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 150

[기억-정진원]안양, 역전부락

먼저 경인선, 나중에 경부선 철로가 깔리고, 여기저기 역이 만들어지고, 철마(기차 汽車)가 놀라운 길이와 크기와 대단한 위세로 기적(汽笛)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었다. 시골 마을길에 소달구지가 고작이었던 시절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때가 어떤 세상이었다는 것과 그 철도, 철마, 역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다고 하면 공연히 친일 사대주의자들을 추어주는 것이 될 것이므로 알 만한 이는 아는 것이므로 이만 해 둔다. 여하튼 그렇게 만들어진 역은 신문명·문물·인류가 이합집산하는 거점이 되었다. 60여 년 전 필자는 안양역에서 노량진역까지 기차로 통학했었다. 당시 안양역은 단층짜리 역사였다. 그땐 대단한 것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보잘 것 없는 건물이었다. 입구..

[기억-정진원]50년 전 안양의 다운타운

50년 전 안양의 다운타운 정진원/ 문학평론가/ 고향 의왕 청계동 50년 전 의왕의 덕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안양의 고모님 댁에 얼마 동안 기숙한 적이 있었다. 등잔불 밑에서 공부했던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전등불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에 불이 들어오고, 밤늦게 나갔다. 고모님 댁 길 건너에 바로 안양읍사무소가 있었다. 읍사무소를 중심으로 당시 안양의 다운타운(down town), 전문용어로 중심업무지구(CBD)가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도심지역에는 여러 행정기능이 집중되어 있어서 경관 상으로도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당시 안양읍사무소, 그 옆에 시흥군청, 군청에서 작은 길을 건너 맞은쪽에 안양경찰서가 가깝게 노른자위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안양..

1980년대 초 안양천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1980년대 초 안양천과 한국제지 안양공장/ #안양 #기록 #기억#한국제지 #안양역 #안양천/ 1980년 무렵의 한국제지 안양공장의 전경으로 사진에 보이는 안양천으로 비산동성당 앞쪽에서 안양역 방향으로 찍은 사진이지요. 안양천변의 풍경은 지금과 다른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안양천에 홍수와 집중 호우 등으로 물의 범람이 잦았습니다. 특히 1977년 안양천 대홍수 이후 하천을 곡선에서 직각으로 만들고 천변을 시멘트 블럭으로 메꾸어 아주 삭막하게 만들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안양천 뒤로 오른쪽에 굴뚝이 보이는 큰 공장이 한국특수제지(1966년 한국제지로 변경)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안양1동 삼성레미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요. 한국제지는 해성그룹 창업주인 고 단사천 회장이 1958년 2월 25일 설립한 공장으..

[안양]왕대박, 가성비 최고 삼겹살

#안양 #왕대박 #덕천마을 #안양7동 #청국장/ 안양7동 주접지하차도에서 덕천초교 가는길에 있는 식당 왕대박. 4인용 테이블 5개가 오밀조밀 놓인 자그마한 식당이지만 맛깔스런 찬도 푸짐하고 가격대비 가성비도 아주 굿입니다. 이집의 청국장이 끝내준다는 지인과 함께 처음 찾아간 날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빈 자리가 없어 허탕을 쳤다가 두번째 찾아간 날 삼겹살을 주문하니 맛깔스런 반찬이 풍성합니다. 어느 정도 고기를 먹다보면 이 집의 대표 메뉴중 하나로 뚝배기 그릇에서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 한그릇이 서어비스로 나오는데 청국장의 고유의 냄새도 덜하고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정말 좋네요. 삼겹살도 가격 대비 풍성한 생삼겹인데 거기에 푸짐한 청국장이라니, 요즈음에 이런 곳이 있다니... 모처럼만에 대접받는 느낌입니다. ..

[20170127]안양 중앙시장의 2017년 설날 풍경

2017.01.27/ #안양 #중앙시장 #명절 #설/ 솔 명절 연후 첫날 안양 중앙시장의 풍경입니다. 계란 파동으로 전값이 많이 올라 손님들이 사실 주저하는 등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네요. 그래도 어느때보다 사람들도 많고, 하나 맛보고 가라며 여기저기서 권하는 등 인심도 후한 설 대목입니다.^^ 안양 중앙시장은 1961년 11월 6일 개설되었는데 구시장 상권이 옮겨오면서 시작돼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새시장이라 불리웠지요. 그럼 구시장도 있겠지요. 구시장은 안양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시장으로 1930-60년대 시흥군 안양읍시절 안양의 다운타운으로 우시장까지 있었던 시대동 안양시장-구시장(현재 안양1동 주공아파트 자리)이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한 곳이지요. 중앙시장은..

[20170127]의왕시 홈페이지 구축 완료 보고... 2월말 오픈

의왕시는 지난 24일 오후 시청 대회의실에서 웹사이트 표준화사업 완료보고회를 열었다. 김성제 의왕시장과 박원석 부시장을 비롯해 웹사이트 표준화사업단 관계자, 공무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보고회는 웹사이트 표준화 구축 완료를 앞두고 사업추진 결과를 보고하고, 수정‧보완 사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의왕시 홈페이지는 지난 2008년 전면개편 이래 일부 디자인 변경 및 장비보강만 이뤄져, 최신 정보기술 환경 변화에 맞게 표준화해 시민이 더 쉽게 정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의왕시는 지난해 6월부터 전자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홈페이지 전면개편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 안정성과 편의를 위해 부서별 대민웹사이트 중 활용성이 낮은 11..

[20170127]의왕시 통합도시재생지원센터 문 열어

의왕시 통합도시재생지원센터가 지난 24일 김성제 의왕시장, 시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의왕시청 별관(구 고천동주민센터) 2층에서 개소식을 열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의왕시 통합도시재생지원센터는 조화로운 도시공간 구조를 구축하는 데 있어 주민 주도적인 도시재생 전담기구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민관 협력 추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통합도시재생지원센터는 의왕시가 지난해 실시한 센터 운영 수탁기관 모집에서 선정된 ‘사단법인 지역사회연구원’이 그동안 시청에 임시사무실을 마련해 운영되다가 의왕시청 별관 리모델링 공사 완료와 함께 구)고천동주민센터(사그내길 11)로 이전, 개소했다. 의왕시 통합도시재생지원센터는 앞으로 ‘신사 같은 마을공동체, 공유하는 동네경제, 품격 있는 공간재생’을 목표로 주민과 함..

[20170127]의왕 1인창조기업들, 계원예대와 가족회사 협약

의왕시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가 지역 소재 대학인 계원예술대학교로부터 디자인기술 개발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1인창조기업비즈니스센터는 지난 25일 계원예술대와 가족회사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1인창조기업 등 9개 기업과 계원예대가 디자인 기술개발 지원, 인적자원 교류, 장비 지원 및 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하기로 약속했다. 가족회사 업무협약에 참여한 9개 기업은 시그봇(대표 이현민), ㈜티아이디커뮤니케이션(대표 윤성호), 토토랩(대표 박지호), 이엠씨글로벌㈜(대표 김은주), ㈜모빌리티솔루션즈코리아(대표 김태진), ㈜아모랩(대표 김민규), 지앤에스인포(대표 이종훈), ㈜한빛나노메디컬(대표 채은석), ㈜엠비즈플래닛(대표 이병무)다. 이들 기업은 이번 업무협약으로 2년간..

[20170127]의왕시 2017 'SNS서포터즈' 발대식

소셜미디어를 통한 시정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의왕시가 25일 오후 시청 소회의실에서 2017 SNS서포터즈 발대식을 열고 올해에도 시민과의 소통을 확대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김성제 의왕시장과 올해 SNS서포터즈로 선정된 시민 18명이 참석한 이날 발대식은 위촉장 수여, 2016 우수 SNS 서포터즈 시상 및 SNS 활동설명 및 기법 교육, 개인별 소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지난해 말 공개모집을 통해 20~70대의 다양한 연령층에서 선발된 올해 서포터즈는 대학생, 주부, 직장인, 파워블로거 등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로 구성됐다. 서포터즈는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간 다양한 활동 분야와 경험을 바탕으로 의왕시의 갖가지 이야기와 감동스토리, 동네 이벤트, 시민에게 유용한 소식 등을 취재해 이를 블로그..

1966년 안양 만안초등학생들의 안양유원지 봄소풍

#안양 #역사 #기록 #기억 #사람 #응팔이다 #응답하라 #1966년 #안양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소풍 #만안초등학교/ 1966년 4월 29일 안양유원지로 봄소풍을 온 만안초등학교 학생들의 기념사진입니다. 사진속 인물들은 만안초등학교 7회 졸업생(1957년생)들로 당시 3학년 학생들인데 지금은 한반에 2-30여명 정도이지만 강냉이죽과 옥수수빵을 급식으로 먹고, 알탄과 솔방울로 난로를 때면서 공부를 해야했던 당시에는 한반 평균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지요. 1970년대 말 이전만 하더라도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말에는 관료들의 피서지였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는 계곡을 돌로 막아 안양풀을 만들었으며, 1970년대까지 유원지입구 철길에..