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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5]안양천과 학의천변 뽕나무에 여름철 명물 '오디' 주렁주렁

안양똑딱이 2022. 6. 6. 02:13

2022.06.05/ #오디 #뽕나무 #안양 #도시기록 #안양천 #학의천/ 안양천과 학의천변 뽕나무에 오디가 주렁주렁 매달려 까맣게 익어갑니다. 천변 길바닥은 까맣게 익은 오디들이 떨어져 시커멓기 조차 합니다. 또 간간히 비닐봉지와 바구니를 들고 전문으로 오디를 따는 분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안양시가 지난해부터 천변의 나무들은 베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뽕나무들이 짤려나가 오디 보기가 어려울듯 싶었는데 다행히 살아남은 뽕나무들이 제법 있어 안양천의 명물 오디 명맥을 잇게돼 다행입니다. 오디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들은 안양 학의천 남단 학운공원 앞 흙길과 건너편 북단길 천변, 그리고 쌍개울에서 군포 상류쪽으로 이어지는 안양천 왼쪽구간(쌍개울~전파교)에서 볼수 있습니다.
 
안양천과 지천에 어떻게 수많은 뽕나무들이 자라고 있을까.
 
1950-70년대 안양에는 누에고치를 검사하고 연구하는 잠업시험소(현 안양8동 명학공원에 임업사험소와 함께 자리)가 있어 안양지역 주변에는 누에를 치는(키우는) 농가들이 많았고 누에 먹이를 주기 위한 뽕나무도 많았는데 1977년 안양천 대수해를 비롯 여름철 장마때마다 농가의 뽕나무들이 떠내려가면서 하천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소화가 잘 되는 오디를 먹으면 방귀가 뽕뽕 나와서 뽕나무래요

항간에 ‘뽕나무 열매 오디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어서 방귀가 뽕뽕 나온다’고 나무 이름을 뽕나무라 지었다는 설이 나돈다. 그야말로 낭설이란다.
1986년 이두용 감독의 영화 <뽕>에서처럼 과거 남녀가 뽕밭에서 자주 사랑을 나누다 보니 암퇘지 자궁을 ‘암뽕’이라 부르며 푸줏간에서 귀하게 팔리는 사실에 빗대어 여성의 생식기나 성행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 또한 낭설이란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동쪽 해가 뜨는 곳에 있는 신령스러운 나무를 부상(扶桑)이라고 했다는데, 부상이 부앙>붕>뽕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여러 설 중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으나 이마저도 공인된 뽕나무의 유래설은 아니며, 오디에 대한 유래는 아예 오리무중이란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보게 바뀌었음을 이르는 고사성어이다. 고대 중국 동진의 갈홍(葛洪; 283-343)이 저술한 <신선전(神仙傳)>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뽕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서, 번식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밭이란 밭은 온통 뽕밭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찍이 고구려가 비단으로 유명했고, 대를 이어 왕실에서도 왕비가 친잠(親蠶)하며 비단 짜기를 장려했다. 숲속일지라도 뽕나무가 흔한 곳은 필시 과거에 마을이 있었다는 증거로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뽕나무는 누에에게 뽕잎을 먹여 명주실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范曄; 398-445)이 펴낸 <후한서(後漢書)>에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黃帝)의 비였던 서릉씨(西陵氏)가 처음으로 양잠법을 가르쳐 잠신(蠶神)으로 받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초기 때부터 선잠단(先蠶壇)을 두었고, 조선 중종 원년에는 지방의 잠실(蠶室)을 서울로 모이게 하여 그 일대가 지금의 강남 잠실동 이름으로 남아 있으며, 구한말까지 세종대왕이 심었다는 400년 된 뽕나무가 존재했다. 

뽕나무는 양잠 말고도 매우 유용한 작물이었다. 중국 위나라의 무제(조조; 236-290)는 전쟁 중에 뽕밭을 발견하여 굶주림을 면하였고, 금나라 말기 대기근 때에도 뽕나무로 연명한 백성이 수없이 많았다고 전해온다. 평상시엔 잎을 누에에게 먹이고 재목은 활을 만드는 재료로 썼으나, 비상시 봄철에는 여린 뽕잎으로 나물을 무쳐 먹고, 여름에는 무성해진 잎을 말린 뽕잎 가루를 곡식 가루와 섞어 먹고, 6월 이후에는 열매를 따 먹거나 술로 담그거나 말려 가루로 먹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Mulberry)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6월에서 7월 사이 붉은색에서 검은 자주색으로 익으며 열매가 익은 후에는 암술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바빌로니아에 살던 퓌라모스와 티스베라는 두 연인의 슬픈 사랑을 노래하며 그들의 죽음이 마치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처음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연이어 검은색으로 바뀌는 것으로 비유하며 애통히 여겼다.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가 붙인 뽕나무의 학명은 ‘Morus’인데, 모루스는 검은색을 나타내는 켈트어 ‘모르(Mor)’에서 유래했다. 

우리말로 오들개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상실(桑實), 상심(桑椹), 상심자(桑椹子)라고 한다. 허준은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湯液)편에서 ‘검은 오디에는 뽕나무의 정기가 가득 들어 있으므로 상복하면 좋다.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는 약재로 갈증과 당뇨를 주로 치료하며, 세 가지 장을 이롭게 하고 오래 먹으면 배고픔을 달래준다. 귀와 눈을 밝게 하고 장복하면 백발이 검게 되어 노화를 방지한다(黑椹桑之精英盡在於此, 性寒味甘無毒主消渴利三藏久服不飢, 明耳目, 久服變白不老)’고 기술하고 있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약효가 뛰어나 당나라 때부터 약재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