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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1977년 안양6동에 자리했던 옛 시흥군청 모습

안양똑딱이 2018. 8. 3. 16:42

 

1977년 안양6동에 자리했던 옛 시흥군청 모습

#시흥군 #안양 #안양6동 #공공기관 #옛사진/ 경기도 안양시 안양 6동에 있는 옛 시흥군청(1977년 개관)의 모습으로 건물은 서너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만안평생교육센터로 사용중이다.
시흥군 청사는 1936년 영등포에 있다가 1945년 안양1동(안양 1번가 현 삼원프라자호텔)으로 이전해 왔으며 이후 1977년 8월 30일 안양6동에 새 청사를 마련해 다시 이전했다.
안양6동에 있던 시흥군청은 1980년 소래면이 소래읍(현 시흥시)으로 승격되면서 안양에서 소래읍으로 다시 이전했다가 소래읍이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소멸된다.

 

■과거 거대한 행정구역이었던 시흥군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이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뜻풀이인 "뻗어가는 땅"과 걸맞다는 점에서 과거 시흥군은 서울의 영등포구ㆍ구로구ㆍ금천구ㆍ관악구ㆍ동작구ㆍ서초구 등과 경기도의 안양시ㆍ광명시ㆍ안산시ㆍ과천시ㆍ군포시ㆍ의왕시 등을 분가 시켰을 만큼 거대한 행정 구역이었다.
시흥군의 역사를 살펴보면 1895년 5월 26일 탄생했다.
1895년 5월 발족한 시흥군은 1914년 3월1일 과천. 시흥. 안산군을 합병, 시흥군으로 통합됐다.
1936년, 1949년, 1963년 각각 영등포읍, 서면, 동면, 신동면 등이 차례로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금천, 영등포, 양천, 구로, 관악, 동작구 등 6 개 구로 재 분리됐다.
1941년 10월 1일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됐다.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7월 1일엔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면서 시흥군에서 분리됐다.
이때 시흥군청과 안양읍사무소(안양시청)는 안양 중앙동(현 안양1동)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삼원프라자호텔이 시흥군청, 롯데리아1번가점 건물이 안양읍사무소(안양시청)였다. 로 안양시청은 안양6동에 새 청사(현재의 만안구청)를 신축해 1975년 7월1일 이전하고, 시흥군청 또한 안양6동(현재의 만안평생교육관)에 새 청사를 신축해 1975년 8월30일 이전했다가 이후 1980년 소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소래읍으로 다시 이전했다.
시흥군은 1973년 7월 관내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시흥군(郡)에서 분리됐다.
1979년 5월 1일 시흥군 남면이 시흥군 군포읍으로 승격했다.
1980년 12월 1일에는 시흥군 의왕면이 시흥군 의왕읍으로, 소래면은 소래읍으로 승격됐다.
1981년 7월 1일에는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분리됐다.
1982년 6월 10일에는 시흥군 과천면이 과천출장소(현 果川市)로 분리되어 나갔다.
1986년 1월 반월출장소가 안산시로 승격돼 분리됐다.
1989년 1월 1일 시흥군 군포읍이 군포시로 분리돼 나갔으며, 의왕읍과 동부출장소는 의왕시로, 소래읍과 수암면, 군자면이 통합되어 시흥시로 각각 승격됐다.
시흥군은 1988년 12월 31일 종무식을 끝으로 93년만에 해체(폐군)되면서 행정구역상에서 그 명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헷갈리는 서울 시흥, 경기도 시흥
1. 개요

시흥(始興)은 원래 구한말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영등포구(양화동과 조선시대-구한말 한정으로 여의도 제외), 구로구 동부, 관악구 상당 부분, 동작구 일부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박달동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시흥의 행정구역 변천을 보면 고구려 때 잉벌노현(仍伐奴縣)에 속해 있었으며 757년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쳐 율진현(栗津縣)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 금주(衿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폐하여 수주(樹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416년(태종 16) 금천현(衿川)으로 하여 현감을 두었다. 세조 때 과천군에 편입되었으나 정조 때 시흥이라 개칭하였다. 금천현은 조선 초기 과천현의 일부를 병합하기 전의 독립된 현이었으므로 그 뒤의 시흥현과는 영역이 다소 다르다.
일제강점기~1989년 폐군까지의 기간 중 시흥군에 속했던 지역은 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관악구, 동작구, 금천구, 서초구 대부분 및 경기도 광명시, 안양시, 과천시, 군포시, 안산시, 시흥시, 의왕시 일대를 포함했을 만큼 거대했다.
오늘날에는 '시흥'이라 하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과 경기도 시흥시를 가리키는데 혼란을 야기한다. 

 

2.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5개 행정동이 나누어 관리하는 법정동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흥이라는 지명의 기원이자 시흥의 뿌리.

이 지역은 원래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이 근처의 지명인 '시흥'을 따 시흥군이라 불렀던 것이다. 또한 시흥군의 중심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시흥군청이 이 곳에 있다가 영등포(1914년)-안양1동(1945년)-안양6동(1975년)-소래읍(1980년)-소멸(1989년)으로 이전한다.

1963년 시흥군 동면일대가 서울특별시로 편입이 되었고 기존 경기도 시흥군에서 분리되면서 지금처럼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으로 재정립 되는데 서울 대확장 이전에는 '시흥'이라고 하면 지금의 금천구 일대 내지는 금천구를 비롯한 주변 지역(관악구, 광명시)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금천구 쪽에 있었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권을 거쳐가는 버스들 노선표에는 '시흥동' 대신에 그냥 '시흥'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서울에서 영등포 지역 택시를 이용할 때 시흥에 가달라고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금천구청 앞이나 시흥사거리, 금천우체국 등 시흥동으로 간다. 서울 택시로 시흥시에 가려면 기사에게 신천동, 월곶, 시화산업단지 등 동 단위 지역명을 말해 주거나 시흥'시'같이 시를 붙여 말해 주어야 한다.

특히 현재의 금천구청역은 2008년까지 시흥역이었다. 시흥역은 1908년 4월 1일 역사를 개업한후 100여년을 시흥역으로 영업을 해 왔으니 '시동네 주민뿐 아니라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시흥하면 금천구의 시흥동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에 타지에서 방문한 사람들에게 경기도 시흥시를 지칭하는 줄 착각해 시흥역을 잘못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흥역 구내에는 '경기도 시흥으로 가실분은 4호선 오이도역이나 정왕역에서 하차'를 권하는 문구가 있었다. 여튼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8년 말 금천구청 신청사가 준공되면서 시흥역을 금청구청역으로 역명을 변경하며 혼란을 줄이지만 아직 시흥군 시절에 친숙하게 불리웠던 시흥동이 아직 현존하고 있다. 

 

3. 경기도 시흥시
현재의 시흥시 지역은 원래 인천도호부(옛 소래읍)와 안산군(옛 수암면, 군자면)의 땅으로, 현재의 시흥시 남부는 1914년에, 현재의 시흥시 북부는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되었으나 전통적 의미의 시흥과는 단한치의 연관도 없다 할수 있다. 

1914년 이전의 오리지널 시흥 땅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시흥시가 시흥이라는 이름을 물려받는 바람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시흥하면 아직도 서울 시흥동을 가리킨다. 시흥동이 과거 시흥군의 핵심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현 시흥시는 '소래'나 '신천리', '시화'나 '정왕동'이라 해야 알기 쉽다. 편이 더 낫다. 이런 현상은 시흥시의 정체성이 확고해지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