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이 경기 시흥시에 이름을 빼앗긴 진짜배기 금천구 시흥동의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 흐름을 따라 조사한 '시흥동, 서울 서남부 전통과 현대의 중심' 보고서를 발간했다.
서울역사박물관 e-nook으로 보기 https://museum.seoul.go.kr/CHM_HOME/ebook/ecatalog.jsp?Dir=622
보고서는 '2023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2007년부터 진행한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조사 연구 사업으로 뉴타운 사업 대상지였던 보광동을 시작으로 이번 시흥동까지 총 41개 지역 조사를 완료했다.
이번 조사는 시흥동의 역사, 공간, 생활사를 살펴보면서 경기도 시흥시에 가려져 있던 금천구 시흥동을 선명히 드러냈다.
<목차>
1. 조사개요
2. 시흥현의 중심, 금천의 시흥동
3. 남쪽의 관문, 시흥의 길
4. 시흥동의 주거지 형성과 변천
5. 사람과 물자의 나들목, 시흥동
6. 생동하는 시흥의 일상과 공동체
금천구 시흥동은 '시흥'이라는 지명과 땅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다. 역사 속에서 시흥은 1795년(정조 19) 금천현이 '시흥현(始興縣)'으로 바뀌면서 등장했다. 현재의 시흥동은 일제강점기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1963년 1월 서울에 편입됐다.
시흥현과 시흥군이던 시절 '시흥관아', '시흥행궁', '시흥군청'이 소재하는 중심지였지만 서울 편입 이후 서울의 외곽 지역으로 위상이 많이 축소됐다. 특히 1989년 경기도 시흥시가 분리 독립되면서 동일한 지명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됐다.
시흥동은 과거 조선시대 정조의 화성 능행길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근대 시기 육상 교통망이 만들어질 때도 국도 1호선과 경부선 철도가 모두 시흥동을 통과했다. 현재도 KTX광명역과 서부간선도로·서해안고속도로가 인접해 서울과 경기 서남부를 연결하는 주요한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시흥동은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와 함께 택지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서울 외곽 주거지로 변모했다. 이후 1987년 수재민 정착촌이 위치한 시흥2동의 재개발 추진 계획이 발표됐고, 1992년 벽산아파트로 탈바꿈했다.
수원·안양·안산·인천 등 공업지대와 인접한 시흥동은 산업유통시설에 입지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었다. 1987년 시흥대로를 중심으로 '시흥산업용재유통센터', '중앙철재종합상가' 등이 형성되면서 서울 서남부 상공업 중심지로 발달해 왔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museum.seoul.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책자구입은 서울책방(store.seoul.go.kr)과 서울역사박물관 기념품점에서 가능하다. 가격은 2만5000원이다.
참고 글
'경기도 시흥군'의 기구한 역사 (feat. 시흥시의 무근본성)
https://24post.co.kr/mystery/7812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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