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최병렬]안양 근명학교와 박순천 여사(2019.08.01)

안양똑딱이 2019. 8. 1. 17:00

근명학교의 역사
근명고등학교는 1967년 10월 5일 학교 설립인가(1학급)를 받아 학교법인 '근명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사태현 선생, 초대 교장으로 이종범 선생이 취임한다.
근명고등학교에 개교에 앞서 근명중학교가 먼저 개교하는데 1962년 3월 14일 재단법인 '근명학교' 설립인가를 받은 후 1962년 3월 14일 초대 이사장 사태현 선생 취임과 1962년 3월 17일 근명중학교 설립인가(각 학년 2학급)에 이어 1963년 03월 10일 초대 교장으로 이종범 선생이 취임한다.
학교 연혁 등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근명학교는 개교 당시 학교가 안양시 석수동 안양보육원내에 있었다.
이는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안양시건축사회와 공동으로 지난 2018년 10월 6일 140차 탐사로 안양예술공원 일대 근대건축물을 돌아보면서 안양보육원 강당 건물 벽면에 걸린 사진들을 통해 확인할수 있었다.
또 근명중학교는 개교 당시 남녀가 입학했던 남녀공학으로 1회부터 9회 졸업생까지 남녀가 학교를 다녔는데 10회 부터 여학생만 입학하면서 1973년 3월 근명여자중학교로 개명됐다가 2009년 3월부터 다시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다시 근명중학교로 게명되었다.  

근명중학교가 오랜기간 여자중학교로 인식되면서 초기 졸업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근명중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하기를 꺼려할 정도였지만 이들 기수는 그 어느 기수보다 우애가 두텁고 동창모임도 활동적으로 60대가 넘는 지금도 모임에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근명학교는 1969년 들어 안양5동 현재의 자리에 새 건물을 짓고 학교를 이전하는데 1971년 11월 11일 제 2대 설립자로 이영주 선생이 취임한다.
근명학교는 1972년 2월 12일 해암 박순천 이사장과 3대 교장으로 이말영 선생이 취임하면서 크게 발전한다. 박순천 이사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제 1야당 여성 당수를 역임한 원로 정치인으로 박순천 여사가 은퇴 후에 재단 이사장을 맡아 육영사업을 시작하자 학교 명성이 전국에 빨리 퍼진 것이다.
근명학교는 1973년 3월 1일 근명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개명한다. 당시는 은행은 물론 기업에서 회계를 담당하려며 주산, 부기, 타자 등이 필수적인 시절로 서울에서는 서울여상이, 경기도에 근명여상이 대표할 정도였다.
이후 업무환경이 컴퓨터 처리로 바뀌면서 상업고등학교는 학교이름을 정보(산업)고등학교로 바꾸게 되면서 근명여자정보고등학교로 개명했다가 남녀 공학이 되면서 2019년 근명고등학교로 다시 개명된 것이다.

 

근명학교와 박순천여사
근명학교 이사장을 지낸 박순천 여사는 한국 정치사에서 남성정치인도 하기 어려운 제1야당 당수까지 지낸 정계의 거목으로 최고의 ‘여걸’이자 ‘박 할머니’로 불렸던 인물로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농촌계몽과 여성인권운동도 활발히 펼쳐 여성사에도 족적을 남겼으며 1983년 1월 9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98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박순천 여사는 일찍부터 항일운동에 뛰어 들었는데 마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인 1919년에는 3·1 운동과 연루되어 1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이갑성과 연대하여 마산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된 것이다.
박순천 여사가 정계에 입문한 것은 1950년 제2대 국회 총선에서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 당선되면서 부터다. 제3대 때는 낙선했으나, 4·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서, 제6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으로 서울 마포에서 당선된다. 제7대 국회에서는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전국구를 포함해 5선 의원으로 우리의 정치사에서 여성정치인으로는 첫 손에 꼽히는 박순천 여사는 20년 가까운 정치인 생활을 민주당 총재, 민중당 최고위원, 신민당 고문 등을 지내면서 독재권력과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도 대화정치를 지향해 제6대 국회 때 한·일협정과 월남파병문제로 정국이 경색되자 소속의원들의 의원직사퇴서를 들고 국회의장과 담판을 벌이고 박정희 대통령과 영수회담으로 정국을 정상화시키는 등 강인함과 함께유연함을 보여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의 유세장에서 자유당을 향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국회의원을 한다는데 당신들은 고작 거수기(擧手機) 밖에 못한단 말인가”라며 나무랐다고 한다.
박 여사는 1965년 5월 당시 제1야당인 민정당(民政黨)과 제2야당인 민주당(民主黨)이 합쳐 창당한 통합야당인 민중당(民衆黨)의 당수가 됐으며 같은 해 6월에 열린 제1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윤보선 후보를 제치고 초대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69년 정계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박 여사를 ‘누님’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일화는 친화력을 갖춘 정치인임을 보여주는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