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1/ #군포 #군포초교 #새로운군포100년기념탑/
군포초등학교 개교 100년을 기념하여 2020년 8월 교문 옆에 설치된 100년 기념비로 군포시가 시민과 함께 추진해 온 ‘새로운 군포 100년 기념사업’을 기억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기획, 제작됐다.
2.8m 높이로 유려하게 뻗은 곡선 형태의 ‘함께 걷는 길’은 ‘시민이 이룬 100년 군포의 길’과 ‘시민과 함께 할 새로운 100년의 길’을 의미한다.
또한 기념비는 청색과 녹색의 색상을 띄는데 이는 각각 군포시와 군포시민을 상징하며, 기념비에 새겨진 100개의 타공이 ‘100년’을 의미한다.
기념비 제작 및 설치를 기획한 군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상부로 올라갈수록 극적으로 뻗어나가는 길의 형상은 군포시의 무한한 발전과 시민과의 화합‧상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기념비의 의미를 설명했다...
군포초등학교 역사
일제강점기인 1920년 04월 01일 故 조중완 어르신에 의해 설립된 군포초등학교가 개교 100년을 맞아 2020년 11월 8일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100주년 기념식과 음악회를 개최했다. 군포초등학교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6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보통학교 인가를 받아 다음해인 1920년 4월 1일 군포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다. 개교 당시에는 학교가 군포장역이 있던 시흥군 남면 역전 인근(현 군포로 43. 우리은행 군포지점 삼거리)에 있었으나 1959년 10월 20일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군포보통학교 설립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신문에 게제될 정도로 유별났다. 당시에는 근대식학교 교육이 도입되기 전으로 안양권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서당교육을 받거나 멀리 과천보통학교로 틍학을 해야했다. 지역에 사시던 노년분들의 회고에 따르면 서당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며 훈장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글을 아는 다른 이가 자기 집에서 훈장을 하며 가르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학비로는 여름에는 보리 한말, 가을에는 쌀 한말 정도를 냈는데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가난한 집에서는 이것도 준비를 못해서 서당을 포기하거나 아예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같은 현실에서 주택이 700호에 불과한 자그마한 군포에 학교가 설립되었으니 대단한 사건이었다. 군포공립보통학교 설립 이야기가 실린 매일신보(1924.11.27일자)를 보면 군포시는 당시 행정구역상 시흥군 남면에 속해 있었는데 호수가 700호 미만의 작은 면이었으나 일찍이 교육과 산업에 대한 노력이 남달라 지역 유지와 주민들의 열의로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고 그 설립이유를 적고 있다. 특히 일제의 교육정책에 의해서 당시 대부분의 소도시 초등학교 과정은 4년제로 중학교로의 진학이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군포공립보통학교는 인근에서 유일하게 6년제 학교로 설립이 되었으여 이 때문에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하려면 6년제 학교인 군포공립보통학교로 편입할 수 밖에 없어 주변지역인 의왕이나, 안양, 안산, 광명, 시흥지역에서 까지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아 1930년대까지도 통학난을 겪었다고 한다. 군포공립보통학교(現 군포초등학교) 설립에는 당시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 면장을 지내고 군포우체국장, 경기도 평의회원 등을 역임했던 故 조중완(1879~1942)옹의 역할이 컸는데 교육부는 2017년 8월 28일 교육 불모지였던 시흥군 남면에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세워 지역 및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을 인정해 국민교육 발전 유공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하였다. 조원극 초대 군포시장 조부인 故 조중완 옹은 1879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제국무관학교를 거쳐 조선육군연성학교 교관(참령)을 역임하던 중 일본군에 편입하라는 강권을 거부하고 경기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로 이주했다. 당시 초등학교조차 없어 교육 불모지와도 같았던 모습에 개탄하여 50% 이상의 사재를 출연하여 7개 교실, 11개 학급의 군포공립보통학교를 1920년 건립했고, 現 군포역사 옆에 사설 우체국을 설립해 지역주민들에게 정보문화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도 했다. 또한, 시흥시 남면 진흥회장을 거쳐 1916년 남면 면장으로 추대된 선생은 소득원이 빈약한 지역사회 현실을 개선하고자 남면 농촌계량연합회를 창립하여 농촌 생활환경 개선사업 및 소득 증대사업을 추진하고, 조혼·미신 등의 폐풍을 일소하는 대신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농민들의 생활과 위생 향상을 위해 경진회 등 시상제를 도입해 농민들의 의식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등 지속적인 계몽운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서왔다. 마을과 도시의 역사를 보면 인구수 따라 설립되는 초등학교 역사와 비례한다. 2018년 졸업 회수로 본 안양권(안양.군포.의왕.과천) 초등학교 역사를 볼때 1900-1940년대 마을의 크기와 인구수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과천초등학교 104회(1912.04.01 개교/ 1900.07.20 과천군공립소학교로 개교) 군포초등학교 97회(1920.04.01 개교) 안양초등학교 86회(1929.12.20 개교) 고천초등학교 79회(1936.12.01 개교) 덕장초등학교 70회(1949.03.25 국교 승격) 안양남초등학교 69회(1946.03.15 흥안국교 개교/ 1970.12.07 안양남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관양초등학교 69회(1948.04.01 개교) 부곡초등학교 69회(1946.08.10 반월국교 부곡분교장 인가/ 1948.10.06 부곡국민학교 승격) 삼성초등학교 64회(1954.04.01 개교/ 1949.03.01 안양초교 삼성분교 개설) 만안초등학교 55회(1962.03.01 개교) 안양동초등학교 48회(1969.03.01 개교) 안양서초등학교 45회(1972.11.25 개교) 군포초등학교의 역사는 곧 군포시 역사의 큰 줄기와 맥을 이어 온 거대한 나무의 뿌리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포초등학교는 대한민국 근대 역사 속에서 큰 공헌과 흔적을 남긴 인재들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터전이기도 하다.” 이재형 전 국회의장, 이재준 대림산업회장, 이성호 전 해군 참모총장, 한봉수 전 상공부장관, 송요택 원자력 공학박사, 이필우 전 서울 경찰청장 등 전국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중요 인물들을 배출한 학교다. 군포초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이 현재 군포시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도 실로 막대하다. 전 초대 민선 시장이었던 조원극, 전 경기도의회 의장 한근이, 전 군포시시의회 의장 김진용, 권원혁, 노재영, 상공회의소 회장 유병직, 문화원장 송윤석, 예총회장 곽상원 등 군포지역 사회 경제 문화 예술 행정 시민단체 등의 단체장, 또는 핵심 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군포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한 모든 시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군포초등학교 동문이라고 말한다면 군포초교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군포초등학교 동문회 22대회장을 역임한 김인수씨는 ”제가 입학했던 1961년 초에는 군포초등학교 앞 신작로 길을 사이에 두고 문방구와 이발소 두 집만 덩그러니 있었을 뿐 주변 모두가 논과 밭으로 먼지가 펄펄 날리던 시골길이었어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경부선 군포역 주변과 군포 구 사거리에는 재래시장이 열렸습니다. 수리산에서 내려온 개천인 맑은 내, 백운산에서 내려 온 흐린 내에서 고기를 잡고 멱을 감던 시절을 우리들은 잊지 못합니다. 운동회가 있는 날은 축제 분위기로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들었지요. 저는 산본리에서 매일 한시간 씩 걸어서 학교로 등교 했습니다. 그러나 지각이나 결석 한 번 없었어요. 안양 중학에 입학한 이 후에도 그 곳까지 걸어 다녔습니다. 이렇게 순수했던 어린시절의 학교 동창들은 평생 우리 마음의 여유와 추억이 되어져 이러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자인 것입니다.” 군포초등학교는 1945년 개교 25주년을 맞이하던 해 광복의 기쁨과 함께 최초로 한국인 교장선생님을 맞이하는 기쁨을 맞이했다. 1970년 이 후 매년 300명 씩 배출되던 학생수가 80년대에 이르러서는 600명이 넘는 숫자에 이르러 지난 2019년에 이르러서는 2만4천699명이라는 동문을 배출하게 된 것이다. 한편 군포시와 군포문화재단은 2020년 8월 21일 군포초등학교에서 ‘새로운 군포 100년 기념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군포초등학교 교문 옆에 설치된 기념비 ‘함께 걷는 길’은 시민과 함께 추진해 온 ‘새로운 군포 100년 기념사업’을 기억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기획, 제작됐다. 2.8m 높이로 유려하게 뻗은 곡선 형태의 ‘함께 걷는 길’은 ‘시민이 이룬 100년 군포의 길’과 ‘시민과 함께 할 새로운 100년의 길’을 의미한다. 또한 기념비는 청색과 녹색의 색상을 띄는데 이는 각각 군포시와 군포시민을 상징하며, 기념비에 새겨진 100개의 타공이 ‘100년’을 의미한다. 이번 기념비 제작 및 설치를 기획한 군포문화재단 관계자는 “상부로 올라갈수록 극적으로 뻗어나가는 길의 형상은 군포시의 무한한 발전과 시민과의 화합‧상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기념비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한대희 군포시장, 한우근 군포문화재단 대표이사, 이학영 국회의원, 성복임 군포시의회 의장, 서정직 새로운군포100년위원회 위원장 등 주요 인사 20여명만 참여한 가운데 치러졌다. 한대희 군포시장은 이날 제막식에서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군포초등학교에서 새로운 군포 100년의 시작을 알리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며 “시민의 힘으로,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갈 새로운 군포 100년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군포초등학교 설립자 故 조중완(1879~1942)옹 교육부가 2017년 8월 28일 군포공립보통학교(現 군포초등학교) 설립자인 故 조중완(1879~1942)옹에게 국민교육 발전 유공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경기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 면장, 군포우체국장, 경기도 평의회원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교육 분야에 이바지했으며, 특히 교육 불모지였던 시흥군 남면에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세워 지역 및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이 인정됐다. 고인은 1879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한제국무관학교를 거쳐 조선육군연성학교 교관(참령)을 역임하던 중 일본군에 편입하라는 강권을 거부하고 경기 시흥군 남면(現 군포시)로 이주했다. 당시 초등학교조차 없어 교육 불모지와도 같았던 모습에 개탄하여 50% 이상의 사재를 출연하여 7개 교실, 11개 학급의 군포공립보통학교를 1920년 건립했고, 現 군포역사 옆에 사설 우체국을 설립해 지역주민들에게 정보문화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도 했다. 또한, 시흥시 남면 진흥회장을 거쳐 1916년 남면 면장으로 추대된 선생은 소득원이 빈약한 지역사회 현실을 개선하고자 농촌 생활환경 개선사업 및 소득 증대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속적인 계몽운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남면 농촌개량연합회를 창립하여 조혼·미신 등의 폐풍을 일소하는 대신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농민들의 생활과 위생 향상을 위해 경진회 등 시상제를 도입해 농민들의 의식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정태화]군포의 숨은 역사와 일꾼을 소개합니다 2015.01.06]군포신문/ 군포신문 자문위원장 군포시가 시 승격이 되기 전 전신은 시흥군이었다. 경기도 시흥군이 현재의 안양시, 과천시, 광명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그리고 군포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역사에서 없어져 버렸다. 군포시민으로 생활하고 있던 중 우연히 국가상훈편찬위원회에서 발간된 현대사의 주역들을 접하게 되었다. 동위원회 3034호 국가사회유공인 사편에 조중완(趙重完)옹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중완 선생은 본관(本貫)이 경기도 양주이고 출생지는 서울, 생년월일은 1879년 8월 20일이고 대한제국무관학교졸업 조선육군연성학교 참경(오늘의 군 계급으로 소령에 해당) 군포초등학교를 설립, 군포사설 우체국장, 시흥군 남면장, 시흥군 남면진흥회장을 역임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조중완 옹은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은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여 자주독립의 실현을 위해 전 생애를 불사른 인사로 특히 농촌의 생활 환경개선 사업과 소득증대사업을 통해 개화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민족화합을 이끌었던 이 땅의 참 애국자이자 숨은 선각자라고 기록됨을 알게 되었다. 조중완 옹께서는 조선의 군인으로 부국강병이 곧 조국을 지키는 길이라는 신념아래 정예 강군육성에 혼신의 힘을 다하던 중 1910년 한일합병을 맞아 일본군에 편입하라는 강권을 거부하고 서울 종로구 가희방(지금의 계동)에서 사시다가 군포시로 이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의 뜻에 반하는 침략행위를 강행한 일본이 우리의 성(姓)과 이름까지 일본이름으로 바꾸는 잔학무도한 일들을 마구 휘두를 때 조옹께서는 일본군 편입에 동의하지 않고 군포로 낙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포에 배움의 터가 없음을 깨닫고 사재를 출연하여 6개 학급과 교무실을 갖춘 6년제 초등학교를 건립하였다. 또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신왕래마저도 자유롭지 못한 지역주민을 위하여 사설 우체국을 현 군포역 주변에 설립했다. 한편 시흥군 남면진흥회를 설립해 소득원이 빈약한 현실을 파악하고 농촌 환경 개선사업과 소득증대사업을 추진했다. 농기구인 삽, 호미, 쇠스랑, 갈퀴 등을 지원했으며 지속적으로 계몽사업과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남면 농촌개량연합회를 창립해 조흔, 미신, 간식, 치주, 연초 등의 폐품을 일소하고 우리민족의 고유의 미풍양속을 계승발전 시켰으며 농민들의 생활과 위생의 향상을 위해 경진대회를 개최하여 시상제를 도입, 농민들의 생활의식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셨다. 평생을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1942.3.12.서거하시니 당시 시흥군 남면장인 양재호(지금의 대야동 거주 양덕부의 아버님)의 제안으로 남면민장(南面民葬)위원회를 구성, 양면장이 장례위원장이 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포시의 적은 행정구역의 면적에서 조옹과 같은 지역인사가 있었다는 것은 오늘의 군포시민의 긍지와 군포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런데 1995년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되면서 초대 군포민선시장을 역임한 조원극 전 시장이 조옹의 친손자임을 알게 됐다. 조옹의 개화 운동과 지역에 헌신한 그 군포에서 그 손자가 초대 민선시장이라는 역사가 만들어 졌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철하]故조중완의 국민훈장 모란장 재검토되어야한다 2017.11.10/향토사학자. 의왕시문화원 이사 故조중완에 대한 교육부의 국민훈장 모란장 수여는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제강점기 지역유지로서 조중완의 일제의 식민지배정책에 대한 협력 문제에 대해 제대로 검토를 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다음은 일제강점기 조중완의 조선총독부 공직 행위와 군포장 독립만세 시위 이후 그의 행동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니 참고하셔요. -1917.9.18 시흥군참사(조선총독부 시흥군수의 자문)에 임명됨 -1919.4 군포장(역) 독립만세 시위 이후 군참사로서 남면면장과 함께 곳곳을 순회하며 "경거폭동 등의 행위를 하지마라"고 타이르고 다님. -조선총독부가 지방민심을 달래기 위해 지방유력자를 선발하여 촉탁원으로서 설유하도록 했는데, 군참사 조중완은 촉탁원으로서 20일 동안 그 방침을 충실히 수행함 -1920.12 경기도평의회 의원(조선총독부 경기도지사 자문) -1921.4 영등포금융조합 감사 -1924.2 안양금융조합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장에 취임함 -1924.4 경기도평의회원 재임 -1927 군포장우편소장 -1930 시흥군 남면 면장 -1933.9 남면농촌진흥중앙청년단 단장 -1937.3 농촌진흥운동 실적에 대해 미나미총독 표창 받음(부상으로 200원/現300~400만원) -1938.5 남면 면장 사임 -1938.7 일제의 침략전쟁 협력을 위한 국민정신총동원 시흥군연맹 결성(안양신사앞)에 참여하고 이사로 활동. 결성 때 <선언>에서는 일치단결하여 국민정신 총동원하여 내선일체의 모든 능력을 발양 하고 국책 수행에 협력해서 성전(聖戰) 궁극의 목적 관철을 기할 것을 다짐함 -1939.1 조중완 외 11명의 이름으로 시흥군 남면 신사(神祠) 설립을 자진하여 원하여 1월 30일자로 허가받음 [이상열]숫자보 요약해 본군포 지역 교육사 군포시사펀찬위월회 상임위원 군포지역의교육은어떤과정을거쳐발전해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2009년 기준으로 'l00' ' '90' ' 50'그리고 '21 이라는 숫자로 요약해 볼수 있다. 먼저 100은신학문을교육한지 100년이 지났음을의미한다. 물론이 지역에서 최초로근대식 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신학문을 교육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1900년대말 당시 안산군북방면 속달리에 좌동학교라는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에서 일정 정도 신학 문을 교육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1909년 대한매일신보 에는 「안산좌동학교」라는 다음과 같은기사가 실렸다. 안산좌동학교 경기도얀산군북방면속달리 이장정규대 통정 고진口 양씨가초동야학교를설럽하여 그근처 초동을모집해F 교수하는데 학생이 사십여 명이라더라O 이 기사에 나타나는 안산군 북방면 속달리는 현재의 속달동을 말한다. 기사의 날짜로 미루어 이 학교는 1909년 이전에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가 어떠한 형태로 학생들을 교육하였는지, 그리고 그곳의 체계가 어떠하였는지는 알수가 없으나 일종의 강습소였다고 추정된다. 또한 좌동학교 외에 좀 더 체계를 갖춘 교육기관이 과천군 남면 산본리에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과남학교댔南戰성라는 이름의 학교인데, 1910년 매일신보 에는 「과남교황偶南校삐」이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은기사가실렸다. 뽕南校m. 果川용l 南面 學校는 該面 山本洞에 移設흔口 固月에 校長 姜寅奎, 校長 口大 펀 敎師 金.펀‘햄, 財務 彩/짧-“ 장 교 육의 변천과 현황 長李秀口, 學藍李鍾薰, 事務 흘찢[敬뿔;諸口가熱 、敎育흠으로서 學徒가五口名에 達승엿다더랴· 과천군 남면 산본리, 즉 지금의 산본동에 설립되었던 과남학교는 교장, 부교장, 교사, 재무장, 학감, 사무장등이 있던 점으로 미루어 죄동학교에 비해서 좀 더 체계를갖추었다고 하겠다. 과남이라는 이름은 과천군 남면 혹은 과천의 남쪽이라는뭇으로판단된다, 몇몇 글자를 판독하기 어렵고 내용도 자세하지 않으나 이 기사에서 “산본동에 이설한지 개월”이라고소개한점으로 미루어 늦어도 년부터는 교육이 이뤄 다고 볼 수 있다. 좌동학교와 과남학교가 정확히 어떠한형태로 운영되고어떠한 과목을 가르쳤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그시기에 랜과천시 지역에서 운영되던광명학교나명륜학교가신구偶薦)학문을절충 ‘하여 가르쳤던 점을고려하면, 두 학교 모두 기존의 서당과는 달리 신구학문을 절충하여 학생들을 교육하였다고 추정된다. 서당이 생긴 것에 대해서 신문에서 기사화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추정은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90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군포 지역 최초의 초등학교인 군포초등학교가 설립 인가된지 90년이 되었음을의미한다. 또한 이 학교는 2010년으로 개교 90주년을 맞는다. 군포초등학교는 군포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고시 153호에 의해 1919년 월 일 자로설립 인가되었는데 ) 이 학교의 설립에는당시 지역 유지이던조중완씨의 기여가컸다고 229 1) 「잡보」, 달판때한매일신보」 XJ년 월 일 낀 「잡보 , 일신 」 910 년 월 24일 3) . 조선총독부관보」 91 년 월 일 230 알려져 있다. 1919년 립 인가되었으나 군포초등학교가 개교한 것은 1920년 월 일이었다. 그리고 개교식은 개교일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1920년 월 27일에 거행되었쓰며, 이 날짜 동아일보」에는다음과 같은 기사가실렸다. 始興휠n 南公立普通평校는四月 二十七日 쉬윷-時 同校落成秉 開校式을떨行하는데, 同컵jl jl守徐廷폼, 후]頂 長李쫓폐 學校長武田龍 죄 듬성:11:의 名뚫로各 의 음휩 뽕을發하엇더라4) 다음으로 50이라는숫자는군포초등학교 개교부터 그 다음학교가 개교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192 년 군포초등학교가 개교하고 50년이 흐른 1970년에야 둔대초음학교가 개교하였다. 그 사이에 군포 지역의 교육기관은군포초등학교한곳에 불과했던 것이다. 둔대초등학교는 1964년 3월 일에 반필국민학교(현 반월초등학교) 둔대분실로 출발하여 1969년 월 일에 둔대분교로 승격하였고, 1970 년 월 일자로 둔대국민학교로 인가되어 그달 13 일에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둔대초등학교 전신인 둔대분실의 설립에는 둔대동에서세거해온청송심씨문중 심진억씨의 공로가컸다. 둔대초등학교교정에 세워진 개교유래비에는다음과같은닫귀가쓰여 있다. 고개 념고징검다2] 내를 건너 먼 길(반웰 걷는 어린이들 애처로워 청송심씨 잘방공손심진억 님 학교 터 주시고 둔대, 속달, 대야미 온 마을주민들 배움 터 득빡세운학교. JV 리 손돌줍고 나무심어 인재배줄이어질 둔대 동 산열었네. 죽암미을 청송 심씨 문중의 종손인 심규일 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교묶청의 지원을 받아서 원두막 모양의 건물 두동을 건축하여 둔대분실을 열었다고한다,당시에는길조차제대로없어서주민들에게 추펌하고 이곳에 선대 묘를 이장한외부 인사들에게 기부를 받아서 길을 넓혔다고한다. 2009년을 기준으로할때, 군포초등학교개교로부터 90여 년세월이 꼴렀으니 군포지역에서 정규초등교육의 역사는상당히 오래되었다고할수 있다, 그러나초등교육에 비해서 중등교육의 역사는상당히 짧은 편이다, 1950년에 시흥군이 펴낸 『금천지 에는 남변에는 단기 4252년 고 조중완 씨의 노력으로 설립된 현 군포국민학교가있을뿐이다. 해방전까지는 동면 산본리와 부곡리에사설강습소가있었으나 해방후양강습소 똥을동교에 편입시키어 현재 학급편성으로총아동수는 90 명이다. • 금년도에 20병이 미취학으로되어 있으나이는학비 부담이 곤란한극빈아동이다.” 라고하였다.히 4) 軍浦公 :156'ι, 등등{) 일보」 192C 년 월 Z1 일 5) , 〕, 금천 니, 쪽 년대 군포초등학교 전경잉 이는 1949년경의 상황을 기술한 것인데, 학비 부담으로 초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히는학생적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초등교육마저 이러한실정이었으니 중등과정에 진학~'l}는학생들은 소수에불과했다, 따라서 변단위에불과하던당시 군포지역에중등학교가생기기란쉬운일이 아니었고, 이러한상황은그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제 마지막남문 27이라는숫자의 의미를살펴보자. 이 숫자는 바로군포지역 정규중등교육의 역사를 의미한다-. 군포 지역 최초의 중학교는 시흥군 남면이 군포읍으로 승격하고 년이 지난 1982년에 개교한 군포중학교다. , 2009년은 이 학교가 개교한 해로부터 27년이 되는 해이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군포읍이 시로승격한 1989년 개교한 군포고등학교가최초다. 이렇다보니 그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AJ--급학교로 진학하려는학생들은 안양이나수원, 멀리는 서울까지 가야만했다. 군포 지역처럼 읍이 되고서도수년이 지나서야중학교가생기고 시로 승격할 때까지 고등학교가 없던 경우는그리 흔하지 않다. 군포 지역과같은시기에 읍으로, 그리고 시로 승격한 의왕 지역에서는 이미 1984년에 고등학교가 개교한 것과도 비교되는 현상이다.
교가
아름다운 산천에 우뚝이 서서 이 고장의 배움의 힘 밝혀준 이곳 일백년 오랜 역사 전통을 받아 스스로가 일하며 배우는 우리 아 군포 우리 모교 새 일꾼의 배움터 희망의 등 밝혀라 우리의 군포 앞동산의 오봉은 다정한 친구 우뚝솟은 우리산은 우리의 기상 일백년 오랜 역사 전통을 이어 씩씩하게 자라자 힘을 기르자 아 군포 우리 모교 새 일꾼의 배움터 희망의 등 밝혀라 우리의 군포
교화 개나리
교목 소나무
연혁
1919-06.01-군포공립보통학교 인가
1920-04.01-군포공립보통학교 개교
1959-10.20-군포역전에서 현 위치로 이전
1981-03.11-병설 유치원 개원
1987-08.31-후관 4층 완공
1990-04.01-체육관 준공
1991-11.04-본관 5층 완공
1996-03.01-군포초등학교로 개명
1997-12.17-급식소 개소식
2005-06.21-학교 숲 조성 공사 준공
2005-11.30-급식실 증축
2008-12.30-학교운동장 인조 잔디 구장 조성
2010-02.21-본관 및 후관 옥상 난간 설치공사(438m)
2011-11.18-본관동 덤웨이터 공사
2014-03.03-47학급 편성(특수학급 2학급 포함)
2016-02.12-제 95회 졸업식 2016-03.02-42학급 편성(특수학급 2학급 포함)
2016-09.01-제 26대 천귀순 교장 취임
2018-03.01-혁신학교 지정 2018-08.01-외부 유리창 이중창 교체
2019-02.15-제 98회 졸업식 2019-03.01-42학급 편성(특별학급 1학급,특수학급 2학급 포함)
관련 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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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군포보통학교 2학년(25회 졸업생) 학기초 기념사진 https://anyangbank.tistory.com/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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