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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919년 3월 의왕에서도 3.1만세운동 있었다

안양똑딱이 2017. 3. 17. 15:10

 

의왕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음을 아시나요?

"수원군의 의왕면 고천리에서는 삼월 삼십일일 밤에 다수한 군중이 모여 면사무소와 경관주재소에 대하여 폭행을 함으로 수원주둔병대가 출동하여 해산시켰다는데 주모자로 인정할 만한 자 46명을 체포하였다가 그 이튿날 41명만 태형에 처하여 방송하였다더라."
 
1919년 3월 31일 밤 의왕 주민 800여명(당시 의왕 주민 수는 2천여 명에 불과했다)은 의왕면사무소(현 고천동주민센터)에 모여 고천경찰관 주재소(현 고천약국 부근)와 지지대 고개까지 오가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만세운동 참가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기독교인들과 천도교들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일본군 육군성에서 1920년 12월 30일 발행한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를 보면 일제 경찰은 군대를 불러 시위대를 해산시켰으며 이날 46명의 주민이 체포돼 즉결 태형을 맞았는데 걷지 못할 정도로 맞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천동주민센터는 3.1운동 당시 의왕면사무소가 있던 자리이며, 동시에 1790년 정조대왕이 사근행궁을 설치한 자리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지다. 

이와함께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의왕시 남부인 고천지역뿐 아니라 동부지역에서도 학생조직을 바탕으로 인근 4개리에서 매호당 1명씩이 참가하여 백운저수지에 집결하여 고천주재소와 내손리를 돌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던 이들이 청계동 출신의 이봉근 선생과 배재학당 출신인 친우 성주복,이복길 등으로 이들은 태극기를 7일간 야간에 제작해 각 리에 배포하였다. 이봉근 선생(1903~?)은 고천주재소와 현 내손동(갈미)에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지휘하다 총에 맞아 오른쪽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으며 이후에는 문맹퇴치운동에 힘써 청계 계명야학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와관련 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는 2013년에 이봉근 선생의 반일 독립만세운동 사실을 널리 알리고 현양하고자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을 추진중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철하 의왕 향토문화연구소장은 "의왕시가 조례를 제정하여 3.31일을 의왕 독립만세운동 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식을 이날 갖도록 하고, 현재의 고천동주민센터, 고천약국으로 이어지는 만세운동길, 경수대로 확장으로 없어진 고천경찰관주재소터 등에 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표식을 설치하는 등 정체성 확립에 적극 나설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의왕의 독립유공자로는 성주복 지사(1894~?)가 있다. 성주복 지사는 경기도 수원군 의왕면 청계리 361번지(현 의왕시 청계동)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5일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3~40명이 서울에서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후 1919년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반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으며 11개월여의 옥고를 치뤘다.
정부는 지난 2005년 8월 제60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하 독립운동에 헌신한 성주복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2007년 1월 그의 자녀에게 훈장증 및 훈장을 전수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훈장증을 전수받은 성이옥여사는 지사의 둘째딸로서 2007년도 법개정으로 인하여 출가녀가의 유족등록 순위 변경에 따라 지사의 자녀들중 연장자로서 훈장전수대상으로 결정되어 훈장증을 받게 됐다.
의왕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소장 박철하)는 3․1독립만세운동 독립유공자로 의왕 출신의 성주복 지사(1894~?)의 정신을 기리며 의왕시민에게 그 뜻을 널리 알리고자 2012년 1월 18일 의왕시 청계동 성주복 선생 묘역에서 성주복(成周復)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19년 4월 1일자

▲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던 의왕시 고천동 ⓒ 독립기념관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