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사람

[20261030]안양지역시민사회 등불이셨던 정상시 목사님 30일 소천

안양똑딱이 2026. 10. 30. 22:33

 

2026.10.30./ #소천 #인물 #정상시목사 #안양 #안민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의 목회자이자, 종교·사회 운동가로 한국 민중교회 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해 오면서 80년대부터 안양지역 시민사회의 등불이자 큰 버팀목이셨던 정상시 목사께서 30일 오후5시 소천하셨다.

 

그는 한국전쟁 휴전 다음 해 1954년, 지리산 산줄기, 황매산 기슭 작은 마을(두메산골)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비기마을 980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인 황매산은 최후의 빨치산으로 유명한 ‘정순덕’의 활동 근거지이자 은신처였으며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억울한 희생들이 많이 발생한 곳이다.

 

거창고등학교교 졸업후 한국신학대학(한신대) 재학중 학생운동과 투옥 등으로 뒤늦게 늦깍기 대학 졸업후 1988년 목사 안수를 받는다. 정 목사는 긴급조치 세대(75학번)고 시대적 아픔을 몸으로 직접 느끼며  살아왔다. 77년 대학시절 긴급조치 를 반대하다가 1년6개월 징역을 살았고 80년에는 군사정권에 맞서다 2년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결국 대학 졸업은 84년이 돼서야 할 수 있었다.

 

그가 사목 일선에 나선곳은 안양 박달동이다. 안민교회가 안양시 박달동에 자리를 잡은 것은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던 87년 6월, 당시 전도사였던 정 목사는 안양시 박달동에 '박달교회'를 설립하고 '노동상담'과 '노동자 문화교실(기타반, 영화반)', '박달 무료 진료소'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노동선교'라고 표현했다.

 

87년 안양에 오기 전까지는 YMCA에서 활동했고 서울에서 잠시 개척교회도 했다. 87년 이전까지 정 목사는 안양에 전혀 연고가 없었다. 그의 고향인 경남 거창에 갈 때 경부선 열차타고 그저 지나치던 곳이 안양이었다. 그런 정 목사가 안양에 교회를 세운 것은 당시만 해도 안양이 시골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동선교로 출발한 '박달교회'는 92년, 이름을 안민교회로 바꾸며 새로운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바로 어린이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이다. 정 목사는 이 또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 전했다. 이때부터 정 목사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한 사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렇게해서 시작된 사업은 10년 넘게 이어져 왔으며 현재 '‘안민희망둥지', '안민사랑둥지'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정 목사님은 박달교회와 안민교회 개척 및 사역으로 약 34년 동안 목회 활동을 이어오다 조기 은퇴하였다. 아울러 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통일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경기중부지역시민사회에서 6.15경기중부평화연대 공동대표, 경기중부기독교교회협의회 초대상임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 사회와 교계 내에서 꾸준히 평화통일 운동을 전개해 왔다. 2023년에는 ‘6.15평화통일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정상시 목사 장례일정

 

장지 :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

화장장 :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장

장례식장 : 안양 한림대학병원 장례식장 특1호

입관 : 10/31 토, 오후 4시

발인 : 11/2 월, 새벽 5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