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명소/숨은공간

[안양]안양 최초의 공소가 있었던 명학성당

안양똑딱이 2016. 12. 12. 21:26

 

#안양 #명학성당 #천주교/ 안양시 만안구 만안구청 사거리에서 만안청소년수련관 및 만안시립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문예로)은 과거 수의과학검역원과 임업시험장 등 이 자리잡았던 시절인 1950-60년대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멋진 길로 나무와 나무 그리고 가로등과 전봇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전깃줄과 케이블선들만 없으면 안양시내에서 가장 예쁜 가로수길이 아닐까 싶다. 
이 길을 따라 왼쪽으로 보이는 안양문화예술의 본거지 안양아트센터를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흰색의 아담한 건물이 명학성당으로 높다란 종탑위에 예수성심상이 두팔을 벌리고 마치 환영의 포옹이라도 해주듯 내려다 보고 있다. 
안양에서 설립된 최초의 성당은 1954년 9월 7일 담안(장내동.현 안양4동)에 세워진 안양본당(이후 장내동성당-현 안앙중앙성당)이지만 사실 천주교인들이 모였던 안양시내 최초의 공소는 경기도 서이면 주접리(안양6동)에 있었다.
현재의 명학동 지역인 주접리에서는 박해를 피해 수리산에 정착한 최경환 성인의 전교로 신자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해 공소공동체가 형성된 곳으로 주접리공소는 1900년 하우현본당이 설립될 당시에는 본당 소속 공소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공소로 1954년 안양본당이 설립되면서 ‘6동 공소’로 안양본당에 편입돼 소멸된다.
비록 공소의 규모가 크기는 했지만 소속 본당이었던 중앙본당과 2㎞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안양읍이 시로 승격되고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급증하면서 천주교 신자들로 늘어나면서 1개 본당으로는 신자수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수원교구에서는 안양시내 3개 지구(명학,비산,군포)별로 각 1개씩의 본당을 신설키로 하고 1978년 10월 4일, 안양 시내에 명학성당과 비상동성당 등 2개의 본당을 설립한 후 성당 신축에 나선다. 
명학본당은 설립 당시 안양6동본당으로 명명됐으나 1980년 명학본당으로 개칭됐다. 처음에는 성당 명칭이 안양 6동 본당이었으나 1980년 8월 15일 명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초대 주임으로는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당시 안양 본당 보좌 신부였던 방상복 신부가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안양6동 본당 건립 공사를 시작해 1981년 성당을 완공하고 5월 11일 축성식을 가졌다. 
성당 건립의 주축은 장내동성당에서 안양6동으로 분가한 신자들이지만 당시 장내동성당 신자들의 대대적인 모금운동도 크게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명학성당은 성당 건립후 문맹자들을 위한 한글공부 무료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1988년에는 독신 노인을 위한 봉사단체 ‘성 프란치스코 최경환회’를 창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성당 건축과 함께 본당 산하 성심유치원도 운영했으나 교세 증가에 따라 성당 공간이 협소해져 1987년 8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원했다. 
또 장학회를 구성해 소년소녀가장들의 학비를 보조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사랑의 굶기 운동’을 펼쳐 기아 체험을 통해 모은 성금을 아프리카에 보내기도 했다.
내적인 신앙을 다지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1985년에는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제대에 모시고 가정순회 기도회를 마련했다. 또 지속적으로 성경읽기 운동을 전개해 말씀을 익히고, 성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1998년에는 새 미사곡 악보와 이를 담은 미사곡 테이프를 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