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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6]안양에 있는 보물 제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똑딱이 2026. 3. 27. 18:52

 

2026.03.27/ #문화재 #국가유산 #당간지주 #증초사지 #안양예술공원/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높이는 3.64m, 두 개의 돌기둥의 동서로 서있으며 양 지주 간격은 85이다. 이곳을 중초사터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기록에 따른 것이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지주 사이와 양쪽 지주의 바깥에 하나씩 총 3장을 깔아서 바닥돌로 삼고 있는데, 이 역시도 원래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는 받침은 지주 사이에 돌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지름 36의 둥그런 구멍을 뚫어서 마련하였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으며,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이 있어 시대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멍을 각각 지주의 상··하 세 곳에 뚫었다. 동쪽 지주의 윗부분이 깨어져 있는데, 8·15해방 후 인근의 석수(石手)들이 석재로 반출하기 위한 자취라고 전해진다.

각 부분에 섬세하게 조각을 해두지는 않았어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123자로 해서체로 쓰여졌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826) 86일에 돌을 골라서 8272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또한 속한문(俗漢文)을 이용해 고대 국어사의 좋은 연구자료가 되기도 한다.

 

寶曆二年歲次丙午八月朔六辛丑日中初寺東方僧岳 一石分二得同月廿八日二徒作初奄九月一日此處至丁未年 二月卅日了成之節州統皇龍寺恒昌和上上和上 眞行法師貞坐義說法師上坐年嵩法師史師二 妙凡法師則永法師典都唯乃二昌樂法師法智法師徒上二智生法師眞方法師作上秀南法師

 

[해석문]

보력(寶曆) 2년(826) 세차 丙午년 8월 초엿새 신축일에 중초사(中初寺)

동쪽의 승악(僧岳)에서 돌 하나가 갈라져 둘이 되었다.

같은 달 28일에 두 무리가 일을 시작하였고, 9월 1일에 이에 이르렀으며,

丁未년 2월 30일에 모두 마쳤다.

절주통(節州統)은 황룡사(皇龍寺)의 항창(恒昌)화상이다.

상화상(上和上)은 진행(眞行)법사이며, 정좌(貞坐)는 의열(義說)법사이다.

상좌(上坐)는 연숭(年嵩)법사이며 사사(史師)는 둘인데 묘범(妙凡)법사와 칙영(則永)법사이다. 전도유내(典都唯乃)는 둘인데 창악(昌樂)법사와 법지(法智)법사이다.

도상(徒上)은 둘인데 지생(智生)법사와 진방(眞方)법사이다.

작상(作上)은 수남(秀南)법사이다.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원위치에 동서로 마주 서있다.두 지주 중 동쪽지주가 심하게 기울어져 2000년에 보수 공사가 실시되어 현재는 완연한 모습을 보인다.두 지주는 지면보다 약간 높게 단을 만들고 그 중심부에 세웠다.보수 당시 하부를 조사한 결과 대소형의 잡석과 흙을 혼합하여 견고하고 단단하게 기초를 다진 것으로 밝혀졌다.그리고 지주부 하부가 상당한 깊이까지 매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이러한 조사 결과는 다른 당간지주의 시공 수법을 아는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였다.즉,당간지주를 세움에 있어서 모든 당간지주가 정연한 기단부를 마련한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 지부 하부를 깊게 매몰하고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 돌과 흙을 활용하여 기초를 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특히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에 따라 기단부를 어떤 식으로 마련하였는지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두 지주를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간대석과 같은 높이로 지주 주변에 판석형(板石形) 석재를 여러 장 결구하였다.간대석은 긴 사각형 돌을 남북으로 놓았는데,상면에 길다란 정자국이 나있고 그 가운데에 원좌와 원공(지름 34cm,깊이 15cm)을 시공하였다.지주의 각 면은 전체적으로 거칠게 다듬었으며,높이에 비하여 너비와 폭이 작아 세장한 인상을 주고 있다.정상부는 완만한 경사로 치석되었다.그리고 외면 상부를 1단 낮게 깎아 당시 지주부의 장식 수법이 경주 지역에 건립된 당간지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특히 서쪽지주 외면의 1단 낮은 바로 아래쪽에는 명문(銘文)을 음각하였다

명문은 6행 총 123자로 해서체이며 글자 크기는 6~7cm이다.명문에 의하면 이곳이 중초사임과 동시에 당간지주가 826(흥덕왕 1) 8월 6일 채석하여 827년 2월 30일에 완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건립 책임자로 절주통 황룡사 항창화상(節州統 皇龍寺 恒昌和尙)을 비롯하여 10명의 승려가 후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이와 같이 중초사가 9세기 초반경에 널리 알려진 사찰이었으며 중앙에 있는 사찰과도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명문은 당간지주의 절대연대와 두 지주를 건립하는데 소요된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산 할 수 있게 한다

당간을 고정시켰던 간은 지주의 내면 꼭대기에 긴 사각형 간구를 마련하고 간공(지름 14cm)은 상하에 2개 시공하여 끼우도록 하였다.간공은 원형으로 관통되었다

지주부는 전체적으로 정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어 정교하게 다듬지는 않았다.그리고 지주의 외관이 세장(細長)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런데 간구와 간공을 마련한 수법,외면 상부를 1단 낮게 한 점 등은 통일신라시대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건립된 많은 당간지주에서 볼 수 있다.이것은 8세기에서 9세기까지 건립된 당간지주들의 일반적인 장식 수법이었다.특히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치석과 장식 수법 등에서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와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한편 당간지주는 하부 조사 결과 동쪽과 서쪽지주의 토층 일부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기울어진 동쪽지주의 토층에서만 백자편이 출토되어 조선시대에 보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한편 중초사지 당간지주 있는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 일대 ‘안양사지(安養寺址)’가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경기도 기념물 제231호) 및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상: 안양사지
소 재 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103번길 4
지정현황
- 국가유산구역(2필지, 16,111m2)
- 국가유산보호구역(24필지, 5,552m2)
안양예술공원입구 자리했던 안양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승려 능정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고려대각국사 의천의 방문 기록, 고려 말 전탑 중수 관련 기록 등 사찰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현재 안양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중초사지 삼층석탑을 비롯 다양한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안양박물관/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는 이를 보존⋅연구하고 국가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자료] '고적급유물등록대장' 등재 안양 중초사지 일대 유물 목록

조선총독부 학무국 고적조사과, <(대정13 4월 현재) 고적급유물등록대장초록> (조선총독부, 1924)

 

[아래의 유물목록은 1916년 제정 '고적급유물보존규칙(고적급유물보존규칙)'에 따라 등록된 고적 및 유물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나중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보물지정이 이뤄질 때에도 기초자료로 그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아래의 목록을 보면, 지금은 보물지정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안양석수동마애종'도 한때나마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이 흥미롭다]

  

등록번호 제6호 중초사지당간지주(中初寺址幢竿支柱)

종류 및 형상대소 : 화강석의 당간지주로 높이 12,  1 18, 1 13촌으로 기반 높이 1.

소재지 : 경기도 시흥군 동면 안양리 석수동(京畿道 始興郡 東面 安養里 石水洞)

소유자 또는 관리자 : 국유

유래전설 등 : 신라 흥덕왕 2 (정미)에 세웠다.

관리보존의 방법 : 철조책(鐵條柵)을 설치하다.

비고 : 한쪽 기둥에 기()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