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최승원]안양 박달2동 호현마을과 친목마을 이야기(2020.08.01)

안양똑딱이 2022. 10. 18. 23:10

(안양시) 박달2 (호현마을과 친목마을)

 

석수역 안양천변에서 보면 수리산 배경에 말들이 놀던 참 아름다운 마을이 보인다.

 그러나 시인 기형도는 <안개>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로 그의 시에 남기었다. 안개의 강, 안개의 군단, 송전탑, 안개의 聖域, 공장들, 긴방죽 공장의 검은 굴뚝들, 폐수의 고장.

사전적으로는 박달은 박달나무의 준말이다. 밝다(박따)는 햇살이 눈부시게 밝다. 라는 의미가 있다. 새벽에 해 돗을 때, 낙조가 비치는 등대 같은 망해암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구안산군 목감에서 범고개를 오르면 고개 넘어 삼성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한천(한내.안양천) 건너에 꽃이 많던 곳이 보인다. 시흥시사람 신현수는 근대에는 박달동에서 안양역 자지붕이 보인다고 하였다. 고구려 잉벌현, 시흥군시 박달동과 석수동은 같은 고구려맛 뿌리이다.

만안초교까지 4km 도보로 1시간거리로 먼 거리다. 서해 뱃골을 통해 들어오면 고개 넘어 첫 동네이다. 주변은 야산이 둘러쳐져 범들과 먹이감 노루 멧되지들이 놀기 좋은 동네이다. 영등포 가는 작은 포구가 있던 곳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부터 군용지라 군수물자가 왕래하였다고 본다.

박달동 주민이 漢川 건너 시흥군(금천)에 거칠었던 철도부지보상 궐기에 나갔다고 구술되었다.

고대부터 군용지가 있었다.

일본강점하며 조선의 물산을 조사하자 박달동은 옹기가 유명하였다. 당시 유명하다는 것은 토질과물 장인의 노력으로 한양이나 개성에 내다 팔었음을 의미한다. 불행하게 일제강점기 군용지확대시 옹기가마가 철거되었다고 본다.

 

아직도 100여년이 넘는 초가집이 두서너채 숨어있다. 안양천(한내 한천)건너 시흥현에 다닌 곳, 여기를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전을 벌린 곳

고개를 넘어가면 좌측안에 새마을교육원이 있었다.

범고개 양측에는 아카시아나무가 많아서 이파리를 따 건조시켜 겨울 닭 사료로 사용하였다.

 

신현수건축사는 안양천 박달동 석수동 통과지에 물막이 공사를 하였다.

2001.8월 입주한 대림한숲아파트 자리는 근명중학교 자리로 사태현이 안양유원지입구 빈교실에서 시작한 비인가 근명중학교를 1950년 후반에 옮겨온 것이다. 1962년 현위치로 옮겨 근명중학교가 인가(2학급 남녀공학) 되었다.

한천(한내) 큰 하천으로

아트시티영향으로 친목마을은 아주 좋은 어린이공원과 녹지벨트를 디자인한 저층주택으로 안양지역 아름다운 경관이며, 광명역 역세권이다.

고대부터 군용지가 있었다. 전술핵무기고는 근대유산이 될수있다.

 전자무기, 레이저무기 발달로 탄약교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최신형B52폭격기는 성능면에서 탄약고만큼 위력을 가추고 있다. 참고하자 그리고 광명시 금천구와 같이 한내 축제를 열자.

 

국립중앙박물관 평의원

홍익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전겸임교수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박물관 운영위원장역입

앙가주망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