했다. 지금 안양 만안구 국회의원인 이종걸 의원도 초등학교 시절 이곳에서 피아노를 배워 서울 예원중학교에 입학했다. 
2층 건물 앞쪽의 골목은 안양 중앙시장 남문 출입구(현재 제3문)이다. 근로자회관 건물과 골목 사이는 당시만해도 골목을 따라 노점상들이 쭈욱 장사를 하던 시절이다. 이 땅은 당시 근로자회관에 속해있던 대지(천주교 수원교구)였는데 교구가 수원가톨릭대학을 신축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보태고자 이 일반에 매각해 1층은 상가인 3층짜리 연립주택이 들어섰는데 그 중간이 지금의 곱창골목이다.
탁구장이 있는 2층 건물뒤로 보이는 종탑은 1955년에 건립한 안양중앙교회(기독교장로회)로 1980년대 초쯤에 교회는 그 자리에 대형빌딩을 짓고 1.2층은 상가로 임대하고 위로는 교회로 이용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정범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