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동네탐사

[탐사13]안양8동 명학마을(2013.05.11)

안양똑딱이 2017. 5. 17. 03:32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13번째 탐사로 찾은 곳은 안양8동 세번째 명학마을입니다. 안양8동은 안양6동에서 분동한 지역으로 과거 명학동으로 불리웠으며, 성문고 주변의 골안, 성결대 아래 상록마을, 명학초교.메트로병원 주변 명학마을을 통틀어 안양8동으로 칭하지요. 명학마을은 1970년대 조성된 마을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열차로 상경하면서 산 중턱에 있는 이곳이 너무 노후되었다고 하여 국비와 시비로 청기와를 제공한 곳이기도 하지요.
당시 단독 주택들이 있던 자리에는 대부분 연립,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이 들어섰지만 이번 탐사에서 원형이 남아 있는 주택 몇채를 발견하기도 했답니다. 그중 한채는 색바랜 70년대 청기와가 올려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더군요. 또 명학동의 유래를 낳은 명학바위도 산 중턱에서 찾았는데 명학바위를 가는 길 이정표가 골목길 깊숙이 숨어있어 정작 이곳에 사는 마을주민들도 잘 모르는 상황이지요.

명학마을(鳴鶴洞)
명학마을은 평산 신씨, 함평 이씨 등이 배판했다고 전해진다. 1974년 서울-수원간 전철개통과 동시에 명학역이 건설되고 안양 구 경찰서앞에서 군포 산본으로 연결괴는 도로가 놓여지고, 1976년의 명학국교(안양8동 349-1), 중앙병원(안양8동 산 160) 등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인조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1644)이 그의 부친 심간(沈諫)의 묘를 비산1동 수푸루지(林谷洞)-대림대학교 뒷산에 쓰기 위해 땅을 팠는데, 돌 밑에 학(鶴)이 두 마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양명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오미산(鳥尾山) 뒤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구)안양경찰서와 명학국민학교 사이에 있는 바위에 날아와 앉더니 슬피 울고는 어디론가 날라갔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바위를 학이 울었던 바위라 하여 명학바위(일명 미악바위)라 칭했고, 이 바위로 인해 마을 이름도 명학동(鳴鶴洞) 이라 부르고, 명학역, 명학대교 등 공공시설물 또한 이름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