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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1]의왕 고천성결교회 자료들

안양똑딱이 2024. 12. 2. 05:56

 

2024.11.19/ #전시회 #기록 #의고천성결교회/ 의왕문화원 주최로 열린 값진흔적, 의왕문화유산 전시회. 2024.11.13~11.21. 의왕시 내손동 새마을금고 4층 전시장에서 선보였던 자료들이다.

 

과거 시흥군(안양.군포.의왕.과천)지역 성결교회의 시작이라 할수 있는 의왕 오전리교회(현 고천성결교회)는 1937년 6월5일 헌당식을 가진 오래된 교회다. 한국기독교의 선교사업은 장로회와 감리교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경기도 선교활동 역시 이 두 교파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이들 보다 늦게 들어온 다른 선교회들은 선교지를 물색하고 활동을 하는데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190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성결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시흥군 지역 성결교회의 설립에는 1928년 수원지역에 성결교회가 설립된 것이 직접적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의왕의 오전리는 문화유씨(文化柳氏) 동족촌으로, 이곳에 시집온 홍길순(洪吉淳)은 이성봉 목사에 의해 설립된 수원성결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유영희, 유금벽, 유춘희, 유근호, 이복경, 진남희, 홍 순, 유포신 등이 홍길순의 전도와 개종자들의 활동으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여 수원성결교회로 주일마다 예배를 보러 다녔다. 수원으로 예배를 보러 다니는 오전리 주민들이 많아지자, 이들을 중심으로 오전리에 교회를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예배당을 건축하기에는 재정적인 여건이 어려웠기에, 1937년 6월 10일 약 20여 명의 신도들이 오전리 유근풍의 사랑방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오전리 신앙공동체를 시작했다. 당시 교회의 정식 명칭은 조선야소교朝鮮耶蘇敎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오전리교회五全里敎會 였다. 수원성결교회의 지교회 형태인 오전리 기도처는 설치된 지 3개월 만에 이성봉 목사를 초빙하여 5일간 전도부흥회를 개최하였고, 그해 말 경성성서신학교 재학 중인 윤광선 전도사가 담임교역자로 부임하여 사역하게 되었다. 1938년 교인수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유창희가 헌금한 100원으로 교회는 마루와 종, 시계 등을 갖추었고, 공사시작 4개월 만에 완성되어 헌당식을 가질 수 있었다. 오전리교회는 1939년 4월경, 수원교회의 지교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립하였고, 1941년 4월 유택윤 목사가 부임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가 황민화정책을 통한 한국교회의 지배를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고, 평소 일제의 식민정책과 신사참배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던 유택근 목사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원경찰서에 구금된다 . 오전리교회는 1943년 11월에 경성 구세단(救世團)에서 출장 온 신경산 목사의 인도로 교회의 간판을 구세단으로 임시로 바꾸고 17개월간 문을 닫지 않았다. 박해 중에도 교회는 23명 이상의 세례교인이 장로를 투표로 결정했는데, 유춘희 집사가 장로로 피택되었다. 이처럼 오전리교회는 일제 말기에 어려운 시련을 신앙공동체 특유의 힘으로 견디며 오전리를 비롯한 전 의왕의 꺼지지 않는 신앙의 등대 역할을 하면서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 나갔다. 오전리교회는 1962년 7월 오전리 391번지로 이전하였고, 1974년 고천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1978년 고천리 305-10번지(의왕시 효행로 16)로 다시 이전하면서 고천성결교회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