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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양의 원로 건축사 앙가주망 건축사사무소 최승원 건축사
기자명 이일 기자 입력 2025.05.13 15:46 수정 2025.05.14 11:08 댓글 0
[인터뷰] 앙가주망 건축사사무소 최승원 건축사 - 건축사뉴스
경기도건축사회는 올해 60주년을 맞아 건축사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있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의 중심에는 오랜 세월 \'건축사\'들의 고민과 열정의 결과물인 건축물들로 인해 경기도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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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건축사회는 올해 60주년을 맞아 건축사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있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도시화의 중심에는 오랜 세월 '건축사'들의 고민과 열정의 결과물인 건축물들로 인해 경기도의 곳곳이 저마다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양에서 다채로운 활동과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앙가주망 건축사사무소 최승원 건축사를 만났다. 문서와 스케치, 모형 등 온갖 자료들이 쌓여있는 아카이브 같은 그의 스튜디오에서 건축사 최승원의 역사를 들어 보았다.
설계한 건물들이 철거되는 서글픈 현실과 마주해
“1988년 레트르바이으(앙가주망 사무실 겸 예술 스튜디오)는 기존 단층주택 위에 미군 퀀셋(Quonset)을 재활용 해 지은 재생 건축이다. 국제교류재단 안내로 전 세계에서 학예사들이 단체로 찾아오고, 전문 및 교양잡지에 수록되어 명성을 누렸지만 요즘 재개발 이슈로 시름하고 있다.”
“내가 안양에 설계한 건물 70~80%가 철거됐다. 개조하기 힘들거나 경제성이 떨어지면 쉽게 헐어버린다. 상당히 허탈하고 충격이 크다. 속상한 일이다. 지인이 내가 설계한 주택을 지키고 싶어서 매물로 나오면 언제든 매매하려고 한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이다.”
건축사라면 곳곳에 자신이 에너지를 쏟아 고심해 설계한 건물들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상황에 대해 최승원 건축사는 개조하거나 보수해서 가치를 이어나가기 보다는 경제 논리에 의해서 건축이 일회성으로 소모적이고,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앙가주망’, ‘가운데에서 힘을 합쳐 주변을 희망차게 한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었다. 최승원 건축사는 개업 당시 축하하러 온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안양, 지방에서 개소하지만 열심히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하리라 믿었다. 개업시 친척이 간판을 후원해 주었는데 너무 커서 협회의 지적이 있었다. 은사님 탁구장을 인수해서 개업했는데 탁구대를 책상과 테이블로 사용했었다.”
“앙가주망의 건축 철학은 지역성과 일상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건축이 단순히 구조물을 짓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와 환경에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공간을 창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 해 왔다.”
학창시절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는데, 건축과로 전과하여 김중업 선생에게 건축을 배웠다. 제대 후 단독주택 설계를 하다 감리를 익히고서야 설계를 비교적 완벽하게 하게 되었다고.
대표작인 오화백 아뜰리에의 첫 인상은 조형적으로 시선을 압도하면서 콘크리트 매스의 물성이 강조되어 오히려 내부에 펼쳐질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 건축사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밝게 펼쳐지는 감동을 연출하기 위해서 이러한 도입 동선을 생각했다고 한다. 내부는 절제된 창 계획으로 빛을 어느 정도 통제해 내부로 투사될 때의 느낌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더불어 아뜰리에 내부의 램프를 따라 이어지는 동선 곳곳에서 하늘과 안마당의 장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게 하고자 의도했다.
“빛은 박스형의 나의 아뜰리에에서 발전시켜 설계하였다. 이것은 남향의 빛을 스크린월로 통제하면서 필요한 빛을 강하게 받게 하는 방법으로, 매우 매력적인데 이 방법을 본 건물에 확대·적용하였다. 고창이나 지붕창으로부터 일출부터 일몰까지 온종일 빛이 들어오는데 낮에는 강렬한 빛을 볼 수 있고, 흐린 날에는 분광되어 내려오는 빛이 사람을 매우 감상적으로 빠져들게 한다.”(최승원 글, 건축과 환경, 1994. 01.(통권 113호))
이처럼 오화백 아뜰리에에서는 다분히 설계자의 의도된 프로그램으로서 동선과 빛으로 다이내믹한 변주를 풀어냈다.
안양 신병원은 1965년 신영순산부인과로 시작해 2003년 문을 닫을 때까지 25만여 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안양에서는 꽤 역사가 깊은 병원이다. 1996년 신축한 ‘신병원’으로 이전하면서 출산부터 부인과 질환까지 여성전문병원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펼쳤다.
최 건축사는 수리산 기슭에 위치한 신병원을 부드러운 주변 산세에서 영감을 받아 조형적인 이미지를 풀어냈다. 1층에는 놀이공간과 문화홀 두어 교육과 문화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입원실과 스카이라운지, 테라스에서 평촌(벌말)을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병원이지만 경직된 분위기를 덜어내고 문화와 예술을 가미한 공간 프로그램을 인정받아 1997년 제8회 대한민국환경문화상 건축부문 우수상, 경기도건축문화상 금상을 수상했다.
1998년 원실업 천안공장(現 티케이엘리베이터코리아 천안공장)으로 아카시아 건축상을 수상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다니다 천안 부근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높은 타워가 있는 現 티케이엘리베이터코리아 천안공장이다. 당시는 동양엘리베이터의 자회사 생산시설로 설계하였는데, 2003년 현 회사와 합병하면서 사명이 바뀌었다.
특히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건축주의 의사를 반영해 산업시설이지만 문화와 예술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접근해 공장건축의 수준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건축사는 설계 당시 산업시설이지만 ‘3C’, 즉, 깨끗하고(Clean), 매력적이고(Charming), 문화적(Culture)인 맛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회화나 조각 등을 전시하고, 공장의 역사와 생산 부품을 전시하는 공간, 로비의 실내정원 등을 적용해 이곳을 찾는 바이어는 물론이고 생산직 근로자들에게도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승강기 회사의 공장 건물이기에 승강기의 수직적 이동의 동적인 이미지로서 날아오른다는 ‘비상’에서 조형적인 모티브를 얻었다. 더불어 기존의 철골을 아트적으로 사용하면서 기능적으로도 편리한 동선이 특징이다. 공장 옆 테스트 타워 계획설계 당시 바람의 영향과 독립적인 실험을 위해 본동과는 분리해 계획했다. 더불어 고속도로에서도 광고효과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이처럼 원실업 천안공장으로 스틸 건축의 대중적 보급에 기여하고, 공장건축도 작품으로 진전시키는 이정표가 되었다.
최 건축사는 “기능적으로 구조적으로도 훌륭해야 하지만 앞으로의 건축은 폭우, 폭염, 습설 등 기후 변화에 적응하고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영리한 전략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산업 구조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을 선호하고 있고, 더불어 인구 소멸은 곧 건축의 소멸임이 필연적인 만큼 늘어가는 빈집들에 대한 재조명, 자원 재활용과 같은 친환경적인 돌파구를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원 건축사는 1986년 처음 건축개인전을 안양본백화점 문화홀에서 가졌다. 제1회 최승원건축작품전은 안상수 선생이 리플릿 디자인을, 사진은 배병우 선생이 맡았다.
“건축이 미술의 역사에 들어간다고 본다. 그래서 건축도 전시로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건축이 건설 부흥과 연계되어서 공학 정도로만 여겨진다. 당시 안양도심지 개발계획안을 전시했는데, 우리가 추구 해야 할 30년을 내다보면서 비전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건축 전시를 제일 먼저 했다고 자부한다. 이런 건축 전시가 붐이 일도록 불을 지폈다. 그것에 자부심이 있다.”
2010년에는 평소 관심 있던 살림집을 작은 나무집으로 표현해 집의 원초성과 친환경을 진지하게 고민한 ‘목우(木宇)’ 展을 열고, 2016년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제5회 건축개인전 ‘최승원의 일상’展을 열고, 건축과 일상의 접목을 통해서 사라지는 공간의 아쉬움을 재조명했다.
최 건축사는 이처럼 건축적 영감을 기록하고 탐구한 주제들을 모형, 디자인, 사진, 드로잉, 조각 등의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건축적 이미지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보여주기 위한 나름의 도전이다.
안양, 지방 중소공업도시에서 건축·예술도시가 되기까지
최 건축사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김중업건축박물관 및 안양박물관 운영위원장,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 안양탐사대 활동 등 안양에 ‘건축’이라는 키워드가 문화로 안착할 수 있도록 활동해왔다. 특히 지방에서 건축을 문화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가로서 안양이라는 도시가 건축·예술도시로 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해 2014년 건축전문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특히 건축유산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과 보존, 대중들의 건축문화 접근성을 높인 사례로 유의미한 시사점이 있다.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는 공간으로서 건축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들이 건축을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운영위원장도 역임하고, 2016년에는 김중업건축박물관 1층에서 제5회 건축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는 낙후된 안양유원지를 정비해 도시 곳곳에 미술·조각·건축 등의 예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예술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든 프로젝트이다. 공공예술사업에 지역의 건축사들도 참여해 도시 개발의 새로운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이처럼 최 건축사는 안양만의 문화적 자산을 만들기 위해 관과 민간이 협업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고, 아트시티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곳곳에서 역할을 해왔다.
건축과 글, 기록하는 삶
“나 나름대로 쓴다. 자신이 느낀 대로, 건축사로서 자신의 설계에 대해 글로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사무실 곧곧에 작성 중인 글을 위한 자료들이 가득하다.
최 건축사는 건축사뉴스 초대 운영위원장 활동도 하고, 장소, 인물 등 주제를 정해 읽고,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정리해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다. 작업실 사면이 문서와 책들로 빼곡이 둘러싸인 한 가운데 책상을 두고 건축계, 예술계 인물들에 기술하고, 섬유예술가인 아내와는 미술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꾸준히 한다고.
안양지역건축사회 46년사에 故 조명호 건축사 평전을 쓰고, 강명구 건축사를 비롯해 화가 이중섭, 박수근 선생, 공예판화가 유강렬 선생 등 건축계·예술계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최 건축사는 “늘 그렇듯 그림 그리기에 주력하면서, 목재를 사용해 건축 이미지 작업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올해는 김중업 평전 교정, 안양지역건축사회 건축연표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면서, “경기도도 서울시 같은 건축전시관이 필요하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이 안양에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차기 경기도건축사회 회장이 공약 걸고 경기도와 협력해 추진했으면 한다. 또한 대한건축사협회 창립 100주년 즈음에는 안양은 세계적으로 근대건축 조각 등이 많은 멋진 도시가 될 것이다”라며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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