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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9]1928년 안양발전&향토애 창립 안양청년회 강령 및 규약

안양똑딱이 2026. 10. 29. 00:27

 

2026.10.29/ #아카이브 #옛자료 #기록 #since1928 #안양청년회/ 1928년 7월 안양리에 창립한 안양청년회의 강령 및 규약이다. 이 오래된 사료는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찾아낸 중요 기록믈이다(원본 보기: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catalogId=DKI012_12_01C0000_004)

 

구글 자료 등 각종 기록들을 통해 살펴본바 안양청년회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9월 28일, 안양야학(安養夜學)을 기반으로 안양청년회 발기인 대회가 열렸으며 1928년 7월 21일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에서 창립되어 향토애로 무장한 채 지역 발전을 위해 단합된 힘을 발휘하고 지도자 계발에 앞장섰던 민족게몽 운동 성격의 청년 단체였다. 이 단체 회원으로는 작고한 고 정덕한 선생을 비롯 이홍래 임정조 어르신 등이 활동했다. 

 

안양청년회의 뿌리 (1920~1930년대)

1940년대 이전까지 안양청년회가 남긴 주요 발자취는 안양 지역 근대화와 민족 계몽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1927년 6월 . 안양소년척후대의 주최로 제1회 안양소년축구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928년 7월 창립한 안양청년회는 동년 10월에 지역 주민들에게 현대 과학 지식을 전하고 위안을 주기 위해 안양역앞에서 대규모 활동사진(영화) 대회를 무료로 개최했다. 1928년 12월에는 자체 청년회관을 매수하여 활동 거점을 마련했다. 아울러 안양소년척후대 등과 연대하여 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청소년 문화·체육 활동과 야학을 통한 문맹 퇴치 운동에 주력했다. 1929년부터는 타카세농장(高瀨農場)과 안상호(安商浩)농장을 설득하여 도로변에 전주를 세우고 전등이 가설되기 시작하더니 그해 안양에 전기공사가 완공되어 11월 20일부터 점등되었다.

안양수양단(1927년), 안양교회(1930년) 등 당시 안양에 들어서기 시작한 종교·문화 단체들과 교류하며 지역 사회의 중추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4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활동의 위축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탄압: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은 일제의 전격적인 전시 총동원 체제와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일제는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사회·청년 단체를 강제로 해산하거나 경방단(警防단), 식량배급 통제조합 등 관제 배급·방공 조직으로 흡수·통제했다. 이에 따라 1920~30년대 활발했던 안양청년회나 안양청년단 등의 공개적인 문화·계몽 활동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기에 이르러 사실상 중단되거나 지하화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와 현대 안양 청년운동으로의 계승

1945년 해방 이후, 전국의 청년회 조직들이 재건되면서 기독교청년회(YMCA) 중심의 하령회나 청년 단체 활동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일제에 의해 맥이 끊겼던 안양의 청년 정서와 지역 발전 의지는 이후 1960년대 시흥군 청년학생단체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지고 1969년 창립된 안양청년회의소(안양JC),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양민주화운동청년연합(1988년), 안양사랑청년회(1991년) 등으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변모하며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