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60315]안양예술공원 삼성천계곡 암벽에 새겨진 비문

안양똑딱이 2026. 3. 16. 00:34

 

202603.14/ #도시기록 #흔적 #역사 #기록 #암반 #비문 #안양예술공원 #삼성천계곡/ 안양예술공원 삼성천 계곡 암벽에 새겨진 비문 어떤 의미일까. 한자.한문에 능통하신분의 도음을 요청합니다. 참고로 비문이 새겨진 암벽 완쪽의 정자(안양정)는 비문은 물론 2000년대 이전의 과거와는 상관이 없다. 지난 2005년 개최된 재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2005) 당시 영구작품중 하나로 설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양유원지란 명칭으로 더 친숙한 안양예술공원 관련 엣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 편에 태종 17년 금천 현감 김 문과 수원 부사 박 강생이 과천 현감 윤 돈의 전별잔치가 계곡에서 열렸다. 또 1930년대 이후 70년대까지 안양지역 초등학교들의 소풍지이자 안양사람의 휴식처이며 서울이나 수원 등 인근지역 사람들도 즐겨 찾던 명소였음을 알수있다.

공식적인 안양유원지의 출발은 1932년 당시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하여 조한구 서이면장과 야마다(山田) 시흥 군수 및 지역유지들을 설득 당시 1,500원의 예산으로 계곡을 막아 2조의 천연수영장을 만들어 안양풀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된다.

이후 1969년 1월 21일 당시 교통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함에 따라 안양풀 대신 안양유원지란 명칭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으며 1971년 7월30일 건설부 고시 제447호로 개발제한구역(일명 그린벨트)으로 지정된 데 이어 1973년에는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건축 및 재건축이 억제되는 당국의 특별관리하에 들어가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더욱이 230명의 인명피해를 낸 1977년의 안양 대홍수는 기존 유원지의 경관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안양풀은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에 휩쓸려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등 천혜의 자연경관이 훼손되자 교통부는 1984년 11월 28일 국민관광지 지정을 취소하였으다. 이에 안양시는 조례로 비지정관광지로 지정해 입장료와 쓰레기수거료를 0000년까지 행락철에 한해 받으며 관리해왔다.

당시 만든 안양풀장의 둑과 탈의용 계단의 형태는 1977년 안양대홍수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나 2000년대 안양유원지 재개발 공사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고 파괴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1942년 안양풀 조성 당시 세운 자연석으로 된 초석이다. 여기에는 '안양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안양유원지 재개발 공사 당시 보의 붕괴를 우려해 콘크리트로 마감하면서 초석의 3분의 2 가량을 덮어버려 마지막 글자를 판독할 수 없다.

안양예술공원은 수도권의 대표적 휴양지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이다. 라와 고려 시대의 불교 유적들, 일제의 흔적과 미군의 주둔, 포도밭과 제약회사, 유원지와 풀장, 고아원과 학교, 소풍과 눌이, 기도원과 무속, 이데올로기의 상흔과 새로운 문화적 욕구가 상존하는 공간으로 안양예술공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혀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