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예총 30주년 기념 특별좌담회]
원로에게 듣는 안양예총 30년
어느덧 안양예총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이번 특별좌담회는 『안양예총 30년사』 편찬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특별좌담회를 통해 그동안 지역 문화예술의 현장 곳곳에서 안양예총과 함께했던 원로들을 통해 안양예총이 걸어왔던 30년의 발자취를 꼼꼼히 조명해 보고 앞으로 안양예총이 지역 문화예술을 위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원로들의 고언들을 모아 안양예총 30년사에 담아보고자 한다.
◦ 일 정 : 2020년 9월 24일(목) 오후3시
◦ 장 소 : 안양예총 회의실
◦ 대 담 자 : 이재옥 안양예총 회장(진행), 박형만 안양예총 사무국장(사회)
최계식 안양문협 고문, 오용길 안양미협 고문, 안희진 안양국악협회 고문,
천진철 안양예총 고문, 이봉운 안양연극협회 초대 회장, 장지섭 집필위원장
박형만 : 안양예총 사무국장 박형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안양예총 30년사 발간 준비에 맞춰 각 협회 원로님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하게 되어서 먼저 감사 인사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소개부터 해드리겠습니다. 문인협회 최계식 선생님 참석해주셨습니다. 미술협회 오용길 선생님 참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연극협회 이봉운 선생님 참석하셨습니다. 안양예총 부회장을 역임하셨던 안희진 선생님 참석해주셨습니다. 이번 30년사 책자 발간에 있어서 집필위원장을 맡으신 문인협회 장지섭 부회장님 참석하셨습니다. 끝으로 이재옥 안양예총 회장님 참석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인사말과 함께 좌담회의 진행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이재옥 : 안녕하세요 안양예총 이재옥입니다. 오늘 귀한 걸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 안양예총 창립 30주년을 맞아 책자를 발간하자고 계획을 세운 것은 작년부터였습니다. 막상 진행하다 보니 마음먹은 것처럼 잘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안양예총의 탄생과 선배님들이 활동하셨을 때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안양예총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합니다.
먼저 자료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집필위원장님이 안양예총선배님들에 대한 남다르게 느낀 소감이 있으셨다했는데 먼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지섭 : 일단 30년사 준비를 하면서 너무 늦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초기부터 자료들이 어느 정도 보존 되어 있어서 조금만 일찍 신경을 썼더라면 그 흔적을 더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협회별로 자료를 수집하면서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이 너무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활동 여건상 열악한 점이 많으셨을 텐데, 정말 열정을 다해 활동하셨구나 하는 감동이 느껴졌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자료를 충분히 수집해서 꼼꼼하게 예총사에 담아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는 아쉬움 커졌어요. 아직도 수집 중입니다. 착실하게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담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옥 : 안양 예술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안양 예총 단체의 설립은 1990년입니다. 실질적으로 안양예총 협회별 활동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안양예총이 탄생하기 전에 오늘 여기 계시는 원로 선배님들께서 활동해 오신 업적들 때문에 협회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협회 창립 배경이나, 활동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일들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미술협회의 오용길 교수님께서 미협 초창기, 예총의 활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용길 : 저는 뭐 사실 예총의 활동에 대해선 깊숙하게 관련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미술인으로 활동 할 때가 1976년 인데 그땐 저도 젊었어요. 그땐 예술인들이 모일 일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교류가 자기 전문분야끼리만 되다보니 타 분야와는 밀접하지 못했지요.
그때만 해도 안양의 미술환경이라고는 아주 열악했고 내가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세우고 일을 해서 능력이 생긴다면 안양의 미술활동을 하겠다는 이런 생각이 항상 있었지요. 나름대로는 예고졸업 후 서울미대에서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국전에서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것은 작가의 길을 걷는데 대단한 등용문이었어요. 그건 제가 대학교수로 갈 수 있었던 큰 배경이 되었죠.
안양에서 미술인들이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홍사영과 함께 미술인들을 찾아내게 됩니다. 당시 어르신들 글씨를 좀 쓰시는 서예가를 비롯한 미술인들에게 활동 권유를 해서 1976년 안양미협 활동이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1회 전시를 중앙시장의 본전다방에 작품을 걸고 시작을 했지요. 생각해보면 참 어수룩하고 초라한 모습인데 당시 삶이란 게 다 그랬어요. 모든 게 다 어려웠을 때니까요. 그땐 리플렛도 접는 식으로 해서 얼굴만 나와도 감사한 시기였고. 그래서 1회 리플렛이 흑백으로 나왔지만 감회가 남달랐어요. 미술의 경우는 그 당시에 수원, 인천, 부천, 안양까지 네 개 시의 작가들은 교류를 했습니다. 인천에서 전시를 한다하면 우르르 가서 축하해주고 서로 품앗이하고 그랬는데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고 자체 행사하기 바쁘니까 교류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안양예총이 창립 되었을 때는 홍사영 지부장이 활동할 때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재옥 : 감사드립니다. 지역의 미술에 대해 뭔가를 하셔야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하셨다고 하셨는데, 미협지부장 활동 외에도 안양에 전시 공간이 없었을 때 사비를 들여 안양미술관 운영으로 미술인들에게 전시공간을 배려해주신 것도 기억이 납니다. 또한 안양일요화가회에 지도교수로 활동 하시면서 주말마다 회원들과 동행하셨던 일들을 기록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제1회 안양미협전 말씀하셨는데 그때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당시 고등학교 은사님이셨던 김종호 선생님이 조각을 하셨는데 전시회 출품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그런 선배님들의 역할이 바탕이 되어서 미술협회가 오늘날까지 잘 운영되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연극협회 초대 회장님이신 이봉운 선생님께 극단을 만드셔서 활동하셨던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봉운 : 1970년도에 동아통신 경기도 본부장으로 안양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대학 다닐 때 동아일보에 시를 발표했는데, 그 시를 김대규씨가 굉장히 좋아해서 도대체 이봉운이란 사람이 누군가 만나고 싶어 해서 안양 와서 만났었어요. 만나고 나서 지역을 쭉 돌아보고하니 안양엔 아직 예술활동 자리가 안 잡힌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전 고등학교 때 연극을 했고,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했을 때가 58년도 14회인데, 연극영화과는 1기생으로 입학이 됐습니다.
김대규씨 보다 내가 고등학교 1년 선배였어요. 사실 연극도 했었지만 실질적으론 문학 활동을 했기 때문에 문인협회의 실질적인 회원이 됐어야 했는데 안양 연극이 불모지이고 하다보니까 극단80을 80년도 10월 11일 날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안양연극에서 활동했던 조동관이라는 친구가 생각나는데 한국촬영협회 회장님이 됐어요. 그 친구는 이미 70년도 말에 안양연극을 했다 해서 같이 합류해 활동하는데 안양에다가 소극장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해서 일 번가 철로길 옆에 객석 70 정도 되는 공간에 소극장을 만들었습니다. 연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수익이 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동안에 ‘극단80’이라는 이름으로 안양시에서 총체적으로 공연한 게 1995년 5월 20일을 마지막으로 횟수가 43회가 됩니다.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제자들이 남아서 안양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아까 오용길 교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홍사영씨가 그때 미술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었고 그전에도 저희가 모이면 김대규라고 하는 이름난 시인이 문인 쪽에 있었고 해서 특히 그 두 분야 미술하고 문학은 굉장히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이 있었지요. 연예협회, 사진협회, 무용협회 다들 활동하시고 그랬는데. 어쨌든 95년대에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나서는 저는 더 이상 연극은 하진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활동을 했다고 시에서 안양시민대상도 주었고, 경기도문학예술대상도 받게 되고 그랬습니다. 시작을 그렇게 해놓고 죽기 전까지도 마지막까지 후배, 제자들을 위해 연극분야에 대해서 꽃피우는 안양이 되기 위해 계속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부분에 대해선 지금도 후배들에게 미안한 생각입니다. 1979년대에 ‘각설이’라는 작품을 써서 부산에서 공연할 때는 극장으로 경찰들이 와서 치우고 그랬어요. 전두환 대통령 때 저희 공연이 중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각설’이라는 작품은 수원에서도 많이 공연을 했고 지방에서도 지방극단에서 공연하고 그랬습니다.
이재옥 : 다음 안희진 선생님께 국악협회 초창기 활동과 예총이 창립했을 때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희진 : 안양은 국악 활동이 활발했어요. 똥골이라는 마을이 옛날에 있었는데 거기 넘어가면서부터 하씨 남사당패가 창난극을 했었고, 활동을 많이 했었죠. 역사에도 보면 안양의 날뫼농악이라는 자체도 워낙 가락이 좋아서 임금님이 연기를 하사할 정도로 실력들이 좋았었어요. 89년도에 이영복 회장님이 국악을 다시 살리자 해서 협회를 만들기 시작했죠. 90년도에 국악협회가 창립이 됐어요. 예총에 들어가면서 국악협회 활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죠. 93년도에 3년 임기를 마치신 이영복 회장님이 다른 분이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안덕기 회장님이 하시고 3기 4년째 하시고 2000년대 제가 받아서 2017년까지 한 거죠. 이석용 시장님 때 안양문예회관 야외공연을 지어놓고 활용을 안 하니까 시에서도 활성화 방안을 찾았고 국압협회에서 96년도에 활용을 하기 시작했어요. 국악이 굉장히 많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 입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공연을 했어요. 5월부터 10월까지 연25회 매주 금요일마다 국악 공연이 열렸던 거예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활용하겠습니다, 해서 시작한 거예요. 처음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식사대접을 분과 단원들에게 했어요. 그 뒤론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못하겠다. 진심으로 안 된다 했더니 시장님이 바로 450만원의 예산을 잡아주셨어요. 국악은 무용 10명, 20명 하니까, 한번 공연하면 100여 명 가까이 돼요. 450만원 가지고 100명씩 먹으면 밥값이 모자라요. 엄청 나오잖아요. 출연료도 못주는 상황이었어요. 그 많은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도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경기도 일대에서 전부 아는 사람 불러다가 공연을 하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25회 공연과 예술제 개막공연 등 년간 30회 공연을 하는데 정말 힘들었죠. 횟수를 처음에 25회로 줄이고, 10회로 줄이고, 3회로 하다가 지금은 한번만 하게 되었는데, 어찌되었든 그런 배경으로 국악이 굉장히 활성화 되었지요. 또 외국하고 문화 교류를 많이 했어요. 아프리카 몽골까지 갔어요. 그렇게 국악공연을 많이 했어요. 이봉운 선생님 말씀도 이해가 가요. 저희가 창극을 하다 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소품이 장난 아냐. 옛날 전통 소품을 가지고 하는데 어쩌다 만드는 곳 가면 가격도 어마어마해, 기술자도 없어, 그렇게 하나하나 무대 장식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는데 제가 1회 때 처음 했을 때 오천만 원 넘게 들어갔어요. 당시에 머리가 터졌잖아요. 진짜 그 정도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근데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마음이 참 아프죠. 그래서 어떤 분야든 예술하는 사람은 존경해요.
국악 공연을 하는데 지금도 정말 어려움이 많아요. 옛날 방식은 내 머릿속에만 있지 스타일을 또 바꿔야 돼요. 정말 내가 ‘안양 소리’를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고 돈도 많이 들었어요. 옛날 아저씨들이 노래 부르는 거 다 녹음하고 더빙하고 악보 만들어서 cd 본인 거 다 만들어주는데 예산이 다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근데 그런 걸 인정을 안 하잖아요. 출연하는 사람은 거의 공짜로 출연하는 셈이 더라구요. 연극하는 분들이 힘든 걸 그래서 알겠다는 거예요. 그런 게 참 아쉽다는 거예요.
처음에 시작할 땐 홍보하러 직접 돌아다니고 문예회관 팀장이나 이런 분들이 김치 몇 박스 갖다놓고 막걸리 갖다 놓고 추운 사람에게 한잔씩 돌리면서 10월까지 공연을 했던 거예요. 그것도 다 무료로 제공해줬지요. 당시에 조명, 음향 문예회관에서 다해주니까 음식 값만 받아서 한 거죠. 그렇게 하면서 국악이라는 게 지금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현재까지 이어진 거죠. 2000년이 넘어가면서 요즈음 국악 가르치는 곳이 주민센터, 평생교육원 등 너무 많아요. 가사만 알면 다 배웠대요. 조금만 배우면 일반인들이 재능기부라고 공연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진정한 예술의 깊이를 전하지 못해요. 국악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 그래요. 연극, 사진, 미술이 되었든 모든 분야에 전문단체인 대우를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마추어 단체와의 차별 그런 부분이 정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재옥 : 감사합니다. 국악협회의 처음에 시작하셨을 때, 그리고 현실, 앞으로의 방향 제시까지 해주셨습니다. 안희진 전 회장님께서 운영하셨던 금요상설무대 그 당시에 저도 가봤었어요. 매주 금요일마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고. 안양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창극을 개발하시고 아직까지도 현역을 활발하게 하고 계신 입장이신데, 안양만의 문제라 생각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지자체에서는 아마추어의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해주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전문가들 설 무대가 없고 합니다. 과거 안양문화재단이 없었을 때는 경기문화재단에 신청해서 전문인들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게 했었는데 안양문화재단이 생기고 전문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전문예술단체로써 차별화된 예총이 되어야 한다는 그 점을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옥 : 다음은 최계식 선생님께서 과거의 안양예술인 활동이나 안양예총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계식 : 앞에서 말씀을 다 해주셨기 때문에 잘못하면 중언부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자리가 예총 30년사 편찬에 관한 각 지회별 얘기이고, 더 크게는 예총에 대한 이야기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세대를 아우르는 30년사, 이 30년사가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때라 생각해요.
이 기록물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예요. 이 기록물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기록의 의미가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록을 남기는 이유에는 우리가 앞으로 3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총이라고 하는 특색, 색채가 두드러지는 예술 활동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루어졌냐는 것을 저는 두 가지 측면으로 보고 싶어요. 협회 자체가 전체 특성을 아울러서 종합하는 행사를 하는 기록물이 있고, 예술인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두 부문 중 비중이 어느 것이 클 것 같습니까? 저는 사실상 개인 기록이 더 앞선다고 봐야 해요.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여기 목차에서 보면 협회 자체가 지금까지 30년간 해온 실적을 기록에 남기는 협회사가 있고, 뒤에 보면 안양을 빛낸 예술인 조명, 작고 예술인 조명이라고 하는 부분이 20페이지라고 되어있는데, 이건 상당히 빈약한 겁니다. 그러나 지역사회를 빛낸 문화예술인 조명해서 이게 문화라는 의미가 무엇으로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중심 의미에는 예술이 있는 것이지 문화는 포괄하고 아우르는 의미거든요. 우리 예술인으로서의 자전적인 의미에서는 예술 자체를 앞서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지 얼버무려선 안 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 여섯 번째 목차를 보면 역할 및 과제가 예를 들어서 나왔는데, 30년 전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를 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했냐면, 그 역사가 앞으로의 역사에 무슨 비전을 주느냐 뭘 제시하느냐 그 가치가 30년사의 가치예요. 역사를 정리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30년간 해온 일들이 앞으로의 30년사에 무슨 영향을 끼칠 것인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양을 빛낸 예술인 조명의 비중이 높이 다뤄져야 할 것 같고, 해가 거듭 될수록 이게 진짜 예술인들이 뭔가 했구나 하는 게 발견되고 발전하는 모습이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각 지부도 그렇습니다. 전에 했던 행사 그 행사 내용을 다시 바꿔서 똑같은 식으로 행하는 모습은 아니라 생각해요. 조금씩 변화를 주고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이 뭐냐 시민들을 향해야 합니다. 그게 아직까지는 아쉽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특히 예총에서 안양을 빛낸 예술인을 조명할 때, 이 예술인들이 시민들에게 어떤 자랑스러운 존재로 보이게, 자긍심을 가지고 할 수 있게, 시민들의 삶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안양예술인이면 안양시민들의 삶을 높여야 하고, 얼마나 예술 활동이 시민들에게 참 호감이 가고 접근하기 좋은 그런 자리입니까. 그러한 거를 예총에서 어울려서 다시 앞으로도 30년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봉운 : 예총 역사의 30년사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예총 단체 소속 위주로 편찬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쉬운 점은 있어도 예총회원이 아니더라도 지역을 빛낸 숨은 예술인들이 많긴 하지만 그런 분들까지 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장지섭 : 예총으로만 보면 30년이긴 한데, 그 이상이 되는 협회가 있어서 수록을 하다 보니, 규정은 해놨지만 지면 할애 부분에 대한 애로사항이 있고요. 30년사 준비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예총과 각 협회의 역사를 정리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고요. 아쉬웠던 점은 저희 예총이 창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역사를 정리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에요.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10년사부터 60년사까지 10년 단위로 역사를 정리한 곳도 있어요. 그래서 이번 30년사 편찬을 통해 예총뿐만 아니라 소속된 협회의 자료를 꼼꼼히 수집하고 정리하여 최대한 수록하고, 우리가 책에 담을 수 있는 거는 한계가 있으니까 책에 담지 못한 자료들은 저희가 나중에 편찬 작업이 끝나고 나서 원로 예술인 아카이빙 작업도 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기회도 만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선 과거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으면, 그 다음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중한 자료들이 사라지거나, 작고하신 예술인들도 계시고 해서, 일단은 각 협회와 예총에 관련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해서 기록하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재옥 : 천진철 회장님께서 뒤늦게 합류해주셨는데요 회장님께서도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진철 : 오늘 반가운 분들, 선배님들도 계시고 너무 좋습니다. 특히 이봉운 선생님 오래간만에 뵙게 됐는데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 장지섭편찬위원장님이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예총 30년사에 관심 갖고 30년사 관련해서 많은 수고를 해줬다는 얘기부터 하고 싶습니다. 초창기엔 저보다는 이봉운 선생님이 더 많이 아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앞에서 다 하셨을 것 같고요.
저희 연예협회 같은 경우는 문인, 미술과 태동을 같이 했지만 연극보다 정식 창립 시기가 늦었습니다. 미디어가 발달되지 않아서 거의 직접 회원들이 움직였어요. 벽보도 풀통 들고 다니면서 직접 붙이곤 하면서 지역에 봉사해왔는데, 현재 와서 지역예술인들 대하는 것 보면 현실이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섭섭한 부분이 많죠. 안양 시민 대상 수상제도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양이 발전 된 데에는 큰 획을 그으신 분들이 조명이 되어야하고. 고생했던 부분들이 30년사를 통해 기술이 되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이 지역예술인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희 연예예술인 협회는 대중 예술에 속하다보니, 국민들 전체가 다 예술인이에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전문 예술인들이 더 좀 힘들어요. 이번 코로나 19 관련 되어서도 그렇고 무명가수들, 지역행사 그것도 없어요. 연주인들도 설 곳이 없고 전국노래자랑 아니면 가요무대 이런 데서 악단이나 볼 수 있는 정도고. 안양은 연주인들이 명맥을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어서 악단이 라이브로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어요.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고 저희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좋은 작품 만드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대중들이 즐겁고 활력을 얻을 수 있게 연예협회가 정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재옥 : 네 감사드립니다. 오늘 정말 어려운 시간들 내주셨습니다. 최계식 선생님 말씀해주신 대로 과거를 기록하는데서 멈추지 말고 앞으로도 내다봐야 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데 저희도 공감 하고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겪었던 예술가들의 배려가 지극히 적다는 느낍니다. 30년사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저희 스스로의 입지를 구축해야한다는 생각을 크게했습니다. 원로 예술인들에 대한 조명은 이번뿐만이 아니라 계속 되어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올해는 《안양예술제》를 통해 문인, 미술, 사진 협회 시각 쪽 분야 두 분씩 영상촬영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내년에는 공연 쪽 분과 영상을 만들어서 안양예술인 아카이빙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안양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저희가 풀어가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양시 문화예술 정책 입안자. 안양문화예술재단, 문화관광과 담당자가 모여서 지역문화 정체성에 기반한 예술정책에 대한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희 예총이라는 곳이 앞서 말씀해 주신대로 각자의 역할에서 시대의 변화를 가져와야한다는 것엔 저도 공감합니다. 저희 8개 단체가 예술단체로써 보여주는 예술제는 다른 단체와는 차별화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저희가 차근차근 풀어가려 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 안양예총 과거의 역사가 참 소중했고 지나온 과정에서 선배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자긍심도 다시 한번 크게 느끼게 됩니다. 30년사 마무리를 짓고 기념회를 할 때 선배님들을 다시 모시고,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형만 : 오늘 좌담회를 통해 나온 내용에 대해선 책자 발간에 소중한 자료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안양 ‘원로에게 듣는 안양예총 30년’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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