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9.27./ #아카이브 #옛기록 #since1907 #기행문 #관악산 #이익 #관악산약수암기/
冠嶽山藥水菴記(관악산약수암기)는 조선 후기 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이 1707년 관악산을 유람하며 쓴 기행문으로, 산의 경치와 사찰, 암자, 폭포 등을 묘사한 글이다
영주대(靈珠臺): 관악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묘사됨.
자하동(紫霞洞): 동·서·남·북 네 곳이 있으며, 특히 동자하가 폭포와 못이 있어 가장 아름답다고 기록.
의상봉(義上峯):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언급.
관악사·원각사: 산 중의 사찰들.
영주대 정상: 세 방향으로 전망이 트이고, 절벽에 불상을 새겨놓았으며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단이 있었다고 기록.
등불 구멍: 바위 끝에 구멍을 파서 등불을 두었는데, 도성 안에서도 빛이 보였다고 함.
南紫霞有石室(남자하유석실) 남자하에는 돌로 된 방 석실이 있다
이익(李瀷, 1681년 10월 18일~1763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사상가, 철학자, 실학자, 역사가, 교육자로 조선 영조 때의 남인(南人) 실학자이다. 자는 자신(自新), 호는 (星湖)이며, 본관은 여주이다.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이상의의 증손이고 대사헌 이하진(李夏鎭)의 아들이다.
섬계 이잠(剡溪李潛)에게 수학하다 송곡 이서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숙종 31년(1705년) 증광과에 합격하였으나, 그의 형 이잠(李潛)이 당쟁으로 희생된 후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홀로 학문 연구에 진력하다 미수 허목과 아버지 매산(梅山) 이하진(李夏鎭), 반계 유형원 등을 사숙하였고, 이후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어 근기남인 최대의 학파인 성호학파를 형성하였다.
영조는 그의 명성을 듣고 영조 3년(1727년)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으로 임명했으나 사양하고 저술에 힘쓰는 한편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여 안정복, 윤동규, 신후담, 이중환 등을 배출하였고, 그의 학통은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이현일 등으로 이어졌다. 안정복의 동사강목 편찬을 후원하며 자료를 구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
남인의 여러 학파들의 마지막 공동 조상으로, 그의 제자들 대에서는 남인 성리학파와 남인 실학파, 공서파와 신서파 등의 여러 계파가 분리되었다. 또한 천주교와 서학의 수용에 개방적이었던 그의 학풍을 둘러싸고 제자들 간에는 성호좌파와 성호우파의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1] 섬계 이잠(剡溪李潛), 송곡 이서우(松谷李瑞雨)의 문인이다. 경기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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