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탐사대 167차_안양 만안구청 주변 골목
7월 27일(토) 오후 4시/ 집결_명학공원 분수대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27일(토) 오후 4시 출발하는 167차 여정은 안양 만안구청 주변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이 동네는 일제강점기에는 안양식림묘포장(경기도임업시험장), 1970년대 중반에는 안양시청에 있던 안양시청(현 만안구청)과 안양경찰서(현 보라오피스텔 신축), 정부의 공공기관들이 자리하고 더불어 음식점, 요정, 유흥, 숙박시설 등이 자리해 상거래가 많았던 곳이었으며 1990년 평촌신도시 건설 이후 안양시 행정기관의 이전, 2010년 이후에는 정부 공공기관들 마져 지방으로 떠나면서 인적이 뜸해지고 2018년 이후에는고층 오피스텔들이 신축중으로 지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 곳이지요.
이날 탐사는 2019년도 전반기 마지막 탐사로 8월 한달 정도 방학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탐사후에는 밧데리골목 아지트에서 종강 파티가 있습니다.
[만안구청]
현재의 만안구청은 평촌신도시가 들어서기전 안양시청이 있던 곳으로 건축가 나상기(1927∼1989)씨가 30대 젊은 시절에 설계한 건물이다. 1977년 안양대홍수로 안양시 전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때는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두차례나 안양시를 방문해 이 건물 3층 강당에서 브리핑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의 사진과 현재의 본관 건물 모습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만안구청 터는 과거 밤나무가 무성한 율원이었다. 일제강점기 현 만안구청부터 북쪽으로 국립농산물검사소(현 국립종자관리소)까지는 1937년 문을 연 안양식림묘포장(경기도임업시험장)이 처음 설치되었던 곳으로 1971년 묘포장이 오산으로 이전하기 까지 수리산에 임업시험림을 조성하고 우량묘목을 생산하고 시험하였으며 주변에는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농업 관련 연구와 행정시설들이 속속 세워졌던 곳이었다.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된후 경기도임업시험장 자리에 시청사 신축에 나서 1974년 기공식을 한후 1년후인 1975년 현재 모습의 건물이 완공됐다.
건축가 최승원 교수님 글에 의하면 나상기 선생은 1961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이구(李玖: 英王 李垠의 아들)의 도움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미술대학원 건축과에 입학하여 루이스 칸의 지도를 받으며 졸업한 후 그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1970년 귀국후 다시 홍익대학교 교수로 복직해 이 때부터 건축과 도시계획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많은 활동을 했는데 1984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로는 부산타워(1973), 부산구덕총합운동장을 비롯 아주대학교, 하와이대학교에 작품이 있으며 안산시,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설계에도 참여했다.
한편 안양시청은 1990년대 평촌벌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부림동에 새 청사를 짓고 1996년 11월11일 안양시청과 시의회 청사를 평촌으로 이전해 11월 15일 준공식을 가졌으며 안양6동에 자리한 옛 안양시청사 건물은 만안구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만안구청 건물 자료-안양시사에서]
이 건물의 설계자는 나상기 건축가였다. 이 건축물의 대지는 남쪽은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으나 북쪽의 도로가 상당히 급한 예각으로 꺾여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건축가는 이러한 대지 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ㅅ자형으로 건물을 앉혔다. 서쪽의 정문으로부터 접근하여 주현관 으로 집입하도록 동선을 유도하는 데 중간에 저층의 민원실 출입구를 두어 주현관까지 굳이가지않아도되는민원인들의편의를고려하고있다.
민원실은 층고가 높으며 주건물과 축의 방향이 다름으로 인해 서류접수대의 방향이 꺾이는 등, 다양한 시각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어, 관청의 단조로운 분위기를 덜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주 건물의 동쪽 부분 2층에는 시장실이 있는데 이부분만 돌출되어 있다. 또한 그기둥이1층까지내려가 있어 그아래 1층 부분은 휴게공간으로 사용되고있다. 시장실은 이 부근의 도시 전체 축에 대하여 비스듬한 각을 이루고 있어, 남쪽으로 내다 보이는 전망이 조금은 다른 각도로 펼쳐져 색다른 느낌을 주고있다.
또한 이건물은 ‘ㅅ’자 본체로부터 민원실과 옥외비상계단이 마름모꼴로 돌출되어 있고, 중앙의 계단실과 옥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있다. 이러한 배치방법은 이건물이 세워지던 1975년경에는 관공서 건축에서 아직 채용하지 않던 방법이었다.
따라서 건물 외관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수평적인 띠창은 시로 승격되며 새로운 청사를 마련하는 시민들의 희망을 수직적 권위보다 시민사회의 수평적 연대를 표현하다고 볼수있다.
그리고 수평적인 요소만으로는 지루할수 있는 외관을 민원실의 수직기둥과 시장실 부분의 수직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보정하여 형태적으로 완벽함을 만들어 내고있다.
이러한 유추는 설계자가 나상기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것이다. 그는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루이스 칸을 비롯한 세계적 건축가들이 갓 펼쳐낸 작품의 현장에서 많은 감을 얻었으며, 도시의 문맥과 주변환경을 읽어내고 이것을 설계에 반하는 방법을 터득하던것으로 보인다.
[밧데리골목, 이젠 빠골목이라 불리운다]
안양에는 1970년대 부터 지금까지 밧데리골목이라 불리우는 곳이 두군데 있다. 한곳은 안양2동의 구도로(만안로)에서 수암천을 따라 우측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이 골목길은 1950-70년대 금성방직 공장으로 이어지던 철길이 놓여져 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한곳은 안양6동의 검역원사거리에서 주접지하차도쪽 구도로(만안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두 곳 부도 오래전 자동차 정비를 하던 업소들이 많았기에 밧데리골목이라 불리웠는데 안양 토박이들은 밧데리골목하면 일반적으로 안양6동의 골목으로 이해한다.
안양 6동 '밧데리골목'은 70년대 항아리 골목과 비슷한 연대에 각종 자동차 부품과 자전거용품 재료 등을 판매하면서, 부품을 교체하거나, 정비를 하는 가게가 하나, 둘 모여 들면서 골목이 형성됐다.. 그당시에 안양은 제조업체들이 많이 들어섰고, 이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렇게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동차가 늘어나게 되었고, 자연히 자동차에 관련 된 업체들이 생겨난 것으로 이곳에서는 자동차 정비와 수리에ㅐ 관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이 골목에는 순대와 막걸리 등을 주로 파는 음식점과 술집들, 그리고 이웃 만안구청(당시 안양시청)과 검역원 주변에는 한정식집과 요정들이 밤이면 성황을 이룰 정도로 밧데리골목의 명성은 경제적으로도 아주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술과 여자가 그리고 돈이 돌면 주먹을 쓰는 이들도 꼬이는 법으로 밤이되면 주먹을 쓰는 이들의 패싸움이 자주 벌어져 싸움골목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그래도 200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10여곳의 자동차 정비업소와 자동차 부품가게들이 있었고, 주당들이 모여 먹걸리잔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선술집과 포차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3곳 정도의 정비업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뿐이다. 또 저렴한 술집들도 하나둘 없어져 지금은 시큰한 할머니 혼자 맛깔스러운 찬을 내놓는 호남식당과 새로생긴 서서갈비 등이 명백을 유지하고 있을뿐 사실 유흥주점 골목으로 바뀌고 말았다.
낮에는 죽은듯이 한산한 밧데리골목은 밤이 되면 서서히 깨어난다. 특히 유흥주점하면 일반적으로 지하실을 선호했고 이곳 역시 예전에는 대부분 지하에 있었는데 지금은 1층과 2층에도 노래빠들이 자리할 정도로 밤이되면 네온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면서 화려해지는 거리다.
한때 밧데리골목을 다시 활상화시키는 방안에 대한 의견과 제안도 있있으나 이미 유흥주점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린 대세를 바꾸기란 사실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밧데리골목은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까지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을 손짓하여 부르듯 네온이 요란하게 번쩍이다가 동이 터오를 무렵에 사람들을 태운 택시들이 빠져나가면 그때서야 네온 불빛이 꺼지고 고요해진다.
[안양 경찰의 역사와 옛 안양경찰서-반도오피스텔]
명학공원앞 옛 안양경찰서 부지에는 중견건설업체인 반도건설이 매입해 짓고 있는 주상복합오피스텔 ‘안양명학역 유보라 더 스마트’(지하 3층~지상 26층, 3개동)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총 350세대(59㎡, 61㎡)가 입주할 예정이다.
옛 안양경찰서 부지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576-1 번지 일반상업지역으로 대지면적은 6372㎡(1,927평), 건물면적은 4008㎡으로 반도건설이 지난 2016년 9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576-1 외 1필지'의 옛 안양경찰서 대지 및 건물 입찰 경매에서 최저입찰가 294억 원보다 무려 3배 높은 408억 원을 써내 낙찰자로 선정돼 안양시와의 매매계약을 통해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안양경찰서의 변천사를 보면 안양경찰서의 첫 관서는 1945년 10월 21일 당시 금성방직 자리(현 대농단지)에 개서했으며 이후 1950년대 시흥군청, 안양읍사무소 등과 함께 안양읍 안양리 중앙동(현 안양1동. 안양1번가)에 신규 청사를 마련해 이전해 개서했다.
당시 안양경찰서는 2층 건물로 위치를 현재의 주소지로 보면 안양로 292번길 미엔미케익전문점 좌우가 해당된다. 또 경찰서 좌측으로는 의용소방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의 피자헛 안양점건물이 있는 자리로 뒷뜰에는 비상을 알리는 종탑이 세워져 있었다.
1970년대 말 안양 일번가에 있던 안양시청이 안양6동(현 만안구청)으로, 시흥군청도 안양6동(현 만안평생교육센터)으로 이전하면서 안양경찰서도 안양6동(현 반도건설 매입부지)으로 이전한다.
안양경찰서는 평촌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1999년 11월 3일 다시금 평촌(현 동안경찰서)으로 이전한다.
옛 안양경찰서 건물과 부지의 이용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합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그 용도가 안양경찰서-아산시에 매각-안양시 매입- 신필림아트센터-만안경찰서-빈공간-매각-오피스텔로 바뀌는 과정을 거친다.
엣 안양경찰서는 지난 2000년 안양시가 평촌신도시 시대를 열면서 안양경찰서 또한 시청 등과 함께 평촌으로 이전하고 경찰청이 아산에 경찰대학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토지 대토에 따라 아산시가 소유한 것을 안양시가 매입했던 땅이다. 당시 안양시는 이 부지를 아파트 건립 등 난개발 방지를 주목적으로 2001년 12월 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105억7천만원(2006년 소유권이전)에 매입했다.(2007년 공시지가로는 154억, 시세로는 300억 안팍)
안양시는 당시 토지주였던 충남 아산시와 매매계약을 체결한후 2001년 9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영화감독 고 신상옥과 최은희가 운영해 온 신필름예술센터로 임대한다.
당시 신상옥 감독은 안양시와 함께 안양영화촬영소 회고전을 시작으로 석산 일대의 '징기스칸 '촬영세트건설, 문예회관을 '셰익스피어극장'으로 운영계획, 영화박물관 건립 등을 꿈꾸었으나 특혜시비 논란속에 시민단체, 시의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학원으로 전락한 신필름예술센터는 운영난 마져 겹치며 2006년 2월 안양시에 반환하고 떠난다.
안양시는 1960-60년대 석수동에 자리했던 동양최대의 영화촬영소(수도영화사-안양영화사-신필림)의 역사와 흔적을 시의 정체성으로 살리는 '아트시티' 측면에서 과거의 영화도시적 후광을 되살리기 위해 신 감독 부부를 영입했으나 한국 영화시장의 시대적 변화와 장기적인 종합계획 수립 없이 섯부르게 사업을 벌렸다는 뒤늦은 지적을 받았다.
이 공간은 안양시는 돌려받은 후 활용방안으로 방송영상센터를 모색한다. 이에 2007년 8월 방송영상산업 활용방안을 시의회에 상정했지만 부결되며 흐지부지되고는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채 장기간 문을 닫는다.
문이 닫혀있던 이 공간은 다시 경찰이 사용하게 된다. 2010년 7월 23일 만안경찰서가 개서했으나 공간이 없어 신청사 준공까지 임시청사로 사용한 것으로 경찰청은 이 건물을 안양시로 부터 무상임대받아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해 임시청사로 사용하게 된다.
만안경찰서는 교통사고 등 치안 여건의 증가로 인하여 지난 2006년 3월 '경찰서 관할 구역조정'에 따라 2010년 7월 23일 개서함에 따라 1945년에 개서한 안양경찰은 동안과 만안 2개 구로 나뉘어 경찰서가 생김으로 1개시 2개 경찰서 시대의 막을 열었다.
만안경찰서는 2010년 5월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578-8번지(냉천로 63번길)에 신 청사 신축공사에 착공한다. 총사업비는 310억 원에 대지면적 12,151㎡(3,676평), 연면적 15,549㎡(4,704평)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로 2013년 6월 23일 준공식을 갖는다.
만안경찰서가 새 청사로 이전한 이후 옛 안양경찰서는 또다시 뚜렷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채 방치된다.
이후 최대호 안양시장이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옛 안양경찰서 부지에 시외버스의 차고지가 아닌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할 수 있는 터미널을 짓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2016년 4.13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종걸(만안) 국회의원이 선거공약중 하나로 다시 안양경찰서 부지를 시외버스환승터미널로 활용하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4월 29일 열린 안양시의회 제221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옛 안양경찰서 부지 매각을 하는 내용의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이 상정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안양시의원들이 반대했으나 표결 끝에 전체 시의원 22명 가운데 반대 10명, 찬성 11명으로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 통과로 결국 매각돼 오피스텔이 건설중인데 명학육교를 통한 동안구, 군포시와의 관문격인 사거리에 고층건물이 들어서면서 숨통이 막히는듯 답답함이 적지 않다.
한편 그동안 안양시는 공공시설이나 공원 등을 새로 조성해 오면서 문화유산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나 시설들은 무조건, 몽땅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을 택해왔다.
삼덕제지의 오래된 굴뚝과 건물을 몽땅 허물고 조성한 삼덕공원, 옛 가축위생시험소의 흔적 한점 남기지 않고 조성한 명학공원, 안양일번가 일제강점기 면사무소였던 안양일번가의 서이면사무소, 일반에 매각돼 갈비집(안양옥)으로 사용하던 한옥을 시가 다시 매입해 완전 분해 해체한 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 면사무소 건물로 새로 만들고 문화재(경기도 문화재 자료 100호)로 지정을 받았다.
하지만 갈비집이었던 안양옥에는 분명 조선 기와가 얹혀져 있었는데 새 건물로 지으면서 몽땅 없어지면서 고풍스러움은 사라졌으며, 부자재는 합판 투성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들여다보면 참 생뚱맞기만 하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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