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안양 비산동과 평촌벌 항공사진 #안양 #평촌벌 #학의천 #비산동 #미륭아파트 #희성촌 #안양비산주공1차아파트/
평촌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인 1980년대 초반의 평촌 들녘의 초록 풍광과 비산2동 일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항공사진입니다.
안양 비산2동은 1960년대 말 농사를 짓던 학의천변에 집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로 사진 중앙의 고층 아파트는 지난 1979년 9월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406번지 일원에 신축한 미륭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는 6개동(576세대)으로 지은지 40여년이 다 되어가는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건물 디자인이 예쁘고, 무엇보다 아주 튼튼하게 지었다는 평을 받아 왔지요. 특히 봄이 오면 아파트 신축 당시 주변에 심은 벚꽃나무가 오랜 연륜 만큼이나 화사한 벚꽃으로 만개하는 안양의 벚꽃 명소중 한곳으로 바람이 불면 눈처럼 날리는 꽃잎들이 그야말로 장관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매년 아파트 벚꽃 축제를 열고 친지와 이웃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꽃구경을 하기도 했지요.
미륭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을 추진중으로 2017년 2월 재건축 사업 시공자로 호반건설이 선정했지요. 이번 재건축을 통해 2만8013㎡ 부지 면적에 지하 2층~지상 37층 5개동 총 624가구(임대 6가구 포함) 및 부대복리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으로 2019년 6월 착공 및 분양, 2022년 3월 준공, 같은 해 4월 입주한다는 일정입니다.
미륭아파트 앞 도로 건너편에 보이는 단독주택들이 있는 동네가 예전에 희성촌이라 불리우던 동네입니다. 비스듬한 산자락으로 남향을 향해 옹기종기 지어진 희성촌은 호계동의 럭키화학 공장이 한창 번성할 즈음 직원복지 후생차원에서 비산2동에 만든 단독주택단지였는데 이후 럭키화학의 지방이전 등으로 거주자가 줄어들고 노후되자 지난 2002년 12월 재건축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대림산업과 새로본(시행사)에 재건축이 추진되어 지금은 대림이편한세상 아파트가 들어섰지요.
하지만 지난 2008년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다중분양 사기사건(피해 가구 136가구, 피해액 360여억원)이 불거지면서 조합장의 구속과 시행사 간부의 자살 등 한동안 지역사회가 큰 충격에 빠지는 일도 있었지요.
사진 오른쪽 아래 보이는 저층 아파트는 1970년대 초반에 지어진 주공아파트(654세대)로 이곳은 지난 1996년 3월15일 재건축추진위원회가 발족한 후 2000년 1월 9일 조합원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해 2만8천336㎡의 대지에 16∼17층 규모(22-43평 총 945세대)의 롯데캐슬아파트/낙천대(2013.09 입주)가 들어섰지요.
사진 뒤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은 모락산이며 사진 왼쪽에서 미륭아파트 뒷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학의천으로 쌍개울에서 안양천과 합류하지요.
사진에 보이는 평촌벌이 참 넓지요. 1970년대 이전 학의천과 안양천에는 물이 참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후 6-70년대 까지 안양에 방직공장과 제지공장이 많았던 이유도 깨끗하고 풍부했던 물이 있었기 때문이며 벼농사를 짓던 평촌벌이 엄청난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 역할을 한 것도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는 벼가 물결치듯 일렁이던 풍경이 장관이던 평촌벌은 1990년대초 평촌신도시가 조성되면서 그 넓은 면적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이면서 안양천의 물도 점차 없어지고 말지요. 1980년대의 안양천은 그야말로 악취 때문에 기피하던 곳이었는데 10년이 넘는 안양천살리기 운동과 석수동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끌어 올리고, 지하철에서 솟는 지하수를 흘려보내는 등의 노력으로 사림이 즐겨 찾는 환경으로 변모하면서 지금은 안양을 가장 상징하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지요.
사진 왼쪽 뒷쪽으로는 멀리 희미하게 하얀 탑이 보이는데 당시 안양에서 가장 높았던 건축물로 대한전선 안양공장이 있던 케이블을 만들던 주공장 시설로 그 자리는 '스마트스퀘어 도시첨단산업단지'로 조성됐지요.
참고로 평촌신도시가 조성된 배경을 보면 서울의 과밀해소 방안으로 건설된 제6차 국토개발사업 중 하나로 1차 신도시 중 기존의 도시 외곽에 건설 된 일산과 분당과 달리 기존 도시 안에 조성 된 「도시내신도시」라 할수 있지요.
1988년에 신시가지 건설계획 발표가 있은 후 1992년 최초 입주가 시작되어 1995년 12월 완료까지 6년이 걸렸는데 154만평의 부지에 총금액 1조2천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으며 개발계획변경6차 실시계획변경2차의 순탄하지만은 않은 과정들을 거쳐 탄생된 곳이지요
'타임머신 > 옛사진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70년 여름의 안양유원지 풍경(현 벽천광장앞) (0) | 2017.05.02 |
---|---|
1992년 민중미술 펼쳤던 우리그림-우리들의 땅 회원들 (0) | 2017.04.25 |
1970년대 망해암의 오밀조밀했던 옛 모습 (1) | 2017.04.22 |
1960년 초반 안양 금성방직에서 일했던 얼굴들 (0) | 2017.04.22 |
1960년대 말 안양에서 가장 컷던 대농 안양공장 (0) | 2017.04.17 |
1973년 안양읍이 시로 승격하던 날 안양시 개청 (3) | 2017.04.13 |
1970년대 안양유원지와 비봉산.수리산 풍경 (0) | 2017.04.11 |
1970년대 안양유원지 초입의 삼성천 주변 풍경 (0) | 2017.04.10 |
1970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골목 (0) | 2017.04.08 |
1970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골목 (0) | 2017.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