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30401]천주고 수원교구 안양 호계동성당

안양똑딱이 2023. 4. 3. 13:33

2023.04.01/ #도시기록 #안양 #호계동성당/ 안양기억찾기탐사대 2023년 첫 탐사인 211차 탐사날에 철거중인 LG연구소와 호계동지역을 돌아보면서 들리다.

안양 호계동지역은 교우촌이 있던 곳이다. 당시 행정구역상 경기도 시흥군 남면 금정리에 위치한 교우촌의 신자 수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4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1954년 안양본당(현 중앙본당)이 설립되면서 본당의 모체가 되는 군포공소가 금정리의 교우촌에 자리하게 됐다. 당시 공소에는 공소 강당이 따로 없었다. 이에 1971년 4월 당리, 금정리, 안금정리, 벌터, 호계동 공소신자들이 힘을 모아 금정리 206번지에 합동 강당을 세워 공소 강당으로 사용했다. 당시 4개 공소의 신자 수는 800여 명이었다.

공소 신자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당 승격을 준비해왔다. 197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호계동과 군포 지역에 공업단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교구는 본당 지역에 신자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1975년 11월 24일 군포본당(현 호계동본당)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군포지구, 의왕·고천지구, 호계지구, 청계지구를 관할하는 본당의 총 신자 수는 1345명이었다. 공소 강당으로 쓰던 건물은 있었지만 신자 수에 비해 협소한 관계로, 본당 신자들은 교구가 매입해 놓은 현 위치에 1977년 성당을 세웠다. 성당부지는 오솔길 외에는 통행로가 없던 야산이었다. 신자들은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횃불을 밝혀 산중턱을 깎고, 벽돌을 직접 찍어내면서 성당을 완공했다.

1979년에는 본당 명칭을 군포본당에서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호계동본당으로 변경했다. 본당은 인구증가와 더불어 전교활동에 박차를 가해 빠른 교세성장을 이뤘고, 4개의 본당을 분당시켰다. 1984년에는 군포본당을, 1987년에는 포일본당을, 1995년에는 평촌본당을, 2001년에는 오전동본당을 분리시켰지만, 현재도 4669명의 신자들이 본당 공동체를 이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자 수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1998년에는 지금의 성당을 새로 지어 봉헌했다. 본당은 사회 복음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앞장 섰다. 교구 교정사목위원회가 신설되기 전까지 본당 관할의 안양교도소를 방문해 미사와 교리를 진행했고, 지역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알뜰시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양평본당 곡수공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농산물 직거래를 실시, 큰 호응을 얻었다. 공단 지역이라는 특성에 따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노동사목에도 힘썼다. 특히 청년층인 근로자들을 위해 1980년대에는 ‘젊은이의 교실’을 운영하고, 현재도 청소년사목에 큰 관심을 기울여 안양1지구의 청소년활성화본당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본당 신심단체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본당 레지오 마리애 ‘로사리오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1971년 창립돼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본당 연령회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일 아침 성당에서 연도를 바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신문에서> 2016-07-10 [제3002호,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