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7 3

안양유원지의 어제와 오늘(1997년11월18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97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안양풀이 개장했던 1932년 7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는군요. 「경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승지(勝地)는 많은데 수영장은 별로 없다. 안양은 곳곳에 녹음이 무성하여 하기(夏期)는 각 학생의 림간(林間)학교 피서지로 유명할 뿐더러 추기(秋期)에는 관풍습률(觀楓拾栗)의 승지로 이름있는 곳인데 겸하여 수영장이 완성되면 금상첨화로 안양 일대는 관악산 아래에 낙원지가 되어 지방 발전은 더욱 번영하리라고 한다」. 1932년 7월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안양유원지 관련기사이다.

안양풀장에 인파(1935년8월16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35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안양풀의 옛 모습과 함께 1935년에는 매일 안양 거주 인구의 절반 가까이나 되는 수천명의 피서객이 찾으면서 한달도 안돼 2만8700여명이 찾는 등 삼성산 계곡에 안양풀이 생기고 난후 매년 피서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글도 실려 있네요. 참고로 안양의 인구 변천사를 보면 최초의 인구 자료는 영주 35년(1759년)의 호구조사인데 현재의 안양의 석수동, 박달동을 제외한 나머지 안양지역에 속한 하서면의 인구가 1515명이고, 1912년에는 3412명, 1925년 6165명, 동아일보 기사가 실렸던 1935년 당시에는 8957명, 1941년(안양면 승격) 10000명, 1949년(읍 승격) 20021명, 197..

안양풀장 개장 기사(1932년7월21일자 동아일보)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풀‬ ‪#‎동아일보‬/ 1932년 7월 21일자 동아일보의 안양 석수동에 안양풀이 개장한다는 기사입니다. 「경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승지(勝地)는 많은데 수영장은 별로 없다. 안양은 곳곳에 녹음이 무성하여 하기(夏期)는 각 학생의 림간(林間)학교 피서지로 유명할 뿐더러 추기(秋期)에는 관풍습률(觀楓拾栗)의 승지로 이름있는 곳인데 겸하여 수영장이 완성되면 금상첨화로 안양 일대는 관악산 아래에 낙원지가 되어 지방 발전은 더욱 번영하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