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0 48

안양시, 첨단창조산업 메카 만들겠다

제2의 안양부흥 첨단창조산업육성 10개 분야 29개 사업 발표 창조경제융합센터·산업기능 고도화·기업경쟁력 강화 역점. 안양시가 첨단창조산업육성으로 제2의 안양부흥을 꾀하고 있다. 첨단적이고 혁신적 기술을 핵심으로 하는 첨단창조산업은 제2의 안양부흥 5대 핵심전략사업에 속한다. 지역경제활성화, 도시성장촉진, 일자리창출 나아가 안양의 미래먹거리가 기대되는 분야다. 시는 대내외 경제둔화와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으로 인한 인구감소, 시 재정건전성 악화, 도시경쟁력 약화 등 순탄치 않은 와중에도 ICT콘텐츠산업, IT첨단융합, R&D등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산업을 통해 이를 돌파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ICT콘텐츠산업을 선도해 이종 산업 간의 융·복합을 촉진시키고, 유망 강소기업 중심의 기업생태계를 구축함은 물론,..

안양천에서 '무료' 인터넷 사용하세요

자연형 생태하천인 안양의 안양천에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공공와이파이존이 구축된다. 안양시는 학운공원을 비롯한 안양천 주요 쉼터 8곳을 무료 공공와이파이존으로 구축해 다음 달인 6월부터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이는 이달 2일 안양시와 SK브로드밴드 간에 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성사된 것으로 안양시가 기존에 설치해 놓은 자가통신망에 통신업체가 기가급 무선중계기를 설치하기로 함에 따라 비용 절감을 통한 공공와이파이 구축이 가능하게 됐다. 이에 안양천을 찾는 주민들은 물 맑은 하천을 벗 삼아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이용해 무선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안양시는 우선 안양천 8곳에 대해 공공와이파이 서비스를 실시하고, 뒤 이어서 범계역 로데오거리 일대를 대상으로도..

안양, 시청사경관조성 의견 수렴하라

안양, 시청사경관조성 의견 수렴하라 안양시청은 급박하게 졸속처리한 시청사경관조성사업에 관해 시민의견을 적극 수렴하라 경과내용 안양시청은 지난 4월 시청사주변 경관조성사업에 7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2016년 4월 29일 본 예산안을 시의회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충분한 논의와 공청회도 없이 긴급졸속처리가 우려되어 안양시민협은 상정반대의사를 밝혔고 일부 시의원들도 충분한 논의없이 처리하는 이유를 물으며 항의하였으나 시의회에서는 단 1표차로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안양시청 담당자는 시민협과 시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기자간담회에서 예산기획에 오해가 있었다고 밝혔으며 시청 조명사업이 아닌 시청사공간개방이 주목적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구체적 예산안은 시청 조명사업을 위한 공사진행비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자..

1968년 안양 화단극장앞 삼거리 풍경

#안양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역사/안양역에서 화단극장으로 가는 1번 국도(현재의 만안로)와 안양여고(트럭 서 있는 길)에서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의 1968년도 풍경입니다.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하던 닐 마샬로프의 홈페이지(www.mishalov.net에 게재된 사진이지요. 제 기억으로는 당시 안양읍내에는 '아이스케끼'를 만드는 곳이 네 곳이 있었는데, 안양역 앞의 태극당, 철걸 넘어 구시장과 새시장(현 중앙시장)에 각 한곳식 이었고 사진속에 나오는 곳이지요. 당시 아이스케끼 한개의 가격이 3원, 하드가 5원인가 했는데, 여름이면 안양유원지와 안양시내에서 나무로 만든 케끼통을 들고 "께끼나 하드~~"를 외치며 파는 형들이 있었지요. 사진 좌..

1970년대 초반의 안양읍내 삼원극장

안양 중앙로에 자리했던 1970년대 초의 삼원극장 모습입니다. 삼원극장은 화단극장, 읍민관(안양극장)에 이어 안양에 세번째 생긴 극장으로 안양읍 시절인 60년대부터 40여년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지요. 현재 이 자리에는 안양CGV(2004년 4월 28일 개관)가 우뚝 서 멀티플랙스 영화관으로서 영화 상영의 맥을 잇고 있지요. 8-90년대 어려웠던 시절에 영화가 서울과 동시개봉되기도 했는데, 서울개봉관과 입장료 가격 차이가 많이나 서울에서 학생들이 영화를 보러 원정을 오기도 했고요. 많은 분들이 삼원극장과 얽힌 추억과 기억들이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960년대 금성방직 안양공장 항공사진

현재의 안양3동 국민은행 안양지점과 왕궁예식장 뒷편에서 박달동 우성아파트에 걸쳐있는 대농단지에 자리했던 금성방직 안양공장의 1960년대 모습입니다. 사진 좌측 하단 정문옆으로 보면 안양역으로 철길이 연결되고 화물기차가 들어올 정도로 그 규모가 컸으며, 담장 둘레만 십리라고들 했지요. 참고로 당시 안양역에서 이어진 철길 두 라인으로 하나는 수암천 우측을 따라 금성방직 안으로, 한 라인은 수암천 좌측을 따라 병목안 채석장까지 연결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진 중앙의 운동장은 천연 잔디가 깔린 축구장입니다. 1960년대 당시에는 잔디구장이 전국에 3개 밖에 없던 시절인데 한국 국가대표팀이던 양지선수단을 비롯 공군사관학교 축구부, 실업팀 등이 이곳에 와서 연습경기를 했지요.(참고 1965. 9.15일 DBS동아..

1970년대 안양읍내 양지교 주변 풍경

안양 양지교 부근의 1970년대 풍경입니다. 양지교는 수리산에서 병목안과 안양9동, 안양3동, 안양역을 지나 안양천으로 흘러드는 수암천위에 놓여진 다리로 현재의 안양CGV에서 서울쪽으로 30여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80년대 하천을 복개하여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지금 다시 뜯어내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하천에 다시생명을 불어넣는 것이지요. 사진 우측 하단에 보이는 것처럼 당시에는 병목안 채석장행 철길이 놓여져 있었지요. 1주일에 두세차례 자갈을 잔뜩 실은 화물열차가 지나갈때면 도로위에 차들이 쭉을 늘어섰답니다. 당시에는 차량이 별로 없었기에 망정인지 요즈음 같으면 교통대란이 일어 났을겁니다. 화물열차는 아주 서서히 운행했는데 아이들이 매달려 새마을까지 올라가거나 내려오기도 했고요. 철길 못을 놓아 납작해진 것..

1970년대 안양읍내(우체국 사거리) 풍경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서안양우체국(과거 안양우체국) 사거리에서 안양천을 건너 이마트가 있는 동안구 비산동으로 넘어가는 관악대로의 1970년대 모습입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안양초등학교이고요. 그 아래 주택들이 있는 자리에는 현재 중화당한방병원이 들어섰고, 좌측으로는 현재 남부시장이지요. 당시에는 경부선 철길을 넘아가는 고가도로가 놓여지기 전으로 도로는 비포장에 한산하기만 했지요. 이곳은 과거 교하동(안양5동)이라 불리웠는데 옛 지명인 남부동(안양1동)과 주접동(안양6동) 사이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로 사실 시민들이 알고 있는 안양5동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지도로 안양5동을 검색해 보면 안양5동은 안양대학교와 근명고 주변인데 이 곳은 만안대로를 건너편에 있어 "이곳이 왜 안양5동..

안양 수리산 담배촌의 천주교 교우촌(1900년대 초)

안양9동 수리산 병목안 골짜기 담배촌의 옛 천주교 교우촌 모습(시진 출처는 http://board.cainchon.or.kr/insamo/?document_srl=32995 년도 미상입니다) 이곳은 기해박해(1839년) 이후 최경환 성인을 비롯한 교우들이 들어와 신앙 공동체를 이뤘던 오래된 교우촌으로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해서 '뒤띠미(뒷듬이)'로 불리기도 했지요.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이 곳은 한때 담배를 경작하며 교인들이 살던 곳으로 병목안 첩첩산중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의 은신처로 더 없이 좋은 자리였지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인 그는 조선 후기 ..

안양 만안교-이전하기 전의 모습(1972년)

정조대왕이 건넜던 안양 만안교의 1972년경 사진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원래 만안교는 안양예술공원으로 등어가는 교차로에서 서울방향으로 약 20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국도확장의 일환으로 약 200미터 더 올라가 삼막천 위로 옮겨져 복원하여 설치했지요. 1970년대 당시에는 교각의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고, 다리위에 난간이 추가 설치돼 변형됐음을 보여줍니다. 다리 뒷쪽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은 제 어릴적 기억으로 벽산계열의 금강스레트 공장이었던것 생각납니다. 현재 그 자리에는 영화하이닉스 아파트가 들어섰고 담벼락에는 만안교가 있었다는 자그만한 표지석만 하나가 역사적 진실을 표현하고 있을뿐이지요. 과거의 놓여져 있던 만안교를 보며 풀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