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중초사지-안양사지-천년역사관
2025.10.16/ #도시기록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중초사지 #안양사지 #유유부지 #김중업/ 이 공간은 827년(통일신라) 중초사 900년(고려) 안양사, 1959-2006 유유제약(김중업 설계)이 존재했던 곳으로 안양시가 2017년 매입하여 2014 김중업박물관(유유 공장동), 2017 안양박물관(유유 사무동)을 개관한 천년 안양역사의 보물창고이다.
1950년대 산업건축물 안양박물관으로 재탄생 '통일신라 중초사' '고려 안양사' '근대 제약공장' 으로 맥 잇는 문화의 보고
통일신라 '중초사(中初寺)'이래 고려 '안양사'가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위에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해 1959년 5월 건립한 제약공장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름하여 '김중업박물관+안양박물관'이다.
2014년 3월 28일 개관한 김중업박물관은 대지 1만6243㎡, 연면적 4천596㎡, 6개 동의 규모로 지난 2007년과 2011년 두차례로 진행된 안양시의 유유부지 문화공간 조성계획 수립 용역과 2년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옛 건물들을 문화적으로 재생하여 새롭게 탄생시킨데 이어 2017년 9월28일 안양역사관이 이전 개관해 그야말로 천년역사관이 됐다.
(주)유유 안양공장은 1941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제약회사를 설립한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6.25전쟁 이후 매입하여 50여년간 운영한 산업건축물로 한국의 손꼽히는 건축가 고 김중업(金重業,1922∼1988)씨가 1957년에 설계하여 1959년 5월에 준공했다.
건축가 김중업은 평양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 관립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르코르뷔제 건축연구소에서 수학하고 미국하버드대의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김중업박물관에는 김중업이 설계한 사무동, 생산동, 경비실, 창고, 보일러실, 굴뚝 등 6동과 함께 여러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유유 부지내에서 통일신라 중초사, 고려 안양사 절터가 발굴되면서 김중업 설계 건축물과 전시공간 1곳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토록 했다.
김중업 건축물들이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1950년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건물이 건축되었다는 것은 유유 창업자인 고 유특한 사장의 예술적 감각과 높은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김중업이 설계한 산업건축물의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으로 새롭게 변신했지만 건물의 외형은 공장에 예술을 가미해 건축한 설계 당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김중업간축박물관(593.72㎡ /전시, 영상, 아카이브)으로 변신한 과거 사무동은 유유를 상징하는 'Y'자 형상의 포치(porch) 기둥을 세워 조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지붕은 역보로 되어 있다. 이곳에는 김중업이 1956년 설계한 명보극장을 비롯 부산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본관, 제주대학교 본관, 프랑스대사관 등의 도면 및 건축물 모형 등 100여 점의 작품이 상설 전시돼 한국 근현대건축계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남긴 유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안양박물관(2,394.16㎡ /전시, 교육, 체험, 편의시설 및 사무실과 레스토랑, 미니카페, 뮤지엄숍)으로 리모델된 생산동은 캔트리버로 형성된 코너가 삼성천의 시야를 확보하고자 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미된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다. 대문장식, 철창 등이 유유를 상징하는 쌍Y자를 모티브로 하고, 건물 냉난방 연통의 구멍을 유두(乳頭) 형태의 조형물로 가려 놓는 등 예술적 감각이 곳곳에 간직돼 공장 건물로선 실로 파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2층 외벽 모퉁이에는 조각가 박종배(제14회 국전 대통령상)의 작품 '파이오니아(pioneer)'와 '모자상(母子像)'이 시선을 사로잡는 등 그 외관부터가 톡특해 과거 안양유원지 시절에는 술에 취한 행락객들이 이곳이 호텔인줄 잘못알고 투숙을 요구하며 경비실에서 걸핏하면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던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창고는 빨간 벽돌의 외형과 천장에 안전사고 표지판이 그대로 간직한채 내부는 50센티에 달하는 방음시설을 갖춘 공간(273.72㎡ /공연, 교육, 강연, 이벤트 행사장)으로 변신했으며, 경비실은 문화지킴소(28.83㎡ /안내, 홍보 등), 보일러실은 전망대(43.3㎡ /박물관 조망)로 새롭게 태어났다.
"천년 전 안양사 절터 흔적 다시 지하에 묻혀 안타깝다" 김중업박물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양시가 공장 부지를 매입한 이후 복합문화공간 활용에 따른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실시한 중초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곳이 안양시의 지명 유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안양사(安養寺) 절터임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유물로 유일하게 명문이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4호)가 자리하고 있어 그동안 통일신라시대 중초사지 터로만 알려졌으나 2009년 부지내 사굴과정에서 900년경 태조 왕건이 창건한 안양사의 흔적인 安養寺銘文瓦(안양사명문와편)이 출토되고, 역사속 기록으로만 있던 최영장군이 건립에 관여한 ‘전탑지(塼塔址, 벽돌로 만든 탑)'의 흔적까지 발굴됨으로 안양사의 실체가 드러났다.
안타까운 점은 발굴된 거대한 절터의 현장이 그대로 다시 흙으로 덮였다는 사실이다. 복합문화공간 활용 논의 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일환으로 칠층전탑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덮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보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더욱이 어린이와 청소년 및 시민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전혀 고려되지 않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천년역사관 부지(공장 터)에서 발굴한 안양사 명문와편과 함께 통일신라-고려의 치미와 막새 등 기와류와 전돌류, 도자 및 도기편과 용도 미상의 기와, 전돌, 귀면와, 철재 동물 장식 등이 출토 유물들은 안양박물관 전시를 통해 살펴볼수 있다.
명문이 새겨진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이 있는 통일신라 중초사 터에서 ‘안양사명문와편(安養寺銘文瓦片)'과 최영장군이 건립에 관여한 ‘전탑지(塼塔址, 벽돌로 만든 탑)' 등 관련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돼 안양 지명의 정체성을 입증시켜준 문헌속 고려 안양사, 건축가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건축물로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으로 이어지는 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부지에 기존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은 안양의 역사를 보여주는 보물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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