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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조선총독부 1926년 발간 조선의 홍수(朝鮮の洪水)

안양똑딱이 2026. 7. 10. 00:16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여름 유사 이래 처음 겪는 엄청난 홍수가 네 차례나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한반도 전역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 일대가 특히 막심한 타격을 입었다.  단군 이래 최대 비극으로 국내 ‘20세기 최대 자연재해’라고 불리울 만큼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고 평가받는 물난리를 '을축년 대홍수'라고 부른다.

 

1926년 조선총독부 조선의 홍수(朝鮮洪水) 발간

 

조선총둑부는 1925년 조선을 덮친 을축년 대홍수 당시의 기상 상황, 피해 규모, 역대 홍수 정보 등을 집대성한 백서격인 조선의 홍수(朝鮮洪水)라는 책을 1926년 발간했다. 책 속에는 한강 하류부 범람구역도(漢江下流部氾濫區域圖)가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한강 하류 일대의 침수 범위와 피해 양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지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범람 구역은 한강 본류를 따라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으며, 현재의 서울 서부와 김포평야, 한강 하구 일대까지 침수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도로와 철도, 취락 분포를 함께 표시하여 홍수가 교통망과 정주지에 미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을축년 대홍수는 강서구 대부분의 저지대를 뒤덮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오늘날 도시화된 강서구 역시 본래 한강의 자연 범람원 위에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강서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홍수 위험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 할 수 있다.

 

도시는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자연지형의 특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재 강서구의 많은 지역은 과거 한강의 자연 범람원이었으며, 제방과 치수시설로 홍수 위험이 크게 줄었지만 극한호우와 기후변화로 인해 언제든 유사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홍수 기록은 단순한 역사 자료가 아니라 도시계획과 재난 예방,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미래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이책은 희귀 도서로 국토개발연구원이 소장한 지료를 국립중앙도서관이 전자책(PDF)으로 발간했다.

 

조선총독부 朝鮮 洪水.大正14.pdf 자료

https://library.krihs.re.kr/%24/10110/contents/6170569

 

국토연구-희귀자료

朝鮮 洪水.大正14

카테고리

기타

글쓴이(연구진)

佐藤印刷所

출판사

佐藤印刷所

발행일

1926

 

 

[을축년 대홍수]

 

1925년 을축년에 발생해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라 불리우는 국내 역사상 가장 큰 훙수 당시 서울·경기 300~500mm, 파주엔 무려 65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한강이 넘쳐났다. 7~8월에만 전국 4곳에서 대홍수가 터졌다. 피해도 상당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사망자 647, 피해액 1300만원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총독부 1년 예산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특히 2차 홍수시에는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누적 강수량 65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한강 수위가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였고 피해도 막심했다. 한강에 쌓았던 제방이 무너지면서 경성 전역이 물바다가 되었는데 숭례문 바로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하며, 경성의 교통과 통신도 마비되었다.

 

당시 경성 전역에서 익사자만 400여 명에 가옥 12천여 호가 유실되었다. 특히 고양군 한지면 이촌면·둑도면 일원과 잠실리 일대·광주군 구천면 풍납리 일대의 피해가 막심했다. 심지어 송파구에는 홍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이듬해인 1926년에 이재민들이 세운 비석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정도였다.

 

홍수가 한 해에 모두 4차례나 닥쳐 논 32천여 단보, 67천여 단보, 가옥 6천여 호가 유실되었다. 그 외에 붕괴된 가옥은 17천여 호, 침수된 가옥은 46천여 호에 사망자가 647명이나 발생하여 피해액만 당시 돈으로 1300만원에 이르렀다. 이 액수는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60%에 맞먹었으니 을축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총독부는 군대까지 동원하여 본류는 물론 안양천과 같은 한강 지류에까지도 제방을 엄청나게 건설하여 복구 작업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골재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선유봉(오늘날의 선유도)을 폭파했다.

 

또 이 홍수의 영향으로 잠실섬 주변의 한강 본류가 바뀌었다. 잠실섬 남쪽의 송파강(석촌호수)에서 북쪽의 신천강(잠실새내역 이북)으로 바뀐 것이다. 20세기 초반 이래 이 지역에서 한강의 직류화 경향이 자연적으로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 기존의 송파강이 아니라 새로 생긴() 하천()인 신천으로 유량 유입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런데 이 대홍수를 계기로 아예 신천이 본류가 되어 버렸다.

 

결국 이로 인해 송파강으로 먹고 살았던 송파나루는 급격히 쇠퇴했다. 송파나루는 유량이 풍부해서 배가 정박하기 좋았기 때문에 원주, 춘천, 단양, 영월 등 한강 상류의 물자가 이곳으로 집결했고 이곳을 통해 영남, 강릉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왕래했고, 그 덕에 조선시대 전국 15대 상설장터였던 송파시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송파진이라는 군영이 설치되어 강 건너 뚝섬, 동잠실, 삼전도, 광나루까지 관할하였다.

 

조선시대만 해도 매우 번화한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철도 개통으로 서서히 쇠퇴의 기미를 보이더니 을축년 대홍수의 직격탄을 맞아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쓸려나갔다.

 

을축년 대홍수의 여파로 양잠으로 번성하였던 잠실, 신천 일대와 송파나루로 번성하였던 광주군 중대면 일대는 1971년 한강공유수면사업으로 인한 잠실택지지구 개발, 1985년 가락시장 개장,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1989년 롯데월드 개장까지 약 50년 동안 버려진 땅 취급을 받아야 했다.

 

안양천의 물길도 바뀌어 지금의 영등포구 양화동 지역이 영등포 생활권에 편입되어 버렸다. 또 이 홍수 때문에 영등포의 경성부 편입 논의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1936년에야 경성부에 편입되었다.

 

관측사상 최악급 폭우가 전국적으로 발생한 1925년과 다르게 100년 후인 2025년에는 강력한 폭염으로 변신해 매우 극심하게 더웠다.

 

[20250208]단군 이래 최대 비극 100년 전 <을축년 대홍수> 보고서

https://ngoanyang.or.kr/9855

 

[서울역사박물관]

을축년대홍수_그후_100년_서울의_변화(내지).pdf

파일 다운받기

https://museum.seoul.go.kr/www/board/NR_boardView.do?bbsCd=1012&seq=20250204135754065&sso=ok

 

[동아플래시100]집에 가축사람까지 모두 쓸어가 버린 을축년 대홍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806/108405828/1

 

[동아플래시100]집에 가축, 사람까지 모두 쓸어가 버린 을축년 대홍수

플래시백‘전쟁터라 하더라도 타고 남은 기둥이나 허리 꺾인 나무 그림자는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가장 심한 지진이 있은 후라도 쓰러진 집의 형태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원리에…

www.donga.com

 

[우리역사넷]을축년 대홍수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402730

 

우리역사넷

1925년에 일어난 이른바 “을축년대홍수”는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 불릴 정도의 재해로, 근래 100여 년간 일어난 수해(水害)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규모였다. 광의로는 19

contents.history.go.kr

 

[기상청블로그]한강의 지류를 바꾼 을축 대홍수

https://blog.naver.com/kma_131/222420668785

 

한강의 지류를 바꾼 을축 대홍수

제13기 국민참여기자단 / 신하솔 장마철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한강대교의 수위입...

blog.naver.com

 

변영로가 겪은 1925년 을축년대홍수

https://historylibrary.net/entry/%EB%B3%80%EC%98%81%EB%A1%9C%EA%B0%80-%EA%B2%AA%EC%9D%80-1925%EB%85%84-%EC%9D%84%EC%B6%95%EB%85%84%EB%8C%80%ED%99%8D%EC%88%98

 

변영로가 겪은 1925년 을축년대홍수

을축년표류기(乙丑年漂流記) 수주樹州 변영로(1898~1961)의 술에 얽힌 일화의 자서전인 《명정酩酲 40년》 한 토막이다. 그 유명한 1925년 을축년대홍수에 얽힌 일화다. 이 글을 수록한 자서전은 1953

historylibrary.net

 

 

[국토교통부]하천 역사문화 이야기(국가하천) 보고서.pdf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nso=&page=2&query=%EC%A7%91%EC%97%90+%EA%B0%80%EC%B6%95%2C+%EC%82%AC%EB%9E%8C%EA%B9%8C%EC%A7%80+%EB%AA%A8%EB%91%90+%EC%93%B8%EC%96%B4%EA%B0%80+%EB%B2%84%EB%A6%B0+%EC%9D%84%EC%B6%95%EB%85%84+%EB%8C%80%ED%99%8D%EC%88%98&sm=tab_pge&start=1&where=web

 

집에 가축, 사람까지 모두 쓸어가 버린 을축년 대홍수 :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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