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유원지 46

1969년, 안양유원지 공짜풀장 제1풀

#안양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역사/ 안양풀-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역사.....흔적도 없이 사라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풀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4년전인 1968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병사 닐미샬로프가 찍은 슬라이드 사진이지요. 안양예술공원 계곡은 풍부한 수량과 숲으로 1920년대 부터 여름철 피서지였으며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해 사진속의 공짜 안양풀을 개장한 이후에는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1960년대 유료수영장이 서너개 생기고는 1970년대 한 해 평균 100만 명이 몰릴 정도였지요. 실제로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

1958년, 안양풀장(안양유원지) 픙경

1958년 7월에 촬영한 안양풀의 풍경입니다. 국가기록물보존소에서 발견한 사진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으로 간듯 합니다.안양풀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안양역장이던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하여 조한구 서이면장과 야마다(山田) 시흥 군수 및 지역유지들을 설득하여 당시 1,500원의 예산으로 삼성천 계곡을 막아 1933년 개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안양풀은 안양유원지로, 현재는 안양예술공원으로 명칭이 바뀌고, 사진속 아름답던 풍광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사진 앞쪽 자연석 암반에는 '안양 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의 이름이 적힌 기록이 남아 있지요. 안양예술공원의 安養プ―ル(안..

1968년 안양포도와 안양유원지 가는 길

#안양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역사/1968년 여름의 안양 풍경이지요.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가는 길에서 안양포도를 저울에 달아 판매하는 모습입니다. 비치파라솔이 칠성사이다네요. 사진속 위치는 현재 김중업박물관 앞 삼성천 중초사교 인접 하천변으로 비치파라솔 아래 흐릿한 교량이 과거 유유산업(제약회사) 안양공장앞 다리 모습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은 포도하면 안성이나 대부도 포도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사실 대부도 포도의 원조가 안양 포도이지요. 안양포도는 6-70년대 교과서에서 나올 정도로 당시 시흥군 일대에서 재배했는데 도시화로 대부분의 포도밭이 사라졋다가 10여년전 다시 부활해 지금은 10여곳 정도에서 재배되고 있지요. 일반적으로 포도는 14브릭스 정도의 당..

1937년 안양풀장 최초의 기록 사진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1937년 발행된 경기지방의 명승시적에 수록된 안양풀장의 모습이다. 안양예술공원(안양풀-안양유원지)에 대한 사진 기록으로는 현재까지 찾은 것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이 아닐까 싶다. 기록을 보면 안양풀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하여 조 한구 서이면장과 야마다(山田) 시흥 군수 및 지역유지들을 설득하여 1,500원의 예산으로 계곡을 막아 2조의 천연수영장을 만들어 안양풀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풀장을 조성하면서 하천에 있는 거대한 초석(사진 좌측 뚝 수문 앞 바위)에 한자와 일본어를 섞어 '안양 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