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60120]1963년 안양여중생들의 송충이 잡기

안양똑딱이 2026. 1. 20. 22:11

 

2026.01.20/ #아카이브 #엣사진 #since1963 #안양 #안양여중 #송충이잡기/ 1963년 안양여중생들의 송충이잡기 활동 모습이다. 당시 국가시책 중 하나인 송충이잡이 활동은 소나무 병해충의 원인인 송충이를 박멸하여 산림녹화사업을 원활히하려는 목적의식을 담고 있었으며 1960~1970년대 매년 봄이 되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송충이 집기에 나섰다.

사진 발견: 카페 등산박물관

60, 70, 80 그때는 그 많던 송충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18.05.03 22:24

https://cafe.daum.net/OurMountain/fZqE/372

 

한국전쟁이 끝난후 대한민국 전 국토는 대부분 민둥산이 되었기에 국가의 주요 사업 하나가 나무 심기로 산림녹화사업을 위해 식목일을 정하고 헐벗은 산에 나무심기를 위해  전 국민이 식목사업에 나섰다,

 

당시 학생들도 호미, 곡괭이, 삽을 들고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가까운 산으로 올랐다. 주로 심는 나무는 뿌리를 제외하며 약 30cm 되는 소나무였다. 25cm 깊이 구덩이를 파고, 어린 소나무의 끝을 잡고 수직으로 세운 상태로 뿌리를 구덩이에 넣고 흙을 채우고 살짝 밟아준다. 그런 다음 나무를 들어 올려 접힌 뿌리를 펴고, , 바람에 흙이 유실되지 않게 힘 끝 밟아주고 물을 뿌려주면 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는 얼마나 송충이가 많았던지, 무지막지하게 솔잎을 갈아먹는 바람에 소나무가 말라죽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가 제정한 방제 기간에 맞추어, 학생들까지 송충이잡이에 나서야했다.

 

송충이를 잡으려면 적어도 미리 집에서 깡통을 준비해 가야 했다. 깡통에는 석유를 담았는데 송충이의 몸을 녹여 죽이는 살충제 역할을 했다. 깡통의 크기는 적당해야 한다. 너무 크면 석유가 많이 들어가서 다루기가 힘들고 너무 작으면 송충이 놈이 기어올라 줄까지 타고 오르니까 무섭다. 그놈들도 필사적이어서 전우의 시체를 타고 넘어, 어떻게든 살려고 위로 기어오른다. 따라서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끈을 적당한 길이로 잘 매야한다.

 

송충이 잡는날에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깡통과 나무젓가락 또는 집게를 들고 운동장에 모였다. 반별 2열 종대로 맞춰 서서 선생님의 뒤를 따라 함께 학교 밖 야산으로 향했다. 5월이라 햇볕은 따사롭고 놀기 좋을 만큼 바람도 시원했다. 붉게 벗겨진 산 등을 밟으며 야산을 올랐다. 도시락 없어도 소풍 가는 기분이다.

 

야산에 도착하면 선생님이 부어 주시는 석유를 깡통 안에 담아 넣고 송충이잡이 준비를 했다. 선생님 말씀에 따라 학생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진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사람당 각자 잡아야 할 할당량이 있었다.

 

송충이는 솔나방의 애벌레다. 여름철에 알에서 깨어나, 작은 애벌레가 되면서 솔잎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 이때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월동 후 봄이 되면 우람해져서 송충이 잡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러니까 8월쯤 성충이 되어 알을 낳기 전에, 박멸해야만 했다.

 

딱 얼굴을 들어 올려 소나무를 쳐다보니, 나무마다 크고 작은 송충이들이 득실거린다. 송충이의 머리는 흰색과 검정이 마디마디 섞였는데 온몸에 털들이 서 있다. 끔실거리는 것이 내 몸 어딘 가를 기어 다닐 것 같아 근질거리고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맡은 임무가 있는지라, 송충이 잡기에 나선다. 2명이 1대조로 하기도 하는데 1명은 끈으로 길게 늘어뜨린, 석유가 든 깡통을 들고 있고 1명은 송충이를 집아 깡통 안으로 넣으면 크게 온몸을 뒤틀며 석유를 헤집는다. 그놈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잡아야 할 송충이가 너무 많았다. 나무젓가락으로 가지에서 송충이를 떼어 내려 애쓰지만 요놈들도 만만찮다. 배 쪽으로 몸을 오므라뜨리며 안 떨어지려 한다. 매끈한 둥치면 떼기 쉽지만 꺼칠한 소나무 가지에 감아쥔 놈은 쉽사리 떼어지질 않는다. 송충이를 잡은 손에 녀석이 온 힘을 다해 버티려는 것이 느껴진다. 징글징글하다. 그래도 애써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넣는다.

 

송충이 잡기는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어쨌거나 당시 애벌레인 송충이들을 말살하려고 얼마나 무진 애를 썼다. 그런 봄의 행사는 1970년대에 해마다 벌어지는 연례행사였다.

 

장갑이나 도구는 커녕 산에 자라는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처럼 만들어 숲 속을 헤집고 다닌다. 가지에 긁히고 거미줄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소나무 가지를 한 손으로 비집고 고개를 내민다. 가느다란 털이 삐죽삐죽 돋아 보기에도 고개가 돌려지는 벌레를 집어 깡통에 담는 작업은 순탄치 않다. 여기저기에서 친구들이 송충이 몸에 돋은 잔털에 피부가 닿아 가려움으로 발갛게 긁어댄다.

 

중학교 시절 연례행사처럼 치른 야산 송충이잡이는 산림녹화라는 이름 아래 어린 우리에게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봄철 송충이 집기는 겨울이 다가오면 교실 난로 불쏘시개용 솔방울 줍기로 이어지기에 당시 학생들은 1년에 2번 봄과 초겨울이 되면 학교 인근 야산에 올랐다.

 

유튜브 영상: 그때그시절-1968'송충이 잡기'

2023. 5. 27.

60년대 말 가뭄으로 송충이가 증가하여

전국적으로 방제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대한뉴스를 통해 만나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Dv3ZXlnlA8

 

다시보는 대한늬우스 (68.06.13)

등록일 : 2016.06.13.

https://m.ktv.go.kr/program/again/view?program_id=PG1110358D&content_id=523191

 

다시보는 대한늬우스 (6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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