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지도읽기

[안양권지도]1750-1768년 제작 조선지도(奎 16030)속 금천

안양똑따기 2018. 6. 21. 17:50

 

1750-1768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奎 16030) 경기도편의 과천현지도. 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모든 지도는 4.2cm의 방안(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축척(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된 고을의 크기는 실재의 면적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해설)현재 서울특별시의 영등포구, 구로구, 관악구, 금천구, 동작구 일부지역과 경기도 광명시와 안양시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산, 과천, 양천, 인천과 경계를 이룬다. 읍치는 금천구 시흥동 일대에 있었다. 동쪽에 三聖山(삼성산)이 鎭山(진산)이다. 읍치를 지나는 대로는 내륙으로 안산과 과천으로 연결되고, 한강을 넘나드는 해로로 楊花津(양화진)이 표시되어 있다. 이 밖에 역과 교량이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북쪽으로 盤遊驛(반유역), 남쪽으로 安陽驛(안양역)이 표시되어 있고,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주변에 岐灘橋(기탄교)가 표시되어 있다. (김지영)

 

이 지도 제작 당시인 금천현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금천구•관악구와 안양천 동쪽의 구로구 및 동작구의 대방동•상도동, 경기도 광명시의 대부분과 안양시의 박달동 일대에 해당된다. 읍치는 금천구 시흥동의 금천구청 근처에 있었으며, 고을의 진산은 읍치 오른쪽에 표시된 三聖山(478m)이었다. 지도 위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있으며, 남쪽에서 지금의 안양천이 합류된다.

안양천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大川(대천)이라고 나오며, 현재의 영등포구청 근처에서는 ‘오목내’라고 불렀다.

지도에는 안양천이 과천과의 경계선에서 발원한 듯이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과천의 경계를 넘어 훨씬 더 먼 곳에서 발원한다.

안양천변에 적혀 있는 歧溪橋(기계교)는 歧灘橋(기탄교)의 誤記(오기)이며, 이 다리는 보기 드문 石橋(석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양천 상류에는 오늘날 안양시 이름과 동일한 安陽驛(안양역)이 보이고 있다. 조선 시대 지도에 왜 역이라 표기했을까 싶지만 실제로는 安陽橋(안양교)의 誤記(오기)이다. 참고로 과천 지도에서는 안양이라 표기한 반면 금천 지도에서는 안양역이라 표기했다. 

다른 기록에는 萬安橋(만안교)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역시 보기 드문 石橋(석교)였다고 나온다.

長柱峴(장주현)도 長栍峴(장생현)의 誤記(오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오류가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지도가 현지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편집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강 위쪽으로는 楊花津(양화진)이 큰 글씨로 쓰여 있는데,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나루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실제의 위치는 안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었다.

참고로 안양의 한자 표기에 있어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安陽(볕양)으로 표기했다고 하나 安養(기를양)과 安陽(볕양)이 혼재하며 표기되었다. 실제 1861년 대동여지도에 安養으로 표기되는 등 조선시대 여러 지도에 표기되고 안양천석교(安養川石橋, 安陽川石橋), 안양사, 안양천, 안양역 등 다리, 사찰, 역 등 대부분 시설물에서 이중으로 표기됐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