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공지]안양탐사대 183차 탐방(20200613) 옛 덕천마을 메가트리아 단지

안양똑딱이 2020. 6. 8. 20:13

 

안양탐사대 183차 여정_안양7동 옛 덕천마을이었던 메트리아 단지

6월 13일(토) 오후 3시 / 집결_메가트리아 북문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20년 전반기 탐사를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2020년도에는 재개발로 안양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과 사라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할까 합니다.


안양탐사대가 2020년 6월 13일 183차 여정으로 찾아갈 곳은 안양7동의 덕천마을로 지금은 레미안 안양메가트리아 단지로 안양탐사대는 탐사 초창기로 마을의 집들과골목 모습이 남아있던 2013년과 집들이 허물어지고 폐허로 변해갔던 2014년 집중 탐사를 통해 많은 모습을 사진에 담아냈지요.

골목과 마당이 있던 엣 집에서 오래 살았던 주민들이 떠나고 새로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애는 새로 이주한 주민들이 살고있지만 그래도 안양민들에게 친숙한 동네 이름은 메가트리아 보다는 덕천마을입니다.

개인적으로 관양동 엣 동편마을이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편마을로 불리우고 둥편마을 축제까지  열리는 것처럼 덕천마을로 계속 불리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날 동네 탐사에서는 마치 천지개벽을 하듯 바뀐 메가트리아 단지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예정으로 동네 안내는 메가트리아 단지에 사는 주민으로 안양7동 V터전 회장 , 안양시자원봉사센터 SNS 기자 등으로 할동하고 있는 류근숙님께서 해주실 예정입니다.

 


덕천마을 지명유래

이 마을 본래의 이름은 넓은 벌판에 있다고 하여 벌터 (坪村)라 칭했는데, 1977년 7월 대홍수 때 안양천의 범람으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하자 수재민촌(水災民村)으로 불리웠고, 이 해 9월에 안양의 시내버스(삼영운수)가 이 곳에 버스노선을 개설하면서 버스 안내판에 수재민촌으로 명기하자, 당 시 이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였던 최돈세(崔燉世)가 중심이 되어 긴급 주민회의를 개최한 결과 수재민촌 이란 마을명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 2세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므로 차제에 새로운 마을명을 짓자는 제의가 많아, 큰 하천인 안양천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큰 德 자에 내 川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川洞)으로 명명했다가, 안양천의 오염으로 이미 지가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1년만인 이듬 해(1978) 9월에 이곳 어린 이들이 샘솟듯이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에 큰 일꾼이 되라 는 뜻으로 큰 德 자에 샘 천(泉)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泉洞)로 개칭하고 마을입구에 덕천마을 이란 표석을 설치했었다.

 

덕천마을의 역사

안양 덕천마을은 주접동 동북쪽에 있는 안양천변에 자리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초에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 안양여고 원종면 선생의 증조부)씨가 분가를 나와 지금의 안양7동 213에 정착했고, 이어 전주 이씨, 창령 성씨등이 세거하면서 자연마을이 형성되었고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다.
이곳은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농경지였다. 예컨대, 명학역과 주접지하도에 이르는 경부선 철도변은 아카시아 동산이었으며, 안양 냉동사(안양7동 196-15)자리는 농경지(논), 주식회사 삼풍(안양7동 199)자 리는 논과 포도밭, 대영모방주식회사(안양7동 196-12)자리는 잎두밭, 동화 약품공업주식회사(위치, 안양 7동 189)자리는 농장이었다.
이 마을이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토박이 원종만(안양7동 138-32, 원정상 증손)씨가 허허벌판에 덕천슈퍼 건물을 신축한 후, 7동새마을금고(안양7동 130-27)를 비롯 덕천국민학교(안양7동 192-5), 덕천우편취급소 등의 기관과 공장들을 유치하는데 부터다.
196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안양냉동, (주)삼풍, 대영모방, 동화약품 등 크고작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덕천마을 남쪽은 공업지대로 변하였다. 이어 덕천초등학교가 개교하였고 지금은 아파트형 공장인 유천팩토피아 건물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동아아파트, 준마아파트를 비롯한 다세대 주택들이 많이 건축되면서 공업과 상업 주거지역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덕천마을은 지난 1973년 구획정리사업으로 계획적으로 개발된 지역이지만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로 인한 인구과잉, 도시기반시설의 과부하, 도로폭의 협소, 안양천 범람으로 인한 잦은 침수와 철도소음에 시달려 왔다.
결국 주거지역이 자리했던 만안구 안양7동 148의 1 일원 25만7천590㎡에 달하는 면적에 대한 재개발사업이 추진돼 안양시는 총 4천250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택재개발사업에 대해 지난 2006년 9월 7일 사업시행자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를 지정 고시했다.
이어 LH는 2008년 12월 19일 사업시행 인가를 받아 삼성물산·동부건설을 시공사로 결정했다. 또 2009년 2월10일 권리가액을 통보한데 이어 8월 25일 분양신청을 완료했다.
안양 덕천지구 재개발사업은 대규모 공공물량으로 사업규모가 클뿐 아니라 주택공사가 턴키베이스 방식으로 발주한 아파트중 최대 규모인 595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대형사들이 눈독을 들인 결과 삼성물산 건설부분과 동부건설이 65:35 지분 컨소시움으로 참여해 수주했다가 동부건설의 부도로 삼성물산이 단독 시공에 나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했다.
이에 덕천마을에는 전용면적 39㎡ 633가구를 비롯 49㎡ 96가구, 59㎡ 1천308가구, 84㎡ 1천634가구, 114㎡ 384가구, 139㎡ 195 가구 등 32층 높이 아파트 35개동이 들어서, 세대수만 4천2백50가구. 입주자만 1만 2천여 명에 미니 신도시인 '래미안 안양 메가트리아'가 태어났다.
여름철 물난리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골목길이 물에 잠기던 동네 덕천마을은 이제 고층 건물이 우뚝선 미니 신도시로 변모해 과거의 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추억과 기억만으로 남게됐으며 마을의 절반에 해당하는 덕천초교 주변의 동네와 더불어 남쪽의 명학역까지 이어지는 소규모 공장들과 아파트형 공장들이 자리한 지역 또한 서서히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양 석수3동은 예로부터 충훈부(忠勳府)라 불리워 왔다. 충훈부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 공훈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존하는 사무와 공신으로 책록할 때 해당자의 업적을 조사하거나 공신 책봉 후 그 후손들을 관리하는 업무도 맡는 등 현재의 국가보훈처와 유사한 업무를 처리하던 기관으로 현 서울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 들어가는 광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안양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0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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