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탐사대 170차_병목안 책석장 철길 흔적과 안양9동 새마을
9월 28일(토) 오후 3시/ 집결_병목안삼거리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이하 안양탐사대)가 2019년 후반기 탐사를 재개하며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합니다.
2019년도 후반기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와 도심 골목 탐사를 통해 삶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기획탐사로 안양지역 대학캠퍼스 돌아보기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168차(2019.09.28)-안양8동 명학마을/도시재생-뉴딜사업지
169차(2019.10.05)-안양5동 냉천마을/재개발지역
170차(2019.10.12)-안양9동 후두미동과 안양3동 신안초교 일대/골목여행
171차(2019.10.19)-APAP7 맞이 예술공원 예술작품
172차(2019.10.26)-안양 원도심역사기행/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
173차(2019.11.01)-좋은집과 양명고일대/공원일몰 해제지역
174차(2019.11.08)-인덕원 및 관악고 주변/재개발
175차(2019.11.15)-대학탐방 1 성결대
176차(2019.11.22)-대학탐방 2 안양대
177차(2019.11.29)-대학탐방 3 연성대
178차(2019.12.06)-대학탐방 4 대림대
179차(2019.12.13)-대학탐방 5 경인교대
180차(2019.12.20)-대학탐방 6 계원예대
181차(2019.12.27)-2019년 탐사 마무리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3시 출발하는 170차 여정은 병목안채석장 철길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곳과 과거 새마을이라 불리우던 안양9동을 찾아갑니다. 이 동네는 정부가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지정했다가 15년만에 해제된이후 노후화된 주택들이 도시생활형 임대주택들로 바뀌면서 옛 마을의 흔적들이 사라져 왠지 삭막하고 낯선듯한 풍경으로 바뀌었지요.
새마을에 대한 이야기
새마을은 안양역에서 삼덕공원을 지나 담배촌과 창박골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농경지로서 처음에는 신부골(新富谷)로 불리워 오다가 1969년에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마을로 개칭되었지요.
1977년 안양 대홍수때는 산자락이 무너져 내리고, 수암천변의 주택들이 물살에 쉽쓸려 내려가면서 이곳에서만 수십여명의 주민들이 숨지는 아픔도 있었지요.
새마을 안쪽으로 서쪽 끝자락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1988년에 설립한 양지초등학교입니다.
자료에 의하면 시흥군 안양읍 당시 이곳에 안양공설운동장 설치 계획을 세웠다가 협소하다 하여 신안양리 신촌(현 석수동 럭키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안양 비산동에 새로 조성되어 이전되었지요.
참고로 안양9동은 지형적으로 병목안을 기점으로 서쪽지역을 새마을, 서남쪽 지역을 창박골, 남쪽지역을 담배촌이라 칭합니다. (예전에 3동이었는데 분동이 되면서 쪼개졌지요. 그래서 9동이 1~8동 다음에 있는 줄 알고 8동의 성결대 인근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찾아가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장내동, 명학동, 냉천동, 교하동, 시대동.... 등 옛지명이 그립네요)
병목안은 안양3동 프라자아파트 끝인 새마을교에서 담배촌과 창박골로 갈라지는 삼거리의 슈퍼까지의 지역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뒤띠미(後頭尾洞)라 칭했고,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과천군 하서면 후두미동으로 불리웠습니다.
병목안은 말 그대로 병모가지 안쪽같다는 뜻에서 생긴 말로 정확히 말하면, 양지 초등학교 입구 새마을교부터 시작되어 통통한 병 모양으로 뻗어 오르다가 좌로는 채석장(병목안시민공원)에서 우로는 창박골 입구 삼거리수퍼까지로 마을에 들어서면 골(谷)이 깊고 넓다고 하여 불리워져 왔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삼거리슈퍼 앞 삼거리를 병목안 삼거리라고 하고, 보신탕 집이 쭈욱 있는 수리산 계곳을 병목안 골짜기라고 하지만 사실 담배촌계곡이라 해야 맞습니다.)
안양 토박이 임부성씨 기억에 의햐면 병 목에 해당하는 새마을 입구에는 사람과 우마차와 도라꾸가 다니던 나무 다리가 있다가 나중에 시멘트다리로 발전했는데 그 방향이 지금의 외환은행 간이점포 방향이었고, 또 다른 다리는 채석장행 철교(철길)로 그 위에 콘크리트 복개가 되면서 차와 사람이 다니고 있는 것이지요.
담배촌은 창박골과 갈라지는 시민체육공원앞 삼거리수퍼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약 100여미터 가면 수리산 한증막이 있고 다시 10여미터 쯤 가면 오른쪽으로 돌아 다리가 나오는데 오른쪽 산에 '문둥바위"가 있던 이곳부터 최경환성인 성지와 공군부대 앞까지 이어지는 수리산 계곡을 말하지요.
안양 토박이 임부성씨는 예전에는 담배촌도 안골, 굴뚝골, 햇골, 송챙이골, 담배촌, 작은골, 큰골, 웃말 등으로 나뉘어 부를만큼 그 골이 아주 깊었다고 합니다.
담배촌이라 불리운 유래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 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崔京煥 , 1805.10.15-1839.9.12)을 비롯한 천주교인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인하여 1837년 7월 이곳에 정착 이주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담배를 경작했다고 하여 칭합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는 담배촌에서 재배한 담배를 일등품으로 칠만큼 품질이 우수했다고 하는데요. 예전에 담배촌 주민들은 담배 경작 외에 땔나무와 토종꿀을 채취해 이를 안산장(시흥시 수암동), 군포장(호계3동 구 군포), 안양장(안양1동 시 대동) 등에 팔아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6.25한국전젱 당시 담배촌에는 인민군의 본부가 주둔했을 만큼 수리산지역은 중공군, 북한군과 유엔군사이에서 엄청난 결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2010년 5월부터 육군 51보병사단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전쟁사]한국전쟁 수리산전투(1951.2.1-2)
한국전쟁 당시 수리산 전투는 서부전선의 미 제1군단이 1951년 1월 25일부터 재반격 작전을 전개하여 한강 남안으로 진출하고 있을 때, 미 제25사단 제35연대와 터키여단이 수원 서북방의 수리산을 공격하여 중공 제50군 예하의 제149사단을 격퇴하고 수리산으로 진출한 공격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미 제35연대와 터키여단은 미 제999포병대대와 미 제89전차대대의 지원하에 수리산을 양익 포위하여 중공 제149사단의 거점을 공격한 끝에 완강히 저항하는 증강된 연대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목표를 탈취하였으며, 목표 탈취 직후 개시된 중공군의 역습도 물리쳤다.
이 전투의 결과로, 중공군은 수원 지역에서 물러나 안양 북방으로 후퇴하게 되었고, 유엔군은 한강선으로의 진격을 계속하게 되었다.
병목안채석장 철길 이야기
일제 강점기 경부선 복선화공사가 진행될 무렵인 1934년 안양역에서 병목안까지 철길이 놓이고 안양9동 수리산 자락의 커다란 산 하나가 파헤쳐졌다. 경부선을 놓으면서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에도 철도청은 1980년대까지 수도권 일대에 건축용 골재로 제공하기 남포(다이나마이트)를 터트려 산을 깨트렸는데 이곳을 병목안 채석장이라 불렀다. 당시 병목안에는 전국에서 모인 돌 캐는 사람들이 살았음은 물론이다.
1주일에 두세 차례 철도운반 화물열차를 운행했는데 당시 안양9동과 새마을에 살던 중학생 정도의 녀석들은 열차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화물차 맨 뒷칸에 몰래 매달려 안양시내로 또는 집으로 가기도 했다. 개중에는 어른들도 있었음을 물론이다.
또 동네 아이들은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철도 레일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나간 후 납작해진 못을 갈아 연필 깍는 칼로 쓰기고 했는데 학교에 가져가면 최고로 인기였다.
애환이 담겨 있던 열차 채취용 화물열차 운행은 80년 초반에 완전히 중단된다.
이후 대규모 골재 채취로 산 한쪽이 흉칙하게 깎여졌던 채석장 부지는 안양시가 2004년부터 사업비 260억 원을 투입해 인공폭포, 잔디광장, 사계절정원 등을 갖춘 가족단위 공원인 안양 병목안시민공원(총 면적 101,238㎡/30,624평) 으로 변신을 꾀해 휴식공간이 됐다.
철길에 놓여져 있던 레일은 철거되거나 도로가 확장되면서 아스팔트 아래에 파묻히면서 잊하져가는 기억속에 남아있었는데 2002년 무렵 모두 없어진 줄 알고 있던 병목안 철길 일부가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안양9동 창박로변 금용아파트 옆의 천변에 있는 단독주택가 뒤쪽의 약 100여미터 구간에 나무침목, 레일, 쇠못 등 당시 철길의 흔적이 남아 있던 것이다. 나무 침목은 이제 썩어가고 삭아가면서 구멍난 속에서는 들꽃들이 자리고 침목들에 박혔던 쇠못들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일부에는 남아 있는 모습들이 기나긴 세월에도 버텨왔음을 보여주고 있어 가히 안양에 현존하는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2014년 무렵만 해도 나무침목은 물론 철도레일, 레일연결부위, 쇠못, 쇠판 등 1930년대 철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꽤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뜯어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뒤늦게나마 이를 알게된 안양시가 2016년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해달라는 안내판을 현장에 세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안양기억찾기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1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라잡이 최병렬(016-311-1001)
안양기억찾기탐사대의 지난 발걸음(2013-2019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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