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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7]과천초등학교 개교 역사 1900년으로 12년 앞당겨야 한다

안양똑딱이 2026. 10. 18. 02:28

 

과천초는 1900년 설립된 과천군공립소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동안 공식 개교 연도는 1912년으로 기록돼 있었다. 지난 2025년 학교의 역사적 출발점과 공식 연혁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관련 사료를 토대로 한 객관적인 검증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후 관련 연구용역과 정비사업 예산이 2026년도 본예산에 반영됐고, 도교육청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국민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도내 설립 100년 이상 초등학교 83곳의 연혁을 조사했다. 관보와 신문 등 9개 유형의 사료를 교차 검증한 결과, 과천초를 비롯한 8개 학교에서 기존 연혁에 이전 설립 역사가 빠진 사실이 확인됐다.

 

학교 설립년도가 1912년으로 소개되어 왔던 과천초등학교의 출발점을 12년 앞선 1900년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은 광무4년(1900.7.20) 과천군공립소학교 부교원 신종묵(愼宗默, 1856∼1949) 임명장에서도 확인된다. 이 임명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 있는 기록물로  과천 거주 거창신씨 집안에서 보관헤오다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 수집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신중묵 교원 임명장 사료(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catalogId=DKI050_02_01C0001 )

 

 

그렇다면 신종묵은 누구일까.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보면 신종묵은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던 시기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국권이 일제로 넘어간 이후로는 교육 활동에 치중하여 말년을 보냈다. 구체적인 관직 경험을 살펴보면 1899년(광무 3) 4월에 통정대부 비서원시종경(秘書院侍從卿)이 되고, 1900년에 승훈랑(承訓郞)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에는 육군유년학교(陸軍幼年學校) 교관을 역임하였다. 그는 다양한 문집을 남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산만고(愚山晩稿)󰡕 1책, 󰡔우산시고(愚山詩稿)󰡕 5책, 󰡔행원록(行源錄)󰡕 1책, 「이학사행장(李學士行狀)」, 󰡔교영의숙동연록(敎英義塾同筵錄)󰡕 등이다. 그리고󰡔동연록󰡕은 우산이 한계교영의숙(寒溪敎英義塾)의 선생으로 있을 때, 스승과 제자의 신상과 작문을 각각 1편 씩 모은 것으로 필사본이다. 한계교영의숙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중 대표적인 작품인 󰡔우산만고󰡕와 󰡔우산시고󰡕는 1914∼1918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가 남긴 제44호 일기인 󰡔한계일기(寒溪日記)󰡕는 일제 말기인 1944년 1월에서 4월까지의 일기형식으로 된 한시(漢詩) 모음집으로 한글 번역의 필요성이 있는 자료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일기는 겉표지에 “제44호”라는 일련번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산 신종묵은 말년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이 일기자료 가운데 일부만이 남아 있지만, 과천지역의 일제 말기 모습을 살피는 데에도 이 일기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일보 기사(2016.10.17.일자)

과천초교 설립 ‘1912년 아닌 1900년’… 누락된 12년 역사 찾았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61017580019?fbclid=IwY2xjawVAgXlleHRuA2FlbQIxMQBwZG9mBXNydGMGYXBwX2lkEDIyMjAzOTE3ODgyMDA4OTIAAR7o5OwOklTRo2FG0R_Xjp0Pcn4kW0HeRX_ztPKEvrtJi2aB1V6FESGlq0w9mQ_aem_LHAFZEU1oyAticCRgUALxQ

 

이는 앞서 지난 2025년 9월 5일 김현식 도의원(국민의힘·과천)이 제386회 임시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학교 설립 연혁 문제를 공론화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 김 의원은 과천초가 1900년 설립된 ‘과천군공립소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공식 개교 연도가 1912년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도교육청에 학교 설립 연혁 조사와 정정 조치를 촉구했다.

 

김의원에 따르면 1900년 당시 강상기 과천군수는 관아 내 연무정 자리에 과천군공립소학교를 세우고 학부의 공립 인가를 받았다. 이는 관보 제1631호에도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일제가 1912년 총독부 명의로 과천공립보통학교를 새로 인가하면서 기존 설립 연혁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천초등학교는 지금도 1912년 개교로 공식 기록돼 있다.

 

더팩트(2025.09.05일자)

"과천초 개교 연도가 1912년? 일제가 지운 연혁"

https://v.daum.net/v/20250905182611725

 

[20261017]1911년 과천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과천초등학교 역사

https://anyangbank.tistory.com/8581

 

대한제국, 1895.1.7.고종은 최초의 헌법 홍범14조 선포. 교육입국의 뜻을 밝힌 교육칙어 반포. 잇따라 각 부군(府郡)에 공립소학교를 세우라고 규정하는 ‘소학교령’을 공포한다. ‘소학교령’에 따라 과천군수 강상기(1899년 부임)는 1900년 과천관아 남쪽 무예 연마장인 연무정에 과천군 공립소학교 설립(현재의 자리) 후 학부(學部)에 청원하여 공립으로 인가를 받았다.


따라서
, 과천초등학교는 과천군공립소학교(1900년 설립) → 과천군공립보통학교로 개칭 → 다시 쌍명학교로 흡수편입.계승 → 다시 일제가 사립과천보통학교로 흡수편입·계승(통감부.1911년)하여 → 과천공립보통학교(통감부.1912년2월13일. 인가) → 과천공립심상소학교(1938년) → 과천공립국민학교(1941년) → 과천초등학교(1996.3.1.)로 개칭하였던바, 학교는 같으나, 격변하는 시대에 따라 명칭만 달리하여 변천하여왔던 것이다.

 

이렇듯, 옛 과천관아 자리에 설립되어 과천군공립소학교(1900년)로 부터 시작된 근대 초등학교의 맥은 예전의 그 터 바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재의 과천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간 과촌초교는 일본인 교장(이와키리)이 부임해 과천공립보통학교로 재 개교한 1912년을 기준으로 4월1일을 개교기념일로 알고 지난 2012년 4월 1일에 교정에 개교10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