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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주은]기념비적 사건, 안양에서 일어난 제1회 공공예술 프로젝트

[이오주은]기념비적 사건, 안양에서 일어난 제1회 공공예술 프로젝트 [2005/12/00 월간 건축인 포아] 기념비적 사건, 안양에서 일어난 제1회 공공예술 프로젝트 [월간 건축인 포아]"너희들이 공공예술을 아느냐?" 신중대 안양시장은 개막식에 기한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양해를 구했다. “미완성 단계에서 개막하는 이유는 오로지 단풍이 있을 때 개막하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APAP가 바라보는 APAP의 의의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이영철 예술감독은 APAP의 가장 큰 의의를 다음에서 찾았다. 지금까지는 미술에 한정되어 있던 공공미술 영역을 건축・조경・디자인을 아우르게 하는 프로젝트가 안양에서 처음 시도되었다는 점, 도시계획과 재개발을 공공디자인 차원에서 접근한 것 또한 안양에서 처음 이..

[이관직]지역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이관직]지역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05/11/02 이공/비욘드스페이스건축]소장 지역개발의 새로운 모델로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건축과 예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필요 사회와 대중과 관련하여 예술과 건축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예술은 표현 욕구 혹은 세계고백을 전제로 한 소통 즉 미디어적 과정을 기본으로 한다. 건축은 사회적 기능과 도시적 해결을 기본으로 하고 표현과 소통의 의미를 2차적으로 갖는다고 생각되어 왔다. 소통의 문제에 있어서 예술의 언어는 구체적인 오감에 기초하며 원초적이다. 반면 거주성, 도구성, 기호성, 지속성을 특성으로 하는 건축에 있어서 소통을 위한 언어는 그의 구체적인 사회적 필요성과 용도와 달리 오히려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다. 이와 같은 예술과 건축의 다른..

[신호근]간판문화, 새롭게 가꿔 나가야 한다

[신호근]간판문화, 새롭게 가꿔 나가야 한다 [2005/06/08 시민연대]넥스트건축 대표 나는 항상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수많은 옥외간판을 쳐다보다 많은 생각에 잠긴다. 이 도시속의 수많은 옥외간판이 지나가는 우리에게 강한 어조로 봐 달라며 호소하고 있는 건물을 보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마치 남대문시장의 추억이 돼 버린 노점상들의 박수와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반복되던 외침의 여운이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된 것처럼 시대의 요청에 따라 개인 건축물에 부착된 무질서한 옥외간판 조차 공금을 들여서라도 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분명 무질서하게 난립한 도시의 옥외간판은 시각적 불협화음이며, 이러한 지나친 간판은 서로의 간판경쟁을 부추기게 돼 시각적 인지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

[소명식]도시에 문화의 약수터 ‘쌈지광장’을

[소명식]도시에 문화의 약수터 ‘쌈지광장’을 [2005/06/08 시민연대]아키포럼 건축 소장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인 것 같다. 둘이상 모이면 대화를 나누고 무엇인가를 궁리하고 모의한다. 인류문명에서 최초의 민주시민문화가 발전됐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실질적 핵심장소는 시민들이 모여 의논했던 광장이 아닌가. 여러도시국가 중 선두주자였던 아테네의 시민광장인 아고라(Agora)는 서구세계의 정신가치와 사회민주사상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한 형태는 이웃 로마의 시민광장(Forum romanum)으로 전파돼 로마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서방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 후 그것은 유럽의 광장문화로 크게 번성돼,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든 도시내부에 있는 광장..

[신호근]“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

[신호근]“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 [2005/06/08 시민연대]넥스트건축 대표 지역 하부경제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재래시장이 유통산업의 전면 개방과 현대인들의 급격한 소비 취향 변화로 인해 이웃에서 멀어져 가고 있으며 홈쇼핑, 전자상거래 및 대규모 자본과 현대적 시스템을 갖춘 대형할인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설 등으로 고객들이 떠나가고 있다. 하지만 항상 위기가 위기일 수만은 없다. 어떤 때는 위기가 역으로 기회일 수도 있다. 한국영화가 외국영화에 밀려 잘생긴 영화배우 머리까지 깍아 놓은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걸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한국영화가 역으로 외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까지 한류열풍이 불고 있지 않은가? 한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오는 적잖은 예산이 단순..

[소명식]‘정보도시’가 ‘명품도시’로 가는 길

[소명식]‘정보도시’가 ‘명품도시’로 가는 길 [2005/06/08 시민연대]아키포럼 건축 대표 많은 사람들이 세상 참 많이 바뀌고 편리해졌다고 한다. 사실상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또한 도시의 지능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최근 도시문제에 있어서의 화두는 ‘U-city’가 아닌가 한다. ‘U-city’란 유비쿼터스도시의 약자이며, 유비쿼터스(Uviquitous)란 본래 라틴어로서 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신다라는 종교적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U-city’란 모든 정보매체(컴퓨터, 통신, GIS, GPS, 센서 등)가 네트워크화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시간에 상호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정보도시’를 의미한다. 도시를 알고자 하는 상식의 범위에서 조금 더 들어가 ..

[신호근]도시와 인간 그리고 나무

[신호근]도시와 인간 그리고 나무 [2005/06/08 시민연대]넥스트건축 대표 오래된 고목이 다른 곳에 뿌리박지 못하듯 ‘수도권 이전’ 보다 근본적인 대책안 필요 도시의 문제를 인간의 현대병에 비유해 생각할 때 고혈압, 뇌졸증 등 주로 혈관이 막히거나 터짐으로써 받는 고통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도로가 매일 출퇴근 등 교통난에 고통받는 도시의 상황이 너무나 흡사하다고 느껴진다. 최근 길거리에 수도권이전과 관련해 걸려 있는 ‘나라도 두동강 수도도 두동강’이란 현수막을 보고 수도권 이전에 관해서 인간과 자연에 견주어 생각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뇌의 신경조직 압박과 손상에 의해 생긴 뇌졸증이나 고혈압을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치료법을 비롯해 수술을 받지만, 머리를 다른 인체 부위로 이식해 문제를 해결하지 ..

[이관직]도시에서 찾는 ‘느림의 아름다움’

[이관직]도시에서 찾는 ‘느림의 아름다움’ [2005/06/08 시민연대]이공건축 소장 도시를 걷다 보면 여러 종류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건물마다 나름대로 어떤 스타일이 있다. 건물의 기능, 세워진 당시 사람들의 관심, 공법, 유행했던 재료 등이 건물에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드물지만 60~70년대 큰 길가의 건물은 외벽재료로 타일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타일조차 붙이지 못해 시멘트 몰탈 위에 페인트를 칠한 건물도 많았었다. 80년대에는 주택과 같은 저층 건물은 벽돌을 많이 썼고, 소위 빌딩들은 화강석을 판석으로 가공해 붙이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아직도 화강석 판석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90년대에 들면서 유리와 금속 건물 시절이 왔다. 건물 전면을 알루미늄 창문 프레임과 유리 커튼월로 감싸고..

[소명식]이유있는 미행과 마을탐험대

[소명식]이유있는 미행과 마을탐험대 [2005/06/08 시민연대]아키포럼 건축 대표 도시는 인간들에 의해 태어나고 성장하며 변화되어 간다. 이에 따라 도시는 발전될 수도 있고 퇴보될 수도 있다. 도시는 단순한 구조체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잘못 키워놓으면 정말 다루기 힘든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잘만 성장한다면 정말 편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자치제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경쟁적으로 개성있는 도시만들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도시만들기에 정석은 없다. 각 민선시장들의 열정과 일부 전문가들의 올바른 프로세스를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도시만들기의 실험들이 단체장 등의 치적을 쌓는 일이 아니라,..

1968년 미군부대가 있었던 안양 석수동

#안양 #닐미샬로프 #기록 #기억 #역사 #석수동 #미군부대 #1968년/ 미군부대(제83보급대대)가 있었던 안양 석수동(현 석수대림아파트 단지와 석수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단지 사이) 철길옆의 1968년도 풍경으로 당시 미군부대에서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가 컬러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다.. 안양은 교통망이 편리하고 서울과 인접해 일제 강점기에는 안양 박달리에 만주와 말레이시아를 오가는 물자를 저장하던 군용지가 있었으며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안양 석수동에는 미군부대가 자리하고 박달동에는 나이키.호크미사일과 탄약고가 자리하고 있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당시는 경수대로가 없던 시절이라 부대를 가려면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경부선 철길 건널목을 건너야 했으며, 부대 인근 동네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