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지도읽기

[안양권지도]1871년 과천현지도-안양권(경기읍지,규12177)

안양똑딱이 2017. 3. 27. 12:23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규장각 소장『경기읍지』(奎12177) 6책에 수록된 과천현의 그림식 지도다. 당시 과천현은 경기도 과천시, 군포시의 군포동·금정동·당정동·부곡동·산본동, 안양시의 동안구와 박달동·석수동을 제외한 만안구,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노량진동·동작동·본동·사당동, 서초구의 반포동·방배동·서초동·신원동·양재동·우면동·원지동·잠원동에 걸쳐 있었다.

지도에 읍치(邑治)라고 적혀 있는 고을의 중심지는 과천시의 관문동에 있었고, 지도는 남쪽을 위쪽에 배치하여 그린 것을 90도 회전 시켰다. 지도에 수록된 지명, 산줄기와 물줄기, 길 등이 1842년(헌종 8)과 1843년경에 편찬된『경기지』(奎12178) 3책의 과천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앞의 지도에는 없는 하우고개내(鶴古介川)가 있어 직접적인 모사관계보다는 같은 계통의 다른 지도를 기초로 필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쪽 한강가의 동재기나루(銅雀津)에서 시작하여 남태령을 넘고 읍치 왼쪽을 지나 갈미(葛山)를 거쳐 가는 길이 서울에서 전라도를 연결하는 큰 길이었다. 갈미(葛山)는 큰길가에 술막(酒幕)이 있어 지도에 수록된 지명으로 읍치를 기준으로 인덕원내(仁德院川) 너머의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에 있었는데, 지도에는 인덕원내에 이르기 전에 있는 것처럼 잘못 그려져 있다. (이기봉)

지도에서 안양권 산세는 수리산과 태을산, 군포천과 인덕원천을 표기하고 시설물로는 과천현과 시흥현 경계인 안양천석교를 명기했다.

안양천석교는 조선시대에 행정구역 경계로 북쪽은 금천현, 다리 남쪽은 과천현으로 구분했기에 당시 이 다리가 지닌 의미는 컸다. 또 지도에는 이 다리에서 상서면(현재의 안양 동안구)을 거쳐 과천으로 가는 길과 하서면(현재의 안양 만안구)을 거쳐 광주계(현 수원)로 넘어가는 길이 표기돼 지리지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천읍지』교량조를 보면 안양천석교가 있던 위체에 대해 ‘安養川石橋在縣西二十里’라는 기록이 있어 안양예술공원 입구 사거리(구도로-만안로)에서 서울방향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석수교(1969년 준공)가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그런데 사진 우측에 보면 안양천석교(安陽川石橋)라 명기돼 현재의 한자 표기와 다름을 알수 있다. 현재의 안양천 표기를 보면 편안한 양에 기를 양의 安養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安陽으로 양자를 볕양 자를 사용했다.

 

출처: 서울대 규장각 지리지종합정보 http://kyujanggak.snu.ac.kr/geo/contents/con_map.jsp

지도 크게 보기: http://kyujanggak.snu.ac.kr/geo/common/pop_image.jsp?path=/geo/data/mapimg/160419131829_259_187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