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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권지도]1936년 영등포 지도와 시흥군 역사

안양똑딱이 2019. 4. 1. 22:38

 

#지도 #시흥군 #영등포구 #안양 #금천 #시흥/ 시흥군청이 영등포에 있을 당시인 1936년의 옛 지도로 당시 영등포의 중요시설들이 상세하게 표기돼 있다. 자료를 보면 시흥군청은 1949년까지 지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경인국도 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 때에는 현 영등포구의 절반과 대림동 일대까지 시흥군에 속했을 정도였다.
안양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 수원화산 능행시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인 삼성천에 만안교를 건설하는 등 시흥대로를 건설하고 안양에 안양행궁을 짓자 민가와 거주민들 늘어나게 된다. 1905년 1월에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점차 도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다.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의 중심은 호계동 일대였다. 이는 삼남대로, 시흥대로, 남양길 등 사통팔달 도로가 교차하는 군포사거리 인근에 군포장이 있었고 행정관청인 서이면사무소도 현 호계도서관 인근에 있었다.

서이면사무소는 1914년 4월 1일 과천군 상서면(동안구 일원)과 하서면(만안구 일원)이 통합되면서 축조된 행정관청으로 1905년 안양역이 개통되고 안양역일대가 점차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가 늘어나자 1917년 7월 6일 안양의 중심지인 안양리(현 안양일번가)로 옮긴다.

서이면서무소는 1941년 10월 1일부터 안양면서무소로 개칭되고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된다.

앞서 1947년 영등포에 있던 시흥군청이 안양면으로 이전되면서 안양은 시흥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시흥군청(1946년7월 준공)이 있던 자리는 현재의 안양일번가 삼원프라자호텔과 그 주변이다. 이곳이 안양의 중심지로 번창하게 된 계기는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 수원화산 능행시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인 삼성천에 만안교를 건설한 후 안양에 안양행궁을 짓자 민가가 늘어났고 1905년 1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시흥이라는 지명의 기원이자 시흥의 뿌리는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始興洞)으로 과거 시흥현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다. 시흥은 경기 서부에 있는 군현으로 고구려때는 잉벌노현, 통일신라때는 곡양현, 고려때는 금주, 조선때(정조 이전)는 금천현으로 불리던 곳으로 지금의 서울 금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동쪽, 관악구 일부, 동작구 일부와 경기 광명시 일대, 안양시 석수동, 박달동 일대를 차지할 정도로 넓었다. 

1910년 시흥동에 있던 시흥군청(始興郡廳)은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永登浦里)로 이전한다.

1914년에는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이 실시되는데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을 합쳐 거대 규모의 통합 시흥군을 만든다. 이때 과천현에 속하던 서울 동작구, 서울 관악구 사당동, 남현동, 서초구와 과천시, 군포시랑 안양시 대부분과 안산이었던 정왕, 군자지구가 시흥군에 편입(통합)된다.
1946년에 서울 영등포역 주변이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영등포에 있던 시흥군청은 다시 안양읍으로 옮겨지게 된다.
1960년대 산업화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등으로 안양읍이 서울의 주거, 공업기능 위성도시로 성장하며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1973년에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고 같은 시기에 서면(현 광명시) 지역 중 철산리와 광명리가 광명출장소로 승격한다.
1973년 안양시 승격에 대한 보상(?)으로 부천군 소래읍(지금의 시흥시 북부)을 시흥으로 편입시키고 1979년 산업신도시인 현 안산시 일대에 반월출장소가 설치된다.
1981년에 서면(소하읍+광명출장소)는 서울편입 대신에 광명시로 승격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되고 1982년 과천면을 과천출장소로 승격시키고, 1983년에 화성군(조선시대 수원부) 의왕면을 시흥군 의왕면으로 편입시킨다.
1986년에 반월출장소, 과천출장소가 각각 안산시, 과천시로 승격된다.
1989년에 군포읍과 의왕읍이 각각 군포시와 의왕시로, 소래면(옛 인천도호부 지역)과 군자면, 수암면(옛 안산군 지역)이 시흥시로 승격되면서 시흥군의 행정구역에서 폐지됨과 동시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현재 시흥시가 100년 시흥군의 역사를 이어간다고 하지만 사실 시흥시는 옛 시흥군과 별 관계가 없다. 시흥군이 행정구역 역사를 들여다 보면 일제 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과 수도권의 도시화 과정에서 여러 신도시들이 분리, 독립하는 등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의 옛 시흥군이 엉뚱하게도 행정구역상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의 행정구역에서 시흥이란 명칭을 잇고 있는데에는 필연 어떤 사연이 있을터 이리저리 추적을 해보니 당시 행자부의 총무과장이 역할(?)이 컷음을 확인할수 있어 당시 행정 집행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였는지를 가늠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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