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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3]1980-90년대 그림사랑 동우회 '우리그림'

안양똑딱이 2024. 1. 13. 17:08
1992년 6월 26-30일 안양문예회관에서 열렸던 우리들의 땅 3번째 작품전 리플렛에 실렸던 우리그림-우리들의 땅 회원들의 모습
 
1980년대 격동하는 정세 속, 그 어느 지역보다 뜨거웠던 지역문화운동이 벌어졌던 곳이 바로 안양(안양, 군포, 의왕)이다. 그림사랑동호회 ‘우리그림’은 '신바람 나는 그림', '함께 누리는 그림', '참삶을 지향하는 그림'을 슬로건으로 지역문화운동의 전성기를 이끌며 시민과 함께 미술의 대중화를 선도한 지역 미술문화 소집단이었다.
1980-90년대 경기 안양에는 우리그림(걸개그림,판화), 민요연구회(굿.민요.풍물), 안양문화운동연합(문화), 휘모리(사물), 안양독서회(문화) 등 다양한 모임과 동아리들이 결성돼 활동을 펼치는 등 그야말로 지역 문화운동의 전성기였다. 
당시 안양을 중심으로 교류해 온 그림 작가들은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삶과 어우러진 미술문화를 위해 1986년 당시 안양근로자회관에서 미술교실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들과 함께 한 것을 계기로 민중미술운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1987년 12월 그림사랑 동우회-우리그림(초대회장 홍대봉 스님, 사무국장 박찬응)을 창립해 1988년부터 2000년까지 활동하면서 시민미술학교를 운영하고 각종행사에 걸개그림과 만장 등을 제작하고 매년 ‘우리들의 땅展’ 기획전시회를 여는 등 대중활동에 적극 나서면서 지역사회는 물론 수도권 일대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활동을 펼쳤다.
그 과정 속에서 <구름가족이야기>라는 그림책이 탄생되었다. ‘구름가족이야기’ 판권란을 보면 ‘옮긴이/정유정, 진경희, 권윤덕, 그린이/고은아, 유미선, 정승각, 권윤덕, 윤순종, 황용훈, 권애숙 만든곳/ 우리그림’ 으로 인쇄되어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그리고, 목판를 파고,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 손으로 제본하는 전과정을 공동작업으로 100권의 책을 만들어 냈다. <구름가족이야기>는 생활속에서 배우고 생활 속으로 깊이 천착하려는 공동의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1989년에는 보다 전문적이고 전업적인 작업에 몰두하려는 지역작가들의 의지로 ‘안양지역 젊은 미술가 모임-우리들의 땅’을 결성하였다. 이때 대중활동으로 소진되었던 기량 연마 활동으로 드로잉 작업을 비롯 탱화에 일가견이 높은 관악산 불성사 주지스님을 모시고 태화 모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2000년 10월 3일, 안양지역 미술운동사에 기록될 ‘우리들의 땅’ 동인이 그 1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해체된다. 예술을 사회를 변혁해 나가는 강력한 무기로 보던 미술인들의 동인이었던 우리들의 땅은 한시대의 막을 내린 것이다.
회원중 한명으로 전시회 기획자였던 박찬응(전 스톤앤워터 관장) 작가는 당시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10회 전시회를 끝으로 우리들의 땅 전시를 마감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발전적 해체니 새로운 모색이니 하는 토를 달지 않아도 의미있고 발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들의 땅이라는 창립초기의 화두와 현재의 다변화된 작업형태간의 정체성에 대해 동인들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논의했다"며 "주변에서는 고별·해체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아쉽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제 10년의 자기 역할을 다하고 마무리할 정확한 시점을 골랐다" 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심정들 때문일까, 회원들은 전업작가로 사는 것과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 대중성과 전문성을 획득하는 문제등의 심도있는 논의 이후 창작그림책의 영역을 개척했다.

1994년 3월에 정승각의 <까막나라 삽살이>가 첫 출간되며, 연이어 권윤덕의 <만희네 집>이억배의 <솔이의 추석이야기>정유정의 <고사리손 요리책>이 1995년 11월에 동시 출간되었다. 이후 이들 네사람은 본격적이고 전업적인 그림책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당시 함께 교류하고 작업하던 김혜환, 김재홍, 양상용 등도 연이어 그림책을 출간하고 류충렬, 김시영 등이 그림책작업을 했는데 이처럼 특정지역, 특정시간 대에 그림책작가가 다수 배출되는 예는 드문 경우다.특히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에 만들어진 ‘에스파스 앙팡 재단’에서 2년마다 전세계 어린이대상 책들 중 단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상을 주는데, 지난 2004년 김재홍이 그린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이 ‘2004 에스파스 앙팡상’을 수상해 국제적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004년 1월 한달간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에서 열린 "창작원화전, 그림책에서 소리난다"전을 통해 그림책으로 관객들과 만났으며 지난 2009년에는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경기지회 주최로 12월20일부터 27일까지 안양예술공원 내 알바로시자홀에서 열린 2009 경기통일미술전 ‘Space- DMZ’ 전시회를 통해 안양시민과 만나기도 했다.
 
아래 덧붙여진 자료들은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에서 활동한 이억배 작가가 수집해 보관해왔던 기록물로 지난 2019년,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소개됐으며 현재는 경기도 메모리에 저장돼 있다.
 
<인천일보> 기사 
[이제는 볼 수 있다] 2. 우리그림
승인 2019.11.26 00:05
수정 2019.11.25 19:14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그림사랑 동우회 우리그림(이하 우리그림)'19876월 항쟁의 결과물의 하나로 같은 해 124일 창립된 미술 소집단이다. 본격적인 지역 미술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그림은 '안양독서회', '민요연구회'와 아울러 지역 예술문화를 이끄는 대중 조직의 역할을 했다. 이는 소집단 운동에서 대중 조직으로 공개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을 알리는 동시에 안양, 군포, 의왕 지역문예운동이 대중의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의 표명이었다.

 

우리그림은 홍대봉, 홍선웅, 박경환, 박찬응, 이억배, 주완수, 정승각, 권윤덕, 정유정, 권애숙, 김한일, 정도용 등이 참여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시민미술학교를 운영하고 전시를 개최하거나 공동걸개그림, 벽화, 이야기 그림책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들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안양 그린힐 섬유봉제공장의 화재로 여성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그린힐 노동참사 여성 노동자 22인 영정도'를 제작하고, 안양전자 위장 이전 투쟁에 쓰일 걸개그림을 그리며 안양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우리그림의 활동은 1987년 이후 달라진 문예운동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생활 속에서 사회운동과 문예운동을 결합하고자 했던 당시의 문제의식들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미술학교의 운영과 지역미술신문의 발행을 통해 우리그림의 활동은 구체화됐다. 1988년부터 시민미술학교가 시작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문화운동을 펼쳤고 같은 해 창간된 '우리그림' 지역 미술신문 발행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예활동의 성과들을 공유해 나갔다.

 

'신바람 나는 그림', '함께 누리는 그림', '참삶을 지향하는 그림'의 슬로건을 내건 우리그림의 주요 활동으로는 정승각의 어린이 벽화활동, 노동자 미술패 '까막고무신'의 우리들의 이야기 공동걸개그림 제작 등이 있다. 지역미술운동과 결합한 창작 그림책 운동도 눈에 띄는 활동이었다.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 정승각, 박찬응 등이 주축이 된 창작 그림책 운동은 우리그림 활동 당시 만들어진 공동창작 그림책 '구름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 그림책인 구름가족 이야기는 제작의 전 과정을 시민들과 공동으로 작업해 100권의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구름가족 이야기는 지역미술문화를 일궈낸 뜻깊은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

 

연대기

 

창립연도: 1987

창립회원: 권윤덕, 박찬응, 이억배, 정유정

 

1988. 1. 소식지 '우리그림' 창간

1988. 2. 1회 안양시민미술학교

1988. 3. 안양 그린힐 섬유봉제공장 화재사건 영정도 제작

1989. 5. 소식지 '우리그림' 7호 발행

1989. 7. 신바람 나는 그림 졸업 전시회

 

선언서

 

우리의 문화란 무엇이고, 더욱이 우리그림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의 문화란 우리 삶의 모든 지혜가 집약되어 살아 움직이는 정신노동의 산물로, 대중이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다같이 즐기는 우리 삶의 활력소인 것이다. 또한 그림은 대중의 삶 속에서 대중의 바람과 염원을 그려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실제적으로 그것이 대중의 삶을 변화, 발전시켜 낼 수 있도록 종사하는 생산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중략) 우리는 외세문화·상업적 퇴폐 향락적 대중문화를 거부한다. 우리는 그림이 더 이상 소수 특권층의 정신적 전유물이 아니며, 더 이상 대중을 구경꾼으로 방치하기를 거부한다. 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안양에서 안양시민 스스로 자신의 삶, 염원과 바람을 표현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미술 문화를 꽃피우고자 한다.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 세력의 문화적 침투에 대항해 당당히 우리 것을 내세우고 올바른 민족 문화 풍토를 건설하고자 한다.

 

 

[시대 고발자_우리그림 박찬응 인터뷰]

"우리그림, 민주주의 염원한 시민들 욕구 담아내"

 

박찬응 작가가 1980년대 안양지역에서 활동했던 '그림사랑 동우회 우리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시민들과 함께 그림책 '구름가족 이야기' 만들어 "노랑머리 주인공 대신 우리식 그림 담긴 책 출간"

 

"기록되고 기억돼야 합니다.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투쟁들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1980년대 미술운동의 주역에서 군포시민들의 일꾼이 된 박찬응 군포시 그림책박물관공원추진단장은 지난 21일 여전히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시민의식의 고양과 미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활동한 그림사랑 동우회 우리그림(이하 우리그림)의 창립 멤버였던 박 단장은 잘 만들어진 그림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박 단장은 담담하게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억눌렸던 욕구들이 6월 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그것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죠. 그것이 우리그림이었고 이때 세워진 시민미술학교가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시민들의 타오르던 욕구들을 담아냈죠.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갖고 시민미술학교를 찾았습니다."

 

우리그림이 소집단 활동을 통해 기대한 것은 미술이라는 문화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보다 시민들과 가까운 문화가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시민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림이 역할하길 기대했다. 창립 이후 우리그림의 가장 큰 업적은 시민들과 작가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낸 그림책, '구름가족 이야기'가 탄생한 것에 있다.

 

"구름가족 이야기는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공동 창작물로 만들어 낸 작은 성과물이었죠. 판화작업으로 만들어진 이 그림책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구름가족의 행동에서처럼 우리 시민사회가 건강한 미술을 하길 바랐던 '우리그림'의 뜻이 반영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그림의 활동은 그리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1989년 안양문화운동연합이 조직되면서 우리그림은 문화운동연합으로 통합됐고 시민미술학교도 여성미술학교로 전환하게 됐다. 이때 미술운동의 조직운동에 대한 피로감과 작품 활동에 대한 갈증으로 만들어진 젊은 미술가그룹 '우리들의 땅'이 들어선다.

 

"온 힘을 쏟았던 결과는 허탈했죠. 민주정부를 세우고자 했던 우리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겐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로서의 갈증을 충족시켜 줄 또 하나의 그릇이 필요했죠. 1년에 한 번씩은 전시를 열자는 취지로 결성한 그룹이 바로 '우리들의 땅'입니다."

 

전문 미술인 모임인 '우리들의 땅'의 일부 회원들은 대중 활동으로 소진됐던 몸을 추스르며 기량 연마를 함께했다. 드로잉과 탱화 모사가 주요 작업으로 진행됐고, 전업작가로 사는 것과 생활을 영위하는 문제, 대중성과 전문성을 획득하는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며 창작 그림책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 작가들이 있다. 정승각,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 김재홍으로 이어지며 창작 그림책의 전성기를 만들어 냈다.

 

"당시만 해도 서점에 놓인 그림책들에는 노랑머리를 한 주인공이 등장한다거나 서구적인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책만을 찾아볼 수 있었죠. 우리들의 땅에서는 토종 그림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들을 했고 탱화와 불화, 민화가 진정한 우리 그림이란 판단에 구성원들은 각 기법을 배워나갔습니다. 마침내 서점에는 우리 그림으로 그려진 우리 그림책이 놓이게 됐죠.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그림으로 채워진 오롯한 우리 그림책을 보여주게 되는 처음 순간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