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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919년 3월 군포에서도 3.1만세운동 있었다

안양똑딱이 2017. 3. 18. 15:10

 

1919년 3월 군포에서도 3.1만세운동 있었다

독립기념관 기록(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2056)에 의하면 1919년 3월 31일 군포.안양.의왕 경계지점이며 상업적 요충지였던 군포장(軍浦場, 현재 안양시 호계동 구군포사거리 인근)의 장터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군포장은 시흥군 일대에서 꽤 큰 장(5일장)이 열리던 곳으로 당시 군포장에 모인 2000여명의 시민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경찰관 주재소(현재 군포역앞)까지 약 1.8㎞를 행진했으며 4월 1일에도 군포장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했다.
만세시위지인 군포장 경찰관주재소 터 현 주소는 군포시 군포 1동 750-8(옛주소: 시흥군 남면 당리)로 당시 일본경찰은 군에 보병 출동을 요청해 총을 발포하며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특히 부천대학교 기록에 의하면 1906년 안양시 호계동으로 이사를 온 몽당(夢堂) 한항길 선생은 3월 2일 시흥, 안양, 군포역에서의 독립선언문 배포와 군포장에서의 거사책을 맡아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군중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후, 군포장에서 모여 있던 군중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그 현장에는 현재 각종 상가들이 들어서 이곳이 독립만세운동을 펼쳔 곳인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때마침 군포시가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역의 3․1 운동 사적 보존․전파를 위해 1919년 만세운동을 펼쳤던 군포역 인근 경찰관주재소 터에 항일운동 행적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군포시는 "2014년 8월 13일 이번 사업은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의 위협까지 각오하고 만세운동을 펼친 선조들의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널리 알려 모범으로 삼고, 더불어 지역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 및 애향심 향상에 활용하기 위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시는 국가보훈처와 관련 절차나 구체적 시행 방법 등을 협의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타 자치단체의 유사 사례도 연구해 최적의 계획을 수립․이행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시는 지난 12일 김윤주 군포시장이 직접 지역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광복군 김유길 선생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만남도 주재해 애국지사들의 공을 기렸다. 군포시 용호2로 인근에 거주하는 김유길 애국지사는 1919년 2월생으로,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에 배치됐으나 목숨을 걸고 탈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에 입대한 후 국내 진공을 위한 부대에서 활동했다.
군포시는 ‘군포시 국가보훈대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등을 근거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공헌한 시민을 찾아 예우하고, 그들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시책․사업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