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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안양포도 맥 끊어지기 직전. 농가 단 5곳뿐

안양똑딱이 2024. 9. 10. 22:18

 

[2024.09.10 안양시로부터 입수한 안양 포도 재배농가]

 

안양시가 시의 명물로 안양포도를 내세우고, 마스코트로 '포동이'를 자랑하고 캐릭터까지 만들어 홍보하지만 정작 안양포도를 재배히는 농가는 5곳에 불과한것으로 조사됐다.

 

안양시를 통해 안양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를 확인한 결과 2024년 9월 현재 총 5곳이다. 이들 농가들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캠벨 등을 생산하고 있으나  면적이 적다보니 생산량도 아주 적다. 그렇기에 외부 판매처 납품과 위탁은 커녕 오로지 사전 주문 예약과 직접 방문을 해야만 구입할수 있어 농가에는 단골고객들의 발길과 주문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안양에 대규모 포도밭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과거 6-70년대 까지만 해도 안양 전역은 물론 인근 군포와 의왕까지 포도밭이었다. 당시에는 교과서에 경기 명물 3미(안양 포도, 수원 딸기, 부천 복숭아)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날렸다. 이후 70-80년대 안양유원지 일대에는 여름 피서철 이후에도 포도를 맛보고 보트를 타러 나들이를 나온 인파가 줄을 이었고,  80년대 호계동(현 군포경계지)에는 포도원이라는 지명이 생기고 지금도 버스정류장으로 표기되고 있을 정도다. 

 

70년대에는 포도밭이 90ha에 달할 정도로 도시 곳곳에 포도 농장이 있었다. 그 많던 포도밭은 80년대 이후 도시개발로 주거지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점점 사라지더니 2000년대 이후 포재배 농가는 10여곳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래도 비산운동장과 수도군단 주변, 인덕원과 관양고 주변에 대규모 포도 재배 농가가 있었다. 하지만 안양시가 2006년 개최한 세계인라인경기대회를 추진하며 인라인경기장 건설과정에서 대규모 포도밭이 사라졌다. 또 현재 안양시와 안양도시공사, 경기도시개발공사의 그리니티시티 개발사업을 추진하며 포도밭중 규모가 가장 켰던 푸른포도원이 개발부지에 포함되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안양포도의 맥을 끊은 주범은 안양포도를 살리고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해야 할 행정기관이나 다름없다.      

 

[ 안양시가 제공한 포도재배 농가 명단]

 

1. 유원지포도원(석수1동225-1)

2. 그린포도원(석수1동 389-23)

3. 비봉포도원(비산3동 140)

4. 인덕원포도원(관양1동 141-3/ 010-3765-9170)

5. 대양포도원(관양2동 155/ 031-423-5219)

 

[ 미확인 농가]

1. 숲속의포도원(안양시 동안구 관악대로 463/ 031-422-3867) 

 

2024년 9월9일 포도를 구입하기 위해 확인한 결과 -문 닫거나 전화받지 않는곳이 많다는 정보임

 

 

교과서에도 실렸던 '안양포도' 를 아십니까.

 

'포도'하면 '안양'이라 말할 정도로 1970년대만 해도 9월이면 서울사람들이 포도를 맛보러 몰려왔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는 물론 호계동에는 포도원이란 지명이 있을 정도로 안양시내 잔역에 대규모 포도밭이 있었다.

 

'안양 포도’는 부천의 복숭아, 수원의 딸기와 함께 지난 70년대 '경기삼미(京機三味)로 불리며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1967년 9월 15일 경기도 안양 경향포도조합에서 국내 최초 양조포도주를 생산했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안양포도는 명물이었다.

 

엣기록인 1950년대 발간된  ‘금천지’에는 ‘구,안양유원지(현,안양예술공원)일원에 큰 포도밭들이 늘어져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유원지일대에 안양포도가 명물로 사랑받으며  성가를 누리며 성황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 6월 5일 매일신보(수필문학 Essay)에 기고된 채만식(蔡萬植), 안양 복거기(安養  卜居記) 중에는 “여름 한철이면 푸울(pool)과 포도와 수박으로 그밖에도 관악산(冠岳山) 하이킹의 초입 처로 두루두루 서울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그 안양”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1940년대에도 이미 안양포도는 서울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우리시 특산 명품임을 알 수  있다.

 

안양의 명물, 안양포도는 일제 강점기 ‘오끼’, ‘야스에’와 같은 일본 영농인들이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다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안양포도가 첫걸음을 내 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로 듣는  안양근대사 (안양학자료집 제6권, 성결대안양학연구소 2006, 발행일 2006.12.31. 편집인 문원식 성결대교수)’를 살펴보면 대 부농  ‘오끼’는 안양 2동지역에서 선진농법을 도입 안양 최초로 포도를 재배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야스에’농장은 안양중앙시장 뒤 4동 파출소 인근에  있던 것으로 안양원로들은 증언하고 있다. 

 

고인이 되신  고,변원신 선생(1933~2015, 前안양읍 안양3리 이장)은 생전에 “일제 때 안양역세권을 중심으로 다수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농장과 회사가 운영됐는데 ‘오끼’라는 일본인이 안양 최초로 포도를 재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평촌지구에서 포도농사를 지은 최갑환(1924년생,  안양초교 7회졸업)선생 및 안양의 원로 김진행(안양초교 2회졸업) 선생은 당시에는 비료가 없어 인분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안양시내 포도밭 주변에는 인분을모아 삭히는 웅덩이들이 곳곳에 있었으며 금성방직, 태평방직 등 대규모 회사들의 인분을 처리했다

 

안양의 포도밭은 한때 892㏊(27만평)에 달할 정도로 그 생산량이 많았다. 안양 포도가 맛있는 이유는 안양이 분지로 관악산과 수리산, 삼성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이 적고 일교차가 큰 기후에다 석회암층 알카리성 토양이 최적의 재배 조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안양포도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같은 품종의 포도보다 알이 굵고, 당도가 높은 비결중 하나는 ‘포도 알 솎기’에 있다고 한다. 자연적인 포도송이는 120알 정도의 포도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만, 튼실한 60알 정도만 남기고 ‘알 솎기’를 해서 햇볕을 골고루 받게 하여 포도 알을 굵고, 단맛을 강하게 한다는데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실제 포도를 재배한지 세월이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생산되는 안양포도는 당도가 매우 높아 '캠벨'의 경우 보통 포도의 당도가 15~16도인데 비해 안양포도는 19도까지 나올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해 고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초 안양시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의뢰하여 재배농가의 토양과 수질, 당도 측정 등 까다로운 검사를 실시한 결과 '품질인증'을 받을 정도로 안양포도는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우수 품종들이다.

 

하지만 80년대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안양포도가 점차 자취를 감추자 안양시는 1995년 '안양포도'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품질인증과 고유의 디자인을 넣은 포도 박스 등을 지원했으나 안양 도심은 물론 변두리까지 급격한 도시화로 포도를 재배할 땅이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말았다.

 

안양 하면 포도가 연상될 정도로 성가를 누리며, 당시 손꼽히는  포도 주산지였지만 이제는 기성세대도 아련한 기억속에서 흐릿할 정도로 잊혀져가고 있으며, 안양시민 대다수가  안양포도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래도 안양포도에 대한 추억을 간직이라도 하듯 안양시는 시 홈페이지에 '안양포도'를  안양명물로 소개하고, 시의 상징 마스코트로 ‘포동이를 아직 사용중이고, (사)한국미술협회 안양지부에서는 ‘포도미술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안양시 호계3동에는 옛 자연마을 ‘포도원’ 지명을 사용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