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7/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역사 #사이면사무소 #안양옥 #since1980 #안양1동 #중앙동/
안양1동(현 안양일번가)에 자리한 구서이면사무소(舊西二面事務所)가 재건축되기전 갈비집 안양옥으로 사용될 당시의 모습으로 안양문화원에서 1984년 12월31일 발행한 안양문화 제3호 속지에 수록된 사진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조선기와가 지붕에 얌전하게 가즈런히 앉아있는 모양새와 곡선의 처마선이 예쁜것이 안양시가 매입후 복원한 현재의 새 건물과는 모양새도 달라 당초 원형이 많이 달라진듯 하다. 안양옥 건물을 매입해 전면 해체 복원 보다는 원형 그대로 두었더라면 문화적 가치도 더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장내로143번길 8(안양1동 674-271번지)에 소재한 이 건물은 1914년 3월에 시흥군 서이면의 면사무소로 세워졌다가 1917년 현 위치로 이전되어 1949년까지 면사무소의 기능을 수행했던 근대시기 지방관공서 건물이다.
서이면사무소는 1914년 3월 과천군 서이면의 면사무소로 현 안양시 호계2동 호계도서관 인근 방죽말에 세워진 하서면사무소 건물이었다. 하서면이 속하였던 과천군이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시흥군으로 편제된다. 1917년에는 시흥군 상서면과 하서면을 합하여 서이면으로 통합하면서 1917년 7월에 면사무소가 호계리에서 안양리 현 위치로 이전되면서 건물도 이전되었다. 이 때에 원래 一자형이었던 건물을 ㄱ자형으로 증축하였다.
과거 서이면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하다 안양읍 부읍장까지 지낸 고 김 형욱옹의 구술에 의하면 1917년에 호계동 있던 건물을 현재의 자리로 뜯어서 옮길 당시 귀인동 이종문 씨 집 행랑채를 헐어 건물의 규모를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면사무소 이전은 서이면의 중심지가 호계리에서 안양리로 바뀐 것을 의미하는데, 1905년의 안양역사 개설로 인하여 인구와 물자 이동의 중심축이 안양리로 이동하였고 을축년대홍수 당시 하천 범람에 따라 호계장이 안양장으로 합쳐지는 등의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서이면사무소는 1941년 10월 1일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계속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49년 8월 15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면서 면사무소 북쪽 땅(현재의 맥드날드 건물)에 안양읍 청사가 신축되자 평북 정주에서 의원을 하다 월남한 의사 이영래 씨에게 매각된다.
당시 병원 개업할 곳을 찾던 이씨는 60만원에 입찰공고가 나 있던 면사무소 건물을 70만원에 수의계약으로 매입한 후 삼성의원건물(안채)로 1983년까지 사용된다.
안양시의사회 자료집등 다수 자료에 옛 서이면사무소가 삼성병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엣 어르신들 말을 종합해 보면 병원은 서이면사무소옆 3층 건믈을, 서이면사무소 한옥은 안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 처음에는 서이면사무소를 병원으로 사용하다가 옆에 3층 건물을 짓고 병원과 안채를 구분한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병원 안채로 사용되던 한옥 건물은 이영래 원장이 은퇴하면서 안성 출신의 안아무개씨에게 매각된 이후 갈비집 ‘안양옥(安養屋)’으로 사용된다. 정리하면 1895년부터 1914년까지 19년 동안은 과천군 하서면사무소로, 1914년부터 1941년까지 27년간은 사흥군 서이면사무소로, 1941년부터 1949년까지는 시흥군 안양면사무소로 모두 54년간을 면사무소로 사용됐다.
1950년부터 1983년 무렵까지는 삼성의원과 병원 안채로, 1985년부터 1999년 무렵까지 갈비집 안양옥으로 사용됐다.
2000년 10월 안양시가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해체 복원사업을 통해 재복원시킨 후 2001년 1월 22일 문화재(경기도문화재 자료 제 100호)로 지정하여 지금은 일제의 수탈과 안양 지역의 독립 운동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중이다.
1990년대 무렵 안양학연구소 문원식 교수는 서이면사무소 관련 글에서 서이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던 원로들과의 면담과정과 건축전문가들의 확인과정에서도 건물의 원형이 손상되지 않았고, 보존상태도 좋다는 것이 밝혀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논한바있다.
그런데 안양시는 서이면사무소와 주변을 공원화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당시 시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부쳐 안양옥을 매입했으며 이후에는 원형을 보존해야할 건물을 해체한후 새건물을 지었다. 이는 문화유산 훼손이 아닐까 싶다.
한편 건물과 관련히여 서이면사무서를 출입하는 정문이 당초 건물 동쪽으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반대쪽인 서쪽으로 놓여졌다.
특히 1999년 안양시가 구서이면사무소의 매입과 복원 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문화재 지정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면사무소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경제를 수탈할 목적으로 수행 및 착취를 주도한 기관이며 1917년 안양면으로 건물을 이전하며 상량식을 일본왕 생일 당일에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지역 사회에서 친일 및 수탈 주도 논란이 불거졌다. 또 초대 면장이 조선총독부로부터 2차례에 걸쳐 훈장을 수여한 것으로 알려져 친일 논란이 되었으며 개소할 때도 일본왕 생일에 대들보를 올린다는 축사(祝辭)와 축문(祝文)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친일 논란이 굳어졌다. 일제 중엽에는 학도병 및 성노예 징집과 창씨개명 정책에도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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