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마애종/문화적 상상력으로 만난 안양과 마애종,
[11/14 안양민예총]박 명 주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 운영위원장
[11/14 안양민예총]박 명 주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 운영위원장
문화적 상상력으로 만난 안양과 마애종,
‘자유로운 이상향’과 ‘평화적 가치’의 결합
박 명 주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 운영위원장
<기조발제>를 해주신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님과 <발제>를 해 주신 동국대 최응천·곽동해 교수님의 고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상국 원장님께서 제안하신 [마애종을 ‘안양의 종(鍾)’으로!] 조성하자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향후 의미있는 활동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또한 최응천·곽동해 교수님의 [安養마애종에 대한 고찰]을 통해 막연한 상상이 선명한 사실로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애종이 문헌에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마애종이 과연 중초사에 있었던 것이냐? 안양사에 있었던 것이냐?’는 두고두고 논란의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에 거리상으로 ‘중초사와 안양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보물4호인「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보물4호)」와 더불어 경기도유형문화재 제93호 「안양사지·귀부安養寺址·龜趺]가 불과 1km 이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초사지·당간지주」의 명문에는 ‘신라 흥덕왕 원년(826년)에 채석하였고,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년)에 조성 완료’되었다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고려 때 최영장군이 7층 전탑(塼塔)을 세웠으며 승려 천명이 불사(佛事)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 옛 안양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며,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원당(八角圓堂)의 부도(浮屠)와 귀부가 있습니다. 귀부는 현존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이 글을 짓고 명필 이원부(李元符)가 비문을 썼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안양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안양사는 아니라 할지라도, 안양사 귀부(安養寺 龜趺) 역시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와 마찬가지로 관악산(삼성산) 자락에서 출토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명백하게 밝힐 수만 있다면 더욱 의미있는 사건이라 여겨지겠만, 마애종을 두고두고 음미하며 과제로 남겨도 좋을 듯 싶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1,000년 전 이름없는 석공이 ‘무엇을 염원하며 마애종을 울렸는가?’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양민예총의 꿈꾸는 安養世界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이하, 안양민예총)에서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04년의 일입니다.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은 1000년 세월의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연계한 안양민예총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안양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의 창건시기와 마애종(磨崖鐘)의 조성시기가 비슷하다는 데에서 착안하여, 안양(安養)이 뜻하는 ‘자유로운 이상향의 세계’와 종(鐘)이 상징하는 ‘평화적 가치’를 결합한 것입니다.
종은 종이되 소리가 나지 않는 종, ‘소리로서 인류를 구제하고자 한’ 천년 마애종의 숨결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 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안양민예총이 바라보는 마애종
안양민예총이 바라보는 마애종은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평화세계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담은 우리 민족의 창조적 문화유산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예술작품」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安養이 뜻하는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자유로운 이상향’과 소리로서 인류를 구제하고자 한 마애종의 ’1,000년의 울림’을 이어 평화세계의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드높이고자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시작한 것입니다.
安養마애종을 21세기 인류가 염원하는 세계적 평화의 상징으로서 조명하고, 安養이 뜻하는 ‘자유로운 이상향’에 대한 고찰과 도시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와 영성의 대표도시’로서 안양이란 도시의 미래에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포부를 키우고 있습니다.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영성문화, 그리고 마애종]을 주제로 2004년에 처음 개최하였으며, 2005년에는 안양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국가문화재 승격에 대한 논의]를 펼쳐왔습니다.
이는 국내 유일의 문화재이자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문화유산임에도 획일적인 문화재행정으로 인해 지방문화재에 머물러 있는 마애종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자는 자성에서 출발하였습니다.
2005년 11월에 개최한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은 1500여 년의 역사와 불교문화재가 밀집한 안양유원지 일대에 50억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다수 시민이 뜻도 모르는 서양식 조형물을 설치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05)」를 ‘안양의 역사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대응하였습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십시일반의 뜻을 모아 「安養世界 종 축제」와 「安養世界 평화展」을 열었습니다. 일주일에 걸친 이러한 노력은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전했으며, 안양시민신문에서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安養世界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2006년 신년좌담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제3회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의 과제
우리는 ‘안양 석수동 마애종’을 국가 문화재로 승격시키고, 그 명칭을 ‘안양 마애종’으로 변경하고자 하며, 국내 백과사전에 등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또한 서산마애삼존불의 사례와 같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마애종을 훼손한 결과가 되어버린 보호각의 철거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
또한 주변시설 정비하여 문화재다운 문화재로 가꾸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마애종 주변시설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이렇습니다.
1. 마애종 앞 차도를 차단하여 인도로 전환
2. 6~70년대에 높인 지면(2M)을 낮추어 본래대로 마애종을 우러러 보도록 하며
3. [마애종]을 가로 막고 있는 유원지 주차장 화장실 이전과
4. 역시 [마애종]을 가로 막고 있는 ‘공공예술프로젝트 사무국 건물’ 철거
5. [마애종] 암벽 밑의 방치된 약수터 재단장
6. [마애종]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 전체를(또는 삼성산 일대를) 문화재로 바라보는 거시적 문화재 행정의 발전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더불어 꿈꾸는「安養世界와 마애종 포럼」
1. 마애종 평화재단 설립
마애종포럼을 평화재단으로 확대하여 ‘평화와 영성의 가치’를 확대하고, 대중화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지방문화재에 머물러 있는 마애종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는 활동과 더불어 새로운 민족문화의 상징으로서 법고창신에 기초한 문화유산의 계승·보존활동에 나서고자 합니다.
서울에 가려진 지역문화(경기·안양)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전시활동을 통해 ‘소리로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마애종의 1000년의 울림’을 잇고, 국제적인 평화운동·문화예술운동의 교류의 장으로 확대해 가고자 합니다.
2. 지역의 정체성 확립
마애종의 평화사상을 연계하여 역사 속 지역의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하여 안양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안양에는 모진 형벌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신 천주교 최경환 성인(1805~1839)이 계십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의로운 정신과 기백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장본인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평생을 고문후유증으로 불우하게 살다 가신 원태우 지사(1882~1950)가 계십니다.
종교와 지역을 넘어 시대를 밝힌 義人들의 자유·박애사상을 안양의 정신으로 전파하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이상향’과 ‘평화적 가치’의 결합
박 명 주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 운영위원장
<기조발제>를 해주신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 원장님과 <발제>를 해 주신 동국대 최응천·곽동해 교수님의 고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상국 원장님께서 제안하신 [마애종을 ‘안양의 종(鍾)’으로!] 조성하자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향후 의미있는 활동과제로 삼고자 합니다.
또한 최응천·곽동해 교수님의 [安養마애종에 대한 고찰]을 통해 막연한 상상이 선명한 사실로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애종이 문헌에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마애종이 과연 중초사에 있었던 것이냐? 안양사에 있었던 것이냐?’는 두고두고 논란의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에 거리상으로 ‘중초사와 안양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보물4호인「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보물4호)」와 더불어 경기도유형문화재 제93호 「안양사지·귀부安養寺址·龜趺]가 불과 1km 이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초사지·당간지주」의 명문에는 ‘신라 흥덕왕 원년(826년)에 채석하였고,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년)에 조성 완료’되었다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고려 때 최영장군이 7층 전탑(塼塔)을 세웠으며 승려 천명이 불사(佛事)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 옛 안양사의 규모를 짐작케 하며,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원당(八角圓堂)의 부도(浮屠)와 귀부가 있습니다. 귀부는 현존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金富軾)이 글을 짓고 명필 이원부(李元符)가 비문을 썼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안양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창건한 안양사는 아니라 할지라도, 안양사 귀부(安養寺 龜趺) 역시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와 마찬가지로 관악산(삼성산) 자락에서 출토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명백하게 밝힐 수만 있다면 더욱 의미있는 사건이라 여겨지겠만, 마애종을 두고두고 음미하며 과제로 남겨도 좋을 듯 싶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1,000년 전 이름없는 석공이 ‘무엇을 염원하며 마애종을 울렸는가?’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양민예총의 꿈꾸는 安養世界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안양군포의왕지부(이하, 안양민예총)에서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처음 시작한 것이 2004년의 일입니다.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은 1000년 세월의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연계한 안양민예총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안양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안양사(安養寺)의 창건시기와 마애종(磨崖鐘)의 조성시기가 비슷하다는 데에서 착안하여, 안양(安養)이 뜻하는 ‘자유로운 이상향의 세계’와 종(鐘)이 상징하는 ‘평화적 가치’를 결합한 것입니다.
종은 종이되 소리가 나지 않는 종, ‘소리로서 인류를 구제하고자 한’ 천년 마애종의 숨결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 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안양민예총이 바라보는 마애종
안양민예총이 바라보는 마애종은 「전쟁과 혼란의 시대에 평화세계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담은 우리 민족의 창조적 문화유산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예술작품」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安養이 뜻하는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자유로운 이상향’과 소리로서 인류를 구제하고자 한 마애종의 ’1,000년의 울림’을 이어 평화세계의 상징으로서 그 가치를 드높이고자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을 시작한 것입니다.
安養마애종을 21세기 인류가 염원하는 세계적 평화의 상징으로서 조명하고, 安養이 뜻하는 ‘자유로운 이상향’에 대한 고찰과 도시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평화와 영성의 대표도시’로서 안양이란 도시의 미래에 새로운 발전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포부를 키우고 있습니다.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영성문화, 그리고 마애종]을 주제로 2004년에 처음 개최하였으며, 2005년에는 안양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국가문화재 승격에 대한 논의]를 펼쳐왔습니다.
이는 국내 유일의 문화재이자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문화유산임에도 획일적인 문화재행정으로 인해 지방문화재에 머물러 있는 마애종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자는 자성에서 출발하였습니다.
2005년 11월에 개최한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은 1500여 년의 역사와 불교문화재가 밀집한 안양유원지 일대에 50억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다수 시민이 뜻도 모르는 서양식 조형물을 설치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05)」를 ‘안양의 역사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대응하였습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십시일반의 뜻을 모아 「安養世界 종 축제」와 「安養世界 평화展」을 열었습니다. 일주일에 걸친 이러한 노력은 지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전했으며, 안양시민신문에서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安養世界를 말한다’라는 주제로 2006년 신년좌담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제3회 安養世界 마애종 문화포럼」의 과제
우리는 ‘안양 석수동 마애종’을 국가 문화재로 승격시키고, 그 명칭을 ‘안양 마애종’으로 변경하고자 하며, 국내 백과사전에 등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또한 서산마애삼존불의 사례와 같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마애종을 훼손한 결과가 되어버린 보호각의 철거운동을 펼치고자 합니다.
또한 주변시설 정비하여 문화재다운 문화재로 가꾸어야 한다는 신념입니다. 마애종 주변시설 정비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이렇습니다.
1. 마애종 앞 차도를 차단하여 인도로 전환
2. 6~70년대에 높인 지면(2M)을 낮추어 본래대로 마애종을 우러러 보도록 하며
3. [마애종]을 가로 막고 있는 유원지 주차장 화장실 이전과
4. 역시 [마애종]을 가로 막고 있는 ‘공공예술프로젝트 사무국 건물’ 철거
5. [마애종] 암벽 밑의 방치된 약수터 재단장
6. [마애종]이 새겨진 거대한 바위 전체를(또는 삼성산 일대를) 문화재로 바라보는 거시적 문화재 행정의 발전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더불어 꿈꾸는「安養世界와 마애종 포럼」
1. 마애종 평화재단 설립
마애종포럼을 평화재단으로 확대하여 ‘평화와 영성의 가치’를 확대하고, 대중화 하는 사업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지방문화재에 머물러 있는 마애종을 국가문화재로 승격시키는 활동과 더불어 새로운 민족문화의 상징으로서 법고창신에 기초한 문화유산의 계승·보존활동에 나서고자 합니다.
서울에 가려진 지역문화(경기·안양)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전시활동을 통해 ‘소리로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마애종의 1000년의 울림’을 잇고, 국제적인 평화운동·문화예술운동의 교류의 장으로 확대해 가고자 합니다.
2. 지역의 정체성 확립
마애종의 평화사상을 연계하여 역사 속 지역의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하여 안양의 정신으로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안양에는 모진 형벌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신 천주교 최경환 성인(1805~1839)이 계십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의로운 정신과 기백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장본인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평생을 고문후유증으로 불우하게 살다 가신 원태우 지사(1882~1950)가 계십니다.
종교와 지역을 넘어 시대를 밝힌 義人들의 자유·박애사상을 안양의 정신으로 전파하고자 합니다.
2008-11-14 15: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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