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자료

[19991127]서울 가려면 과천에서부터 긴다(PDF파일)

안양똑딱이 2023. 10. 16. 21:27

서울가려면과천부터긴다(1999).pdf
7.99MB

 

서울 가려면 과천에서부터 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천에 얽힌 옛이야기인데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조선시대 어느 임금 때에 서울에서 큰 벼술을 하던 안락공이란 사람이 벼슬자리에 물러나 앉으며 과천에서 살게 되었어. 안락공은 벼슬에서 물러났어도 거드름을 피우며 다녔대. 과천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 가는 길목이라 오고 가는 길손이 많았어. 남태령만 넘으면 서울이기 때문에 어느 고을보다 길손들이 붐볐지. 안락공은 많은 길손들 중에서도 과거를 보러 가거나, 벼슬을 얻을까 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인사를 안 하면 못 지나가게 했어. 길손들은 벼슬아치들 눈밖에 벗어나면 좋을 게 없거든. 그러니 안락공을 찾아 인사를 했지. 길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서울로 오려는 사람들에게 과천을 지날 때 안락공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혼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어." 안락공의 별난 행동 때문에 '서울 가려면 과천에서부터 긴다'는 속담이 생긴 걸까요?

향토문화자료4

과천네 얽힌 옛이야기

서울가려면 과천에서부터 긴다

과천문화원 발행

엮은이: 박정숙

편잡: 과천향토사연구회

발행: 1999년 11월 27일

조선시대 삼남인 충청, 전라, 경상에서 서울인 도성한양으로 가기위해선 천안, 수원을 거쳐 지나야 했고 과천을 지나야 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면 어디나 텃새가 있기 마련!

같은 종 6품 벼슬이라도 시골벽지의 현감과 서울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한 과천 현감은 벌써 그 격이 다르다.

한마디로 과천현감에게 잘못보여 좋을 게 없다. 그만큼 과천 현감은 권력을 농단할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울 가는 촌놈 과천부터 긴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설화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조선시대 서울에서 큰 벼슬을 하던 안락공이란 사람이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과천에서 살게 되었다. 안락공은 많은 길손 중에서도 과거를 보러 가거나 벼슬을 얻을까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이 인사를 하지 않으면 못 지나가게 하였다. “나를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무례한 놈이라고 왕에게 보고하고 말겠다.”고 하면서. 길손들은 안락공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서울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과천을 지날 때 안락공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혼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길손들이 인사를 하려고 지체하니 자연 과천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여관 겸 밥집인 술막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 과천 현감 민치록(고종비인 명성황후의 아버지)도 있다.

민치록보다 더 놓은 관찰사도 인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늦게 인사 받으러 오면

오늘 몸이 안 좋아...”

고로 과천에 주막 장사들 그들이 묵고 먹는 것으로 붐빔. 속담에 별 힘도 없는 사람이 권세 부리면

현감이면 다 과천 현감이냐라는 말.

고로 현청들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돈을 거두기도 했다고...

이상 두 가지 설화로 보면, 과천은 옛날부터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주요 길목이었고, 금의환향하는 길목이었으며, 정조가 능행을 나서던 효행의 길목이었다. 이몽룡이 이 길을 지나갔음에 사랑의 길목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자연히 지나가는 사람을 좀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함으로써 그들의 지출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