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공지]안양탐사대 164차 탐방(20190706)안양온천 재개발지구 주변

안양똑딱이 2019. 7. 1. 14:09


안양탐사대 164차_안양 호계 온천지구 재개발지역

7월 6일(토) 오후 3시/ 집결_효성 티앤티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탐사를 3월부터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올해에는 재개발, 재건축 추진으로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인근 군포와 의왕지역까지 확대하고 과거 1번국도, 오래된 옛길, 마을길, 개천과 물길도 걸어 보고, 각종 표지석과 오래된 흔적을 찾아 기록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2019년 7월 6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64차 여정은 재개발이 추진중인 호계 온천지구를 비롯 범계성당, 호계도서관등이 주거지역 및 공업지역이 혼재된 동네를 돌아볼 계획입니다. 


안양 호계2동지역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말 과천군의 상서면사무소와 일제시대 초기인 1814년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현 호계도서관 자리- 1917년 서이면사무소는 안양1동으로 이전)해 관가가 자리했지요. 

또 호계2동에는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인 청감서원(호계서원)과 일제 강점기 초에는 낙영학교 등이 자리해 안양 교육의 기초가 된 곳이며 범계 주민들의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자리할 정도로 1900년도 초까지 옛 안양의 중심지라 할 수 있지요.


이 동네는 1976년 11월 21일 서울-수원간 경수산업도로(현 경수도로)가 뚫리면서 주변이 주거지로 변모한 안양의 신흥개발지역으로 수원방향 우측의 호계공원 야산에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당시 좌측의 평촌벌은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재건축이 거듭되면서 오밀조밀한 골목길은 볼 수 없으나 대형아파트와 빌라, 연립, 단독주택 등 다양한 유형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경수대로 685번길 51에는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을까 싶네요.


호계2동이야기


안양 호계2동은 호계동에서 1983년 10월 1일 시 조례 제600호로 분동해 안말, 방죽말, 샛터말 등의 지역이 호계2동이 되었다. 동으로 신촌동, 서로 안양8동, 남으로 호계1동, 북으로 비산2동이 위치했으며 안양교육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효성(구 동양나이론), 신아화학 등이 운집했던 경공업 지역으로 강남, 경남, 대림, 덕원, 현대 등의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신흥개발지역이며 주민의 구성은 토박이가 다수를 차지한다.

방죽을 쌓아 농경지에 유입해 농사짓기가 수월했던 곳으로 안양면 이전에는 과천면 상서면사무소가 있었다. 일제강점 초기에는 안양면의 전신인 서이면사무소가 소재한 곳으로 관가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호계2동은 안양 최초의 교육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숙종 42년 1716년에 창건되어 대원군 집정 때 1870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창강서원(또는 호계서원)과 옛 범계주민들이 풍류를 즐기던 소호정이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 초에 설립된 낙영학교는 비록 남아있지 않고 그 기록만 전해질 뿐이지만 이곳이 이미 오래전부터 안양교육의 발아지였다는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파연구소가 있고 호계체육관이 최근 건립되었다.



지명유래 - 방죽말(防築洞)

<호계 2동>안말과 샛터말 사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果川郡 下西面의 면사무소 가 있었고, 그 후 1914년 3월부터 1917년 7월까지 始興郡 西二面의 면사 무소가 있었던 유서깊은 고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물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취락이므로 방죽말 (房築洞)이라 칭했다. 그런데 이 방죽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숙종 때 (1699) 발간된 <<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방죽(제언)의 이름은 호계이고, 그 위치는 과천치소(현 과천시 중앙동사무소)에서 서남쪽으로 18리 지점에 있었다. 축조년대는 숙종조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에 이미 방죽이있 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방죽은 후대에 내려 오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광무 3년(1899)에 발간된<<異川邑誌>>堤壙條에 虎界堤壙在縣西南門十八里 라 하여 방 죽은 虎界에서 虎溪里競宇로 되었고, 이어 일제 때부터 범계방죽으로 불리우다가 1974년부터 실시된 안양6지구 구획정리사업 때 주택지로 변모되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10월초에 길일을 택해 방죽 앞에 있던 수령 300년 되는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群雄祭를 지내다가 1970년대에 나무가 죽자 祭를 지내지 않는다.


안양온천 재개발 지역


인양온천 재개발 사업의 정확한 정비사업명이 호계온천주변지구 재개발정비사업으로 위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915번지 일원으로 총 사업 면적은 41,856㎡ 이며 건축계획으로는 최고 39층 높이의 아파트 9개동을 건설해 1,100세대(분양 942세대 , 임대 158세대)를 입주한다는 계획으로 2019년 3월에 사업시행계획인가가 났으며  4월부터 감정평가를 진행중으로 시공사는 대림산업으로 되어 있다.


 

안양온천(호계온천)


동네 골목을 거닐다 보면 아파트와 주택가 한복판 경수대로733번길 34(호계2동 915-3)에 수도권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온천 하나가 있다. 2003년에 아파트를 짓다가 고온의 온천수가 터지면서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현재는 '유황'자를 뺀 안양온천),


2000년 5월 17일 유황(황화수소) 성분이 다량함유된 고온의 온천수가 발견돼 행정기관의 검사를 거친후 2001년 2월 23일 온천수 이용허가를 득해 온천과 대형찜질방으로 개장한 안양유황온천이다. 지하 804미터에서 끌어올린 물에 유황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아토피에 좋은 물이라고 입소문 나면서 타지에서까지 몰려드는 차량으로 주변이 몸살을 앓아 민원이 쇄도할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황' 표기를 삭제했는데 유황성분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군요. 자료를 찾아보니 휘발성이 강한 유황성분의 특성상 2015년 유황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어 일반 온천으로 변경되었다.


한때 시설의 노후화, 높은 온도의 수온이 오히려 고객의 발길을 점차 되돌리는 등 경영난으로 부도나 경매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최근 리모델링을 했는데 온천 안에 불가마와 소금방 등을 갖춘 넓은 찜질방도 있는데 평일에는 사람도 많지 않고, 게다가 추가비용 없이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족단위, 직장동료, 동아리 등에서도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데 비오는 날 따근한 물속에서 비를 맞을 수 있는 폭포수 노천탕이 최고란다.

여전히 안양온천 온천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스트론튬, 중탄산염이온, 황산이온, 리튬 등 20여종의 총용존고형물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의 면역체계를 증가시켜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신경쇠약, 관절염, 피부질환 등에 좋아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추가 정보로 온천옆(같은 주차장)에는 제주 고기 고깃집 제주돈사돈이 있는데 큼직한 깍두기를 연상케하는 두툼한 고기를 멸젓을 찍어먹는 맛이 기막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