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기행]안양시내 한복판의 중앙성당
멋기행 안양시내 한복판
중앙성당
사진학도의 건축물 기행을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건물을 보려고 길을 나선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건물에서에 나에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늘 길을 나서기전에 내맘을 설레게 한다.
사진빨을 잘 받을 만한 건물이 무엇일까? 자료가 많은 건물이 어떤 것일까 ? 하는 구차한 생각들 끝에 안양중앙성당을 선택했다.
장년쯤엔가 PLUS표지에 거대한 창이 잇는 노출 콘크리트 공간이 흑백사진으로 실린 적이 있었는데 완공되기 전의 대성당 내부사진이였다.
내부 치장이나 자잘한 장식들이 붙기전이고 어둠과 빛의 선들이 명확해보여 "역시 사진빨이야!"하던 생각이 나는데, 완공된 모습도 보고 싶었고, 사진과 얼마나 느낌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날씨가 추웠다.
얼음이 처음 얼었던 날이니까... 안양역이 도착헤서 한참동안 헤메다가 모퉁이를 돌아 시장을 향해 가다 힐끗 보이는 하얀삼각형 매스가 보였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건물들과 형태도 색도... 남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방인처럼 이것이 안양중앙성당의 첫인상이었다
장내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 자리에 신도들의 바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성당의 형태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속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 이미지를 현실화시켜야하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이전의 김영섭님의 종교 건축믈들을 보면 이작품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요소가 있다. 이미지에 관한 것으로 그간의 작품은 이미지로 와닿는 작업이 거의 없었다. 조형화된 형상으로 건물이 읽히는 것은 찾지 못한다. 이런 시작이 신도들에 바람들에 작용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안양중앙성당은 한국에서의 교회건축과 예술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문화유산이 도기를 열망하듯 15세기 독일의 화가 알프레히트 뒤러의 그림 기도하는손을 파사드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정면의 상징은 성모자상이고 거눌의 후면 제단측은 부활의 승리 이며 중앙부의 계단실은 포도나무의 상징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산재함에서 정작 우리가 그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몇 개나 될 것인가?
표상에 대하여...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 자신의 개성과 그 건축에 속한 공동체의 이념을 표상하려한다. 건축이 특별한 형태를 통해 개인과 사회를 소통시키며, 인간환경에 기념성을 부여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이란 그속에 사람을 살게 할뿐 아니라 밖을 향해 사람이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살고 있다는 것을 단지 나타낼 뿐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나태내는 것이다. 이것이 표상으로서의 건축의 문제이다.
건축은 그 기원에서 단순한 보호물, 즉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음을 말하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건축이 사는 것 뿐만 아니라 표상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에서는 그시선이 아직 안에 머물거 있다. 밖을 향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그밖과 자신의 관계를 보고는 있지만 아직 자신에게 머물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상으로서의 건축은 처음부터 밖에서 바라보거나 응시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공간 안에 누가 사는가, 누구와 함께 사는 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가를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타인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공동으로 사는 인간에게, 건축은 그 관계을 나타내는 가장 유효하고 강력한 표현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은 자기를 위해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다른 이를 위해서도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단순히 그건물이 학교나 병원으로 나타내는 기호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의 감정과 정신을 전하고 나타내는 것이며, 그렇계 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건축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표상으로서의 건축의 재미는 다른 예술에 비해서 보다 직접적이며 총체적으로 인간의 생활, 일사의 생활을 나타내기 때문에 크다고 할 수 있다. 표상이란 지각에 근거하여 사람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상, 곧 이미지를 말한다. 지각에 근거한다는 것은 감각적,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개념이나 이념에 의한 사변적, 추상적인 것에 치우치면, 중요한 표상의 내용이 무미건조해진다.
창에 대하여...
김영섭님은 "건축형태에서 '은유'의 문제는 종교건물일 경우 더욱 어려운 난제로 등장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초월성에 대한 '상징'내지는 '표상'이라는 넘어야 할 산이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것은 내부공간까지 그 체계와 분위기가 끊이지 않고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에게 교회건축은 사실상 가장 어려운 분야가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위대함 역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안양중앙성당은 이련 건축가 자신이 정해놓은 제약안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힘썻고 그도구들은 주로 상징적 형태들과 빛을 이용한 공간들이었던 것으로 읽혀진다.
성당본체와 만나는 외접사각형의 네 모서리 삼각형이 자연스럽게 외부계단을 이루고, 성당부속시설, 수녀원, 서재란 기능을 수용하게 되며, 부속시설과 만나는 성당의 외벽면을 중첩, 반복시켜 성당내부의 채광 및 상승하는 내부공간 제대외벽의 수직선의 중복에서 비롯되는 초월성의 상징과 의미의 표현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벽을 타고 흐르는 빛, 면과 면의 간격과 중첩면에서 계단들을 둠으로써 생기는 공간의 다양함 긴장과 이완 열림과 닫힘의 반복에서의 끊임없은 움직임이 성당의 고요함에 대비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대성당의 공간은 공포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스케일을 아웃 시키고, 초월적인 힘을 느낄수 있는 내부공간을 연출하기위해 절제된 디자인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건축재료도 노출 콘크리트로 한정하여 1차원적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모든 공간들은 빛으로써 그 절정을 만들어내는데 대성당 에서 우리는 빛으로 충만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3층의 대성당의 입구를 지나면서 벽들의 겹쳐짐으로 만들어진 양쪽 벽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 아니 빛 덩어리들과 중앙의 공간을 반으로 가르는 듯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빛기둥 그리고 그 빛기둥이 받치는 듯한 천창에서 흘러내리는 나누어진 빛들로 대성당의 거대한 무주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워 믿음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난 칸의 빛만들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칸은 평생을 빛에 관해 생각한 건축가였다.
특히 만년의 수많은 드로잉과 그가 언급한 많은 말의 대부분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건축 또는 공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더욱 그 깊은 곳, 인간이라는 존재 그자체에 관한 고찰로 나간다.
"침묵과 빛이 교차하는 그 경계 위에 인간의 유일한 언어인 예술의 성역이 있다. 그것은 그림자의 보고이다.
빛으로 만들어진 것은 모두 그림자를 던진다.
우리의 작품은 그 그림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것은 빛에 속한다." 라는 칸의 말은 이공간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적인 위치로 성당이 페쇄적인 공간이기 보다는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으면하는 요청과 건축가의 생각은 일치했다고 한다.
도시는 광장을 원하고 광장은 도시의 심장과 같은 것 ...도심석의 교회는 이미 교회 자체로만 존재하지않는다.
그것은 도시의 일부이고 중앙이라는 특별한 의미의 장소것을 갖고 교회와 도시 모두가 그 장소를 공유해야 한다.
사진학도의 건축물 기행을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건물을 보려고 길을 나선 것이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건물에서에 나에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늘 길을 나서기전에 내맘을 설레게 한다.
사진빨을 잘 받을 만한 건물이 무엇일까? 자료가 많은 건물이 어떤 것일까 ? 하는 구차한 생각들 끝에 안양중앙성당을 선택했다.
장년쯤엔가 PLUS표지에 거대한 창이 잇는 노출 콘크리트 공간이 흑백사진으로 실린 적이 있었는데 완공되기 전의 대성당 내부사진이였다.
내부 치장이나 자잘한 장식들이 붙기전이고 어둠과 빛의 선들이 명확해보여 "역시 사진빨이야!"하던 생각이 나는데, 완공된 모습도 보고 싶었고, 사진과 얼마나 느낌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날씨가 추웠다.
얼음이 처음 얼었던 날이니까... 안양역이 도착헤서 한참동안 헤메다가 모퉁이를 돌아 시장을 향해 가다 힐끗 보이는 하얀삼각형 매스가 보였다.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건물들과 형태도 색도... 남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방인처럼 이것이 안양중앙성당의 첫인상이었다
장내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 자리에 신도들의 바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성당의 형태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속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 이미지를 현실화시켜야하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이전의 김영섭님의 종교 건축믈들을 보면 이작품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요소가 있다. 이미지에 관한 것으로 그간의 작품은 이미지로 와닿는 작업이 거의 없었다. 조형화된 형상으로 건물이 읽히는 것은 찾지 못한다. 이런 시작이 신도들에 바람들에 작용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안양중앙성당은 한국에서의 교회건축과 예술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중한 문화유산이 도기를 열망하듯 15세기 독일의 화가 알프레히트 뒤러의 그림 기도하는손을 파사드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정면의 상징은 성모자상이고 거눌의 후면 제단측은 부활의 승리 이며 중앙부의 계단실은 포도나무의 상징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산재함에서 정작 우리가 그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몇 개나 될 것인가?
표상에 대하여...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 자신의 개성과 그 건축에 속한 공동체의 이념을 표상하려한다. 건축이 특별한 형태를 통해 개인과 사회를 소통시키며, 인간환경에 기념성을 부여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이란 그속에 사람을 살게 할뿐 아니라 밖을 향해 사람이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살고 있다는 것을 단지 나타낼 뿐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나태내는 것이다. 이것이 표상으로서의 건축의 문제이다.
건축은 그 기원에서 단순한 보호물, 즉 사람을 보호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음을 말하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건축이 사는 것 뿐만 아니라 표상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에서는 그시선이 아직 안에 머물거 있다. 밖을 향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그밖과 자신의 관계를 보고는 있지만 아직 자신에게 머물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표상으로서의 건축은 처음부터 밖에서 바라보거나 응시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공간 안에 누가 사는가, 누구와 함께 사는 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가를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타인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공동으로 사는 인간에게, 건축은 그 관계을 나타내는 가장 유효하고 강력한 표현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은 자기를 위해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다른 이를 위해서도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은 단순히 그건물이 학교나 병원으로 나타내는 기호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의 감정과 정신을 전하고 나타내는 것이며, 그렇계 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건축은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표상으로서의 건축의 재미는 다른 예술에 비해서 보다 직접적이며 총체적으로 인간의 생활, 일사의 생활을 나타내기 때문에 크다고 할 수 있다. 표상이란 지각에 근거하여 사람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상, 곧 이미지를 말한다. 지각에 근거한다는 것은 감각적,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개념이나 이념에 의한 사변적, 추상적인 것에 치우치면, 중요한 표상의 내용이 무미건조해진다.
창에 대하여...
김영섭님은 "건축형태에서 '은유'의 문제는 종교건물일 경우 더욱 어려운 난제로 등장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초월성에 대한 '상징'내지는 '표상'이라는 넘어야 할 산이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것은 내부공간까지 그 체계와 분위기가 끊이지 않고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에게 교회건축은 사실상 가장 어려운 분야가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위대함 역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안양중앙성당은 이련 건축가 자신이 정해놓은 제약안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힘썻고 그도구들은 주로 상징적 형태들과 빛을 이용한 공간들이었던 것으로 읽혀진다.
성당본체와 만나는 외접사각형의 네 모서리 삼각형이 자연스럽게 외부계단을 이루고, 성당부속시설, 수녀원, 서재란 기능을 수용하게 되며, 부속시설과 만나는 성당의 외벽면을 중첩, 반복시켜 성당내부의 채광 및 상승하는 내부공간 제대외벽의 수직선의 중복에서 비롯되는 초월성의 상징과 의미의 표현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벽을 타고 흐르는 빛, 면과 면의 간격과 중첩면에서 계단들을 둠으로써 생기는 공간의 다양함 긴장과 이완 열림과 닫힘의 반복에서의 끊임없은 움직임이 성당의 고요함에 대비하여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대성당의 공간은 공포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스케일을 아웃 시키고, 초월적인 힘을 느낄수 있는 내부공간을 연출하기위해 절제된 디자인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건축재료도 노출 콘크리트로 한정하여 1차원적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모든 공간들은 빛으로써 그 절정을 만들어내는데 대성당 에서 우리는 빛으로 충만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3층의 대성당의 입구를 지나면서 벽들의 겹쳐짐으로 만들어진 양쪽 벽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 아니 빛 덩어리들과 중앙의 공간을 반으로 가르는 듯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빛기둥 그리고 그 빛기둥이 받치는 듯한 천창에서 흘러내리는 나누어진 빛들로 대성당의 거대한 무주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워 믿음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난 칸의 빛만들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칸은 평생을 빛에 관해 생각한 건축가였다.
특히 만년의 수많은 드로잉과 그가 언급한 많은 말의 대부분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건축 또는 공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더욱 그 깊은 곳, 인간이라는 존재 그자체에 관한 고찰로 나간다.
"침묵과 빛이 교차하는 그 경계 위에 인간의 유일한 언어인 예술의 성역이 있다. 그것은 그림자의 보고이다.
빛으로 만들어진 것은 모두 그림자를 던진다.
우리의 작품은 그 그림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것은 빛에 속한다." 라는 칸의 말은 이공간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적인 위치로 성당이 페쇄적인 공간이기 보다는 개방적인 공간이 되었으면하는 요청과 건축가의 생각은 일치했다고 한다.
도시는 광장을 원하고 광장은 도시의 심장과 같은 것 ...도심석의 교회는 이미 교회 자체로만 존재하지않는다.
그것은 도시의 일부이고 중앙이라는 특별한 의미의 장소것을 갖고 교회와 도시 모두가 그 장소를 공유해야 한다.
2003-05-31 15: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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