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7/ #아키이브 #옛지도 #시흥군 #since1986/ 시흥군청에서 1986년 12월 발행한 시흥군 관내도
[시흥군청의 변천사]
행정구역상 아주 거대했던 시흥군의 행정을 담당했던 시흥군청 역사를 보면 1910년 시흥동에 있던 시흥군청(始興郡廳)이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永登浦里)로 이전한다.
1914년에는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이 실시되는데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을 합쳐 거대 규모의 통합 시흥군을 만든다. 이때 과천현에 속하던 서울 동작구, 서울 관악구 사당동, 남현동, 서초구와 과천시, 군포시랑 안양시 대부분과 안산이었던 정왕, 군자지구가 시흥군에 편입(통합)된다.1946년에 서울 영등포역 주변이 경성부(현재의 서울)로 편입되면서 영등포에 있던 시흥군청이 1947년 안양면으로 이전되면서 안양은 시흥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시흥군청이 이전하면서 안양면사무서옆(옛 서이면서무소)에 새 청사(1946년 7월 준공)를 신축하는데 그 자리가 현재의 삼원프라자호텔 자리다. 이후 안양면사무소앞에 안양읍사무소, 그앞에 안양경찰서 등이 신축되면서 안양면(현 안양1동) 일대는 행정타운으로 변모한다.
사실 이곳이 안양의 중심지로 번창하게 된 계기는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5년 실시한 수원화산 능행시다. 정조는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인 삼성천(안양천석교) 아래 안양천에 목조다리가 있던곳에 튿튼한 돌다리인 만안교를 가설하여 시흥대로를 건설하고 안양에 안양행궁을 짓자 민가와 거주민들이 늘어나게된다.
이후 1905년 1월에는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안양역이 생기면서 점차 도시 틀을 갖추고 발전하게 된다.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안양의 중심은 호계동(현재의 구군포사거리) 일대였다. 이는 삼남대로, 시흥대로, 남양길 등 사통팔달 도로가 교차하는 군포사거리 인근에 군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관청인 서이면사무소도 1917년 안양역인근으로 이전해 오기전까지 현재의 호계도서관 인근에 있었다.
서이면사무소는 1914년 4월 1일 과천군 상서면(동안구 일원)과 하서면(만안구 일원)이 통합되면서 축조된 행정관청으로 1905년 안양역이 개통되고 안양역 일대가 점차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가 늘어나자 1917년 7월 6일 안양의 중심지인 안양리(현 안양일번가)로 이전한다.
서이면서무소는 1941년 10월 1일부터 안양면서무소로 개칭되고 시흥군청 소재가 영등포에서 안양으로 옮겨진 2년후인 1949년 8월 14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된다.
한편 시흥군(始興郡)의 변천과정을 보면 1895년 5월 26일 탄생한 후 1988년까지 존재했던 경기도 최대 행정 구역이었다
시흥이라는 지명의 기원이자 시흥의 뿌리는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始興洞)으로 과거 시흥현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다. 시흥은 경기 서부에 있는 군현으로 고구려때는 잉벌노현, 통일신라때는 곡양현, 고려때는 금주, 조선때(정조 이전)는 금천현으로 불리던 곳이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합으로 과천군(현 과천시·안양시·군포시 및 서울 동작구·서초구)과 안산군(현 안산시와 시흥시 남부)이 시흥군으로 통합되면서 시흥군은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 여의도동 제외) · 관악구(남현동 제외) · 동작구 일부(신대방동, 대방동, 상도동) ·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옥길동 제외) · 안양시 일부(석수동, 박달동)를 관할구역으로 할 만큼 엄청 넓었다.
시흥(始興)이라는 명칭이 "넓은 땅(廣野)"을 의미하고 고구려 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의 뜻풀이인 "뻗어가는 땅"과 걸맞다고 할 수 있다.
시흥군은 행정상 서울의 영등포구ㆍ구로구ㆍ금천구ㆍ관악구ㆍ동작구ㆍ서초구 등과 경기도의 안양시ㆍ광명시ㆍ안산시ㆍ과천시ㆍ군포시ㆍ의왕시 등을 분가 시켰으니 명칭과도 일맥상통한다.
1960년대 산업화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등으로 안양읍이 서울의 주거, 공업기능 위성도시로 성장하며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1973년에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하고 같은 시기에 서면(현 광명시) 지역 중 철산리와 광명리가 광명출장소로 승격한다.
1973년 안양시 승격에 대한 보상(?)으로 부천군 소래읍(지금의 시흥시 북부)을 시흥으로 편입시키고 1979년 산업신도시인 현 안산시 일대에 반월출장소가 설치된다.
1981년에 서면(소하읍+광명출장소)는 서울편입 대신에 광명시로 승격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되고 1982년 과천면을 과천출장소로 승격시키고, 1983년에 화성군(조선시대 수원부) 의왕면을 시흥군 의왕면으로 편입시킨다.
1986년에 반월출장소, 과천출장소가 각각 안산시, 과천시로 승격된다.
1989년 1월1일, 군포읍과 의왕읍이 각각 군포시와 의왕시로, 소래면(옛 인천도호부 지역)과 군자면, 수암면(옛 안산군 지역)이 시흥시로 승격된다.
시흥군은 앞서 1988년 12월 31일 종무식을 끝으로 93년만에 해체(폐군)되면서 그 명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은 사라진 시흥군 행정변천사를 들여다 보면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과 수도권의 도시화 과정에서 여러 신도시들이 분리, 독립하는 등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현재의 시흥시가 100년 시흥군의 역사를 이어간다고 하지만 사실 시흥시는 옛 시흥군과 별 관계가 없다. 시흥시 지역은 구한말까지 원래 안산군과 인천부(일제강점기 이후 부천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시흥군 지역과는 다른 곳이 다. 결과적으로 시흥이라는 명칭만 가져다쓸 뿐이기에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일설에는 시흥군 해체와 행정명칭 수립 당시 시흥시 출신의 행자부 총무과장 역할(?)이 컸다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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