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기록 #문학 #시인 #신경림 #안양/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 신 경 림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일곱해를 사셨다.
아들도 몰라보고 어데서 온 누구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쌓는
망령 난 구십 노모를 미워하면서,
가난한 아들한테서 나오는 몇푼 용돈을 미워하면서,
절뚝절뚝 산동네 아래 구멍가게까지 걸어내려가
주머니에 사 넣는 한갑 담배를 미워하면서,
술 취한 아들이 밤늦게 사들고 들어와
심통과 함께 들이미는 군밤을 미워하면서,
너무 반가워, 그것도 너무 반가워
말보다 먼저 나가는 야윈 손을 미워하면서,
돌아가셔도 눈물 한방울 안 보일,
남편의 미운 짓이 미워 눈물 한방울 안 보일
아내를 미워하면서,
시신을 덮은 홑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앙상한 발을 만지며 울 막내를 미워하면서,
고향 선산까지 그를 실어갈 낡은 장의차를 미워하면서,
죽어서도 떠나지 못할 산동네를 미워하면서,
산동네를 환하게 비출 달빛을 미워하면서,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신경림의 시에 등장하고 제목이기도 한 안양시 비산동 489의43번지는 그에게는 고통의 동의어다. 치매를 앓던 할머니와 중풍에 걸렸던 아버지가 대들어 싸우고, 실직으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마흔 언저리의 싫고도 싫은 나날로 가득하던 순간이었다.
“1970년부터 7년 동안 거기서 살았는데 그 집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암에 걸린 아내까지 세상을 떠났어요. 사람들이 흉가라고 했지. 사찰이 심해서 형사가 매일 두 번씩 다녀가고 그러니 직장도 잡을 수가 없었고. 그런데 오래되니까 그때 이야기가 쓰고 싶어. 요즘도 가난하던 그때 꿈을 많이 꿔요.”
안양시 비산동 489의43번지의 집은 도시 재개발로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더욱이 인터넷 웹상에 표시되던 동네 길과 지번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통째로 없어지고 있다. 그림쟁이 박찬응 작가가 1992년 2월 그려낸 비산마을 어귀의 판화 그림과 함께 구글맵에서 찾은 해당 지점이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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