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4.30/ #아카이브 #엣사진 #since1960년대/ 1987년까지 현 안양3동에서 안양공고와 함께 있던 안양중학교 교무실로 사용되던 석조 건물로 1940년대 미군정 시에 건축된 매우 우수한 건축물이었다. 사진출처:최승원 건축사 블로그
기록을 보면 안양중학교는 이명섭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의 사재 출연으로 1947년 1월4일 재단법인 시흥학원 안양중학교(6년제)로 설립인가를 받아 1948년 3월 15일 공립학교로 개교한다.
안양3동에는 일제강점기시 아사이학교가 존재했었는데 안양중학교와 연관성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당시 사회는 실업자로 넘쳐나고, 일본인 2세들이 간간히 있었으나 천민으로 동화되었다. 부유층 일부는 처첩을 두었으며, 남아를 외부에서 낳아 데려오는 사례도 있었다.
해방 이후은 1947년 미군정 시대에 안양에서 치과의사였던 안정호는 안양교육 촉진위원회의 시설 확충을 위해 금 5만원을 기부하고, 안양중학교 설립을 위해 안양3동의 땅 1만4천평을 기증했다. 조선빠이루직물공업 안양공장 관리인 徐丙선씨와 서울 곽영근시가 토지 3만8천평을 시흥군수 한씨를 통해 기증했다.
전쟁 후유증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농가가 있었지만, 중학생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와 조개탄 난로에 올려 데워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생들은 버스를 간간히 이용하거나 안양, 의왕, 군포, 수암면 등에서 걸어서 등교했다. 중학생은 주로 초등학교 중위권 이상만 모집했으며, 교육열이 부진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먼 거리 거주자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염색한 검은색 교복을 입고 검정 운동화를 주로 신었으며, 반에서 1~2명은 가죽 부츠를 신었고, 가격은 2불 정도였다. 농촌 학생들은 집에서 농사를 돕는 경우가 많았다.
6년제 안양중학교는 1952년 8월 31일 학제 개편으로 안양공업고등학교와 분리되고 1987년.9월1일 안양시 석수3동 752에 학교를 신축해 이전한다.
[최승원]1950-~60년대 안양중학교 이야기
안양중학교는 1960년대 초, 6.25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시기에, 남측의 삼덕제지로 인해 수암천이 심하게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등교육의 필요성으로 설립됐다. 당시 사회는 실업자로 넘쳐나고, 일본인 2세들이 간간히 있었으나 천민으로 동화되었다. 부유층 일부는 처첩을 두었으며, 남아를 외부에서 낳아 데려오는 사례도 있었다.
1950~60년대 당시 어려운 농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종학생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와 조개탄 난로에 올려 데워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생들은 버스를 간간히 이용하거나 안양, 의왕, 군포, 수암면 등에서 걸어서 등교했다. 중학생은 주로 초등학교 중위권 이상만 모집했으며, 교육열이 부진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먼 거리 거주자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염색한 검은색 교복을 입고 검정 운동화를 주로 신었으며, 반에서 1~2명은 가죽 부츠를 신었고, 가격은 2불 정도였다. 농촌 학생들은 집에서 농사를 돕는 경우가 많았다.
1959년 서측 목조 2층 교실에서 1학년은 3개 반으로 구성되었고, 고백환 교장은 유능했지만 좌익 경력으로 인해 시골 중학교로 좌천되었다고 한다. 홍찬범 영어 교사는 일본식 발음으로 "This is a book"을 가르쳤다. 체육 수업은 제식 훈련과 육상을 주로 했으며, 송구 반도 있었다. 사회 수업에서는 역사 연대표를 두루마리로 그려오는 방학 과제가 있었다. 실과 수업에서는 유리를 동그랗게 잘라 오는 숙제가 주어졌다. 미술 수업에서는 손 그리기를 첫 시간에 했으며, 동양화 전공인 미술 교사는 미술반을 지도해 우수한 학생은 서울예고에 진학할 정도였다. 음악반에는 밴드부가 있었다. 체육 교사는 서초 양재동 출신으로 서울사대 체육과 출신인 권광옥 교사가 있었으며, 매우 낡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송구를 열심히 지도하는 교사도 있었다. 체육 교사 별명은 '0께'로 불렸다.
안양공업고등학교에는 염직과가 특별과정으로 있었으며, 미국 원조로 들어온 실습 시설이 우수했다. 김대규 학생은 휴식 시간에 농구를 열심히 했다. 염색과 우수자는 서울공대 염직과에 무시험으로 입학했고, 김대규는 유명 소설가 이무영의 영향으로 1960년 박두진 시인이 교수로 있는 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했다. 이후 조병화의 지도를 받았다.
소풍은 도시락과 사이다를 지참하고, 과천향교에 군대식으로 걸어서 구령을 맞추며 다녀왔다.
4.19 혁명 후 사회 불안으로 5.16 혁명이 일어나자, 군 미필 교사는 집에서 대기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안양역 북측에는 1.4후퇴 시 폭파된 기차 바퀴가 널려 있었고, 석탄 하차 지역 주변은 도시 내에서 가장 시커먼 지역이었으며, 석탄가루 먼지가 많았다.
학교 북쪽에는 금성방직, 남쪽에는 삼덕제지기 있었다. 삼덕제지는 일본인이 주로 사행천 구거지에 지은 공장으로, 종이 찌꺼기가 수암천에 항상 널려 있었다. 피난민 아주머니는 종이 찌꺼기를 말려 연료로 사용하면서 경부선 철도 동측의 삼각형 움집에 살며, 아픈 아들을 안양중학교에 보냈다. 금성방직 정문 건너편 안양로 노변 후면에는 디자인이 있는 2층 여관이 있었고, 주변에는 소규모 술집이 있어 상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안양로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좌측 코너에는 후일 경희대 약대를 졸업하고 개업한 후 안산시로 이전한 이윤희졸업생의 모친이 운영하는 샛별 찐빵집이 있었다. 졸업 앨범이나 반별 단체 사진은 없었다. 윤국노 국회의원(11, 12, 13대 3선의원)이 안양중학교 출신이다.
'타임머신 > 옛사진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326]1960년대 군포(당정동)와 의왕(부곡동) 모습 (0) | 2026.03.26 |
|---|---|
| [20260227]1996년의 의왕시 내손2동 풍경 (0) | 2026.02.27 |
| [20260223]의왕 백운초에서 본 1991년 무렵 내손동 일대 (0) | 2026.02.23 |
| [20260223]군포 수리산 자락 아래 1992년 산본신도시 풍경 (0) | 2026.02.23 |
| [20260215]1990년 의왕 모락산에서 내려다본 오전동 일대 (0) | 2026.02.15 |
| [20260212]1997년 의왕 계원대사거리와 평촌고가교 주변 (0) | 2026.02.13 |
| [20260212]교복 입던 시절 1989년 군포고등학교 조회 장면 (0) | 2026.02.12 |
| [20260211]의왕 오전동의 1991년 모습 (0) | 2026.02.11 |
| [20260209]1990년대 군포 산본 신도시 개발 당시 산본역 주변 (0) | 2026.02.09 |
| [20260209]1997년 의왕 백운호수의 겨울 풍경. 썰매타기 (0) |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