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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안양지역의 천주교 역사

안양똑딱이 2017. 3. 6. 18:11

안양지역의 천주교 역사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887년에 한불조약이 체결됨으로써 공식적으로 선교가 시작됐다. 이 후 경기도에서도 본격적으로 성당들이 건립되었는데, 1888년에 화성군 '갓등이'(현재의 화성시 봉담읍 왕림리)에 세워진 예배처가 경기도 최초의 성당이다. 일명 '갓등이 성당'이라고 불리던'왕림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미리내성당'(1896년 설립, 경기도 안성)과 '하우현성당'(1900년 설립, 경기도 의왕시)이 차례로 건립됐다. 당시 '하우현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안양의 첫 성당인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이 건립됨으로써 명실공히 안양 지역에도 한국 천주교의 계보를 잇게 됐다.
안양지역의 천주교 유례를 보면 '장내동성당'이 건립되기 전에 '하우현성당'에서 관할하던 수리산 공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안양에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한신대학교 류성민교수에 의하면 "정확하게 언제부터 안양에 천주교 신자들이 생겨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기록에 따르면 1839년의 기해박해 때 그 교우촌을 이끌었고 후에 성인으로 시성된 최경환과 그 부인 이성례가 순교했다는 사실과, 최경환 성인의 장남 최양업이 프랑스인 모방 신부에 의해 김대건과 최방제와 더불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6년에 마카오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에서 그 이전부터 상당 기간 동안 천주교 공소로 신자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을 전재 했을 때 실재로 안양지역에 천주교 전파는 1839년 전후로 추측할 수 있다.
'수리산공소'(일명 뒷뜸이공소)는 1888년에 본당이 된 '왕림본당'의 관할 하에 있다가 1900년에 '하우현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하우현본당' 관할이 됐다. 그 후 1954년 9월 7일 '수리산공소'가 안양의 최초 본당인 '장내동성당'이 된 것이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627-75 소재한 '중앙성당'(전 장내동성당)은 안양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다. 대부분의 안양지역 성당이 '중앙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설립됐으며, 사실상 안양지역 천주교 역사의 근간을 이루었다. '중앙성당' 설립 이전에는 경기도 최초의 성당인 '왕림본당?'(경기도 화성시 소재)의 관할 공소인 '수리산공소'(일명 뒷뜸이 공소, 1889년 당시 과천군 하서면 수리산 인근)가 있었다. 당시 신자수가 113명이 되었고 1900년에 '하우현본당'(현재의 의왕시 청계동)이 설립되자 그 관할로 들어간 공소가 1954년 9월 창설된 '중앙성당'의 전신인 '안양본당'(초대 구천우 신부)으로 승격됐다.
'안양본당' 설립 후 1956년에 안양 최초의 안양유치원을 개원했고, 1959년에 새로운 성당을 건축하여 봉헌을 했으며, 신자의 증가로 해서 '호계동성당'(1975년), '명학동성당'(1978년), '비산동성당'(1978년) 등이 차례로 분리됐다.
이러한 본당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안양본당'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관할 지역구에 착안해 '안양 4동 본당'으로 잠시 개칭했다가 다시 1980년에 '장내동성당'이란 명칭으로 바꾸었다. 그 후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여 다시 1983년에 '석수동본당'이 분리됐고, 2002년에는 '목감성당'(시흥시 소재)이 분당됐다. 1995년, 현재의 성당 명칭인 '중앙성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98년에 준공, 입당한 것으로써, 1천940평의 대지에 연면적 3천313평의 지하2층, 지상5층 규모이며, 외부 형태는 '기도하는 손'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호계동성당 안양시 동안구 호계2동 953번지에 소재한 '호계동성당'은 주지하다시피 안양지역의 근간을 이룬 '중앙성당'(전 장내동본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1975년 12월 4일에 창설(초대 김창린 신부) 됐다. 이전에 1954년에 있던 '군포공소'에서 발전한 '호계동성당'은 1920년대 초에 44명의 신자가 있었던 '금정리 공소'(당시 시흥군 남면 금정리)를 모태로 하고 있는데, 1970년대 초 인근의 '당리공소', '인금정리공소', '벌터공소', '호계동공소' 등 4개의 공소와 더불어 합동 강당을 만들어 미사를 드렸다. 당시 이미 800명의 신자가 있었다.1974년에 현재의 위치인 호계동 953번지에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했고, 1975년에 본당으로 승격, '군포본당'이 되었다가, 성당이 있는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1979년에 호계동 성당으로 개칭했다. 그런데 1984년에 군포 지역에 새 성당을 지어 분당을 했는데, 그 성당 명칭이 군포성당이 됐다. 따라서 '군포성당'이란 명칭은 '호계동성당'의 전신인 것이다. 호계동 성당에도 계속 신자가 증가하게 됨으로써 군포성당 이외에도 포일성당 (1987년 분당)이 분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